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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7일) 아침 미니홈피에 첫째 동생의 메시지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주말에 시댁 갔다가 어버이날 못 들릴 것 같아 친정에도 들렸답니다. 친정엄마는 몸이 많이 안 좋으신지 얼굴까지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며칠 전 7000주가 넘는 고추모를 옮겨 심으시고 몸살이 나신듯 하다면서 동생은 가까이 사는데도 도움을 못 드려 무척 죄송스럽다고 했습니다.
글을 확인한 후 부리나케 친정에 전화를 했습니다. 이른 시간이지만 시골에선 해가 없이 선선하면 논밭에 계실 시간이니 핸드폰을 눌렀습니다. 수화기 속에서 기운 없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엄마, 아프시다 던데… 고추모 옮겨 심고 힘드셨나 봐요."
"근게 말이다. 저번에 밭고랑 만들다 몸살 나고 고랑에 비니루 씌우고 몸살 나더니 아 또 고치모 심고 난게 요런다."
"놉(일꾼)이라도 얻어서 하지 그랬대."
"요새 시골에 어디 놉이 있가니… 품앗이 할라 해도 내가 힘든 게 품앗이 헐 것도 못되고…."
"시골에 한참 일 많을 때라 어쩐대요. 그래도 식사랑 제때 잘 하셔야죠."
"작년에는 니가 있음서 애썼는디, 고치모도 심고 참깨도 심고… 나 아프다고 며칠씩 누룽지 끓여 바치고…."
"그것 잠깐 했던 건데 뭐."
"괜찮은 게 걱정 마라."
작년 이맘때 엄마는 통 입맛이 없으시다며 아무것도 넘기지 못하시고 그냥 시름시름 아프셨습니다. 때마침 고추모 심을 때가 되어 시골에 내려가 일을 도와 드리고 친정집에 며칠 있으면서 매끼마다 누룽지를 끓여 드렸습니다. 억지로 넘기시긴 했지만 누룽지는 드실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계속 기운을 못 차리시는 엄마를 모시고 전주에 있는 병원에 갔습니다. 이것저것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며칠 후 검사 결과 확인하기 위해 다시 병원에 갔는데 다행히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은화냐? 엄마 어쩌냐. 괜찮다냐?"
의사 선생님 말씀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영양주사 한 병 맞게 해 드린 후 처방전 들고 약국으로 갔습니다. 병원 앞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습니다. 약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은화냐? 엄마 어쩌냐. 괜찮다냐?"
"검사 결과는 별 이상 없으시대요. 아빠 너무 걱정 마세요."
"그믄 괜찮댜? 참말로 괜찮다냐… 니가 애쓴다."
말씀 끝을 흐리시는 아버지. 해가 갈수록 마음도 여려지시고 눈물도 많아지신 아버지의 흐느끼는 목소리에 그저 걱정 마시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약국 의자에 앉아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엄마 아버지 생각에 눈이 휑해지도록 눈물을 쏟았습니다.
병원을 다녀온 후로도 엄마는 쉽사리 기운을 차리지 못하셨는데 시아버님 첫제사 때문에 잠깐 귀국했던 남편이 장인 장모님 건강검진 한번 해드리자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괜한 돈 쓴다며 자꾸만 마다 하셔서 어쩔 수 없이 당장 아프신 엄마만 검진을 하셨습니다.
검진을 해드리고 며칠 있다가 남편과 함께 아이들 데리고 중국으로 출국을 했고, 일주일 후 집에 전화해서 결과를 여쭈었더니 큰 이상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도 같이 검진 받으셨으면 좋았을 텐데 싶은 것이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도 검사 결과에 아버지도 무척 좋아하셔서 그나마 마음이 좀 나았습니다. 남편한테도 고마웠고요.
고단함을 벗 삼아 곤히 잠 드셨을 엄마와 아버지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다시 기운을 되찾으신 엄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야 내가 그때 입맛 없던 거 생각허믄, 지금 입맛 땡기는 게 얼매나 좋은지 모른다. 그리서 막 먹다본 게 시방 꽃돼지가 되부렀다"라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그런데 쩌렁쩌렁 했던 엄마 목소리는 어디가고 또다시 기운 없는 목소리에 입맛도 없으시다며 작년 이맘때처럼 아프십니다. 이제는 가보지도 못하고 그저 애가 탑니다. 가까이 살 때도 못 챙겨 드리는 일이 많긴 했지만 멀리서 자주 찾아뵙지 못하게 되니 마음이 더 안타깝습니다.
어버이 날이라고 시댁과 친정에 용돈 조금 보내드렸습니다. 시어머님께 전화한 후 친정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아버지는 공사장에 6만 원짜리 일을 나가셨고, 엄마는 아픈 몸에 농약통을 짊어지고 고추밭에 제초제를 뿌리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쬐깨라도 일 있을 때 벌어야 제. 그나저나 뭔 돈을 다 보내고… 고맙다"라고 하시고 엄마도 "이놈의 풀은 어버이날도 안 봐주고 쑥쑥 잘도 큰다. 근디 뭣을 부치고 그러냐. 둘째랑 셋째도 주고 갔는디…"라고 하시네요. 대단한 선물은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나았습니다.
밤이 깊어 가는 지금쯤 엄마 아버지는 고단함을 벗 삼아 곤히 잠이 드셨겠지요. 어버이날이라고 평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던 오늘도 이렇게 훌쩍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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