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에서) 남북한이 당사자가 되는 것이 자주적이라는 논리는 가장 비자주적인 주장이다.
이는 한반도에서 평화지향의 행동을 할 의무의 대상에 남북한만 포함시키고 미국과 중국은 면제해주는 것이다. 이렇게되면 외세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아무런 의무도 없이 감독자의 권위만 부여받는 꼴이다. 이보다 비자주적인 것이 어디 있는가?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직접적인 책임을 진 당사자다. 그들의 핵전략·군사전략 등을 바꾸도록 법적 구속력을 가진 협정으로 제도화하는 것이야말로 남북한이 전개해야 할 자주적인 외교의 가장 핵심이다."
2·13 합의 이후 활발한 논쟁의 대상이 된 한반도 평화체제의 방식과 관련 한림대 이삼성 교수(정외과)는 9일 이같이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날 시민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과 '평화·통일연구소'가 주최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전망과 과제' 토론회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서 평화조약(평화협정)의 역할과 숙제'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이 교수의 주장은 한반도평화체제 구축 방안과 관련 국내에서 거의 정설이 된 '2(남·북)+2(미·중)' 방식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2+2 방식은 남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의 주체가 되고(남북 당사자 주의) 미국과 중국은 이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남북 당사자주의는 한반도 평화협정에 외세의 부당한 개입을 막고 우리 민족의 문제는 우리끼리 해결하자는 자주 정신에 입각한 것으로 평가되어 왔는데 이 교수는 견해를 달리한 것이다.
이 교수는 "남북 당사자주의는 미국을 평화협정의 대상으로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는 북한의 주장을 배제하는 명분으로 권위주의 정권 이래 한국이 내세운 것"이라며 "1990년대 노태우·김영삼 정권에 이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정책으로 삼아왔던 데에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1953년 정전협정 때 한국이 서명하지 않은 것을 들어 한반도 평화협정에서 남한의 배제를 주장해왔다. 이에 대응해서 남쪽에서 개발한 논리가 남북한 당사자 주의 인것도 사실이다.
이 교수가 비판한 남북 당사자 주의의 약점은 다음과 같다.
가장 큰 것은 이 기사의 맨 앞에 소개했던 내용이다.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정책변화의 책임과 의무는 면제받으면서 정작 중요한 분쟁 발생 시 협정에 따른 보장자·감독자로서의 법적 지위와 권위를 가지고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해결방식에 따라 한반도에 개입하고 또 한반도에서 서로 투쟁하고 갈등할 법적 공간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한국 전쟁의 당사자에는 남북한 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도 분명히 들어간다. 한국은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지만 그 내용상 미국이 한국 몫까지 서명했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과 중국은 과거 전쟁의 당사자일 뿐 아니라 앞으로도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에 구조적인 이해관계와 결정력을 가진 세력들이다.
남북한 당사자, 미중은 보장만 한다는 논리는 유엔과 같은 보편적인 집단안전보장(collective security) 개념이 국제적 규범으로 정립되기 이전에 존재했던 '강대국 보장' 사고의 잔재다. 이는 19세기적인 국제관계 관념에 은연중 함몰되어 있는 패배주의적인 약소국 멘털리티의 잔존물이다.
평화 '협정'이 아니라 '조약'이 되어야
이 교수는 "북한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진정한 참여자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의 안전보장 제공의 제도화가 필수적"이라며 "중국 역시 한반도에서 유사시 미국 못지않게 군사적 개입에의 의지를 가진 세력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함께 중국도 한반도에서 유사시 북한과의 군사동맹을 명분으로 자의적인 군사적 개입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며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규범을 평화협정에 담아내는 것이 일단은 우리의 목표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6년 5월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인용해 "'젤리코 보고서'는 응당 미국이 남북한과 중국과 함께 참여하는 4자 협정의 형식을 상정하고 있다"고 환기했다.
(2005년 초 필립 젤리코 버지니아대 역사학 교수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정책보좌관으로 특채되어 6자회담과 함께 평화협정 체결 동시 논의 등을 포함하는 '젤리코 보고서'를 작성했다- 편집자 주)
한반도 평화 협정은 북한의 핵 폐기 이후에 맺어질 것(또는 맺어져야 한다)는 일반적인 견해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비판했다.
그는 "평화조약은 북한의 핵불능화를 핵심으로 포함할 평화체제가 이뤄지고 난 뒤 그 결과로서 생각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북한의 진정한 핵불능화를 이끌어내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조치들을 명시하는 기능과 의미를 갖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화협정(agreement)인가 평화조약(treaty)도 구분해 명백히 구분해 평화 조약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협정이라는 말은 광범위하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지만 조약은 국가들 사이의 보다 구속력 있는 공식화된 약속을 가리키는데 한정해 사용된다"며 "우리가 한반도 평화협정이라고 할 때 가장 이상적인 것은 미 상원에서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확보하는 '조약'의 지위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야 법적·제도적 장치로서의 안정성을 갖는다"면서 "만약 이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미 의회의 과반수의 동의를 확보함으로써 미국 국내법상 입법(legislation)에 상당하는 법적 구속력을 갖는 행정협정('의회행정협정')의 수준이 되는 것이 차선"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반도 비핵화는 더 나아가 동북아 비핵지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재처리 시설을 가진 일본의 핵보유국 가능성을 거론한 그는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과 함께 남북한만의 비핵화를 견고하게 못박게 될 한반도평화조약은 동북아에서 미국, 중국의 핵전략과 함께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통제하는 규범을 함께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