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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앞에서 큰소리 치고, 때로는 위협도 하고 반말은 예사다. 심지어 그는 욕설도 남발한다. 그럼에도 고객은 고분고분하고 오히려 나갈 때는 돈을 내고 자리를 뜬다. 사람에 따라서는 매우 고마워하기도 한다. 욕쟁이 할머니? 이런 사람들은 식당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처에 자리를 펴거나 깃대를 꽂아 놓고 앉아 있다. 네가 살아온 이력을 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그리고 앞날까지 다 꿰고 있다는 이들이다. 그들이 점쟁이건 무당이건 같은 범족(汎族)이다.

무릎팍 도사는 점쟁이 혹은 무당, 샤먼의 역할이 과학적인가 비과학적인가라는 고전적 논의를 벗어난다. 어차피 점술은 과학적 예측이나 선견지명보다는 심리적 위안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 고백 효과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마음의 짐을 벗는 효과도 있다. 결국 심리적인 불안이나 앞날에 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희망을 갖게 하는데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큰 소리 치고도 복채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무릎팍 도사의 역할은 우리가 보는 일상의 점술장이 아니 무당과는 다르다. 아니 오히려 손님의 역할이 다르다고 해야 정확할지 모른다.

무릎팍 도사 강호동은 본래 찾아온 손님-스타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전능적 권위자를 상징한다. 그 전능적 권위의 기본은 손님에 관한 정보 소유 여부에서 나온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유세윤이다. 유세윤은 자료 조사원으로서 충실한 정보통이다. 그들의 간결하고 짧은 말 속에서 손님은 긴장을 하거나 깜짝 깜짝 놀란다. '야~ 그런 사실까지 어떻게 알았는가'라는 반응을 보일수록 점술사의 입지와 권위는 올라가고, 손님의 위치는 복종의 위치가 된다. 대단한 스타라고 하더라도 무릎팍 도사 앞에만 나오면 여지없이 순한 양이 될 수밖에 없다. 스타가 난처한 표정을 짓는 것이야말로 관음하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것도 없다. 비일상적 모습은 시각적 흥미를 끄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골리는 것은 인간의 본연의 충동이다. 다만 시청자는 책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 무릎팍 도사가 하는 짓만 보면서 즐기면 된다.

무릎팍 도사 강호동은 그러한 정보들 사이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한다. 하지만 그 날카로움은 이내 웃음으로 변한다. 강호동이라는 캐릭터 때문이다. 점쟁이들이 전문가로써 보이려 구사하는 요란한 말도 없고 품새도 권위적이지 않다. 이런 분위기에 맛을 더하는 것이 올라이즈 밴드다. 올라이즈 밴드는 날카롭지만 엉뚱한 질문이 생명력이다. 이 때문에 손님은 가만있지 않고 역공을 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 된다. 이 점이 현실의 점술집과 다른 풍경이다. 일상의 점술집에서 손님들은 복종하며 모든 호통을 감내하고 야단을 맞고는 돈을 내며 엉터리 점괘라도 제대로 문제제기 하지 못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점술사 권력에 대한 또 다른 전복이다. 권력에 대한 전복은 통쾌함을 주기에 충분한 코드임은 당연하다.

엉터리 점괘이면 어떤가. 스타들은 점술가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오히려 고액의 출연료를 타가는 데 말이다. 점술집의 기능은 미래의 과학적인 예측이 아니라 카운슬링이라고 할 때 평소 응어리진 말을 뱉다보면 가늠하지 못했던 인생의 방량설정이 가능해지는지 모른다. 미래는 과거의 응어리를 풀고, 현재에 어떻게 하는가에서 결정되는데, 누구하나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에게 점술가는 톡톡히 카운슬러 역할을 한다.

무릎팍 도사는 연예인들을 위한 카운슬러다. 연예인들이 맘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무릎팍 도사에서 손님-스타는 그 공간에서 자신의 불안과 고민을 모두 해결할까? 아니 심리적 위안 효과를 얻기는 할까? 스트레스 해소나 마음의 짐을 덜고 가는 것일까? 분명 미래를 바꾸기 위해 오는 이들도 분명 있다. 그런 면에서 무릎팍 도사를 통해 예능 프로에 복귀한 이영자처럼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이상은 자신의 미래를 열어가기는 힘들다는 점이 한계이지 않을까.

한계는 분명하다. 무릎팍은 당연히 진정한 카운슬러이기 힘들다. 무릎팍은 자신의 진정한 속내를 풀어내기보다는 마케팅이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신의 트라우마를 형성하고 있는 과거 잘못을 해명하거나, 합리화하는 장으로 각광을 받기에 이른다. 남의 시선에 관계없이 고백을 통해 심리적 응어리를 털어버리던 점술집의 공간은 TV라는 매체 속성상 심리적 응어리를 풀기는커녕 또 하나의 응어리를 쌓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적 혹은 시청자 고민과 스타의 고민이 맞물려갈 때 공중파 프로그램의 존재의미가 부각되기 때문이다. 방송 전파는 단순히 복채를 내고 살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고민의 코드가 맞지 않는다면 시청자에게는 하나의 심리적 응어리를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난장을 펼칠 수만은 없다. 매우 개인적인 의도나 사적인 이야기로 담론이 흐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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