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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이 충남발전연구원에 용역을 주어 만든 이응노화백 생가복원 조감도 .
홍성군이 충남발전연구원에 용역을 주어 만든 이응노화백 생가복원 조감도 . ⓒ 홍성군
한국 근현대 미술계의 거장 고암 이응노 화백(1904-1989)의 출생지를 놓고 충남 홍성군과 예산군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 동안 미술계와 학계에서만 논란이 되어 오던 고암의 출생지 논란이 다시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일 대전에서 문을 연 '이응노 미술관'측이 그 동안 홍성으로 알려졌던 고암의 출생지를 예산으로 표기하면서 부터.

미술관 측은 "예산군청에서 고암의 출생지가 '예산군 덕산면 낙상리 24번지'라는 출생증명서(제적부)를 보내와 예산으로 표기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 일대 1만7000여㎡의 부지에 47억여 원을 들여 고암의 생가를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홍성군이 발끈하고 나섰다.

홍성군은 8일 보도자료를 통해 "고암 부친(이근상)의 제적부를 확인한 결과, 본적이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로 되어 있으며, 1925년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에서 예산군 덕산면 낙상리로 전적한 것으로 되어 있다"며 "특히 예산군이 제시한 제적부는 고암이 장성한 1938년에 작성된 것으로 고암은 홍성에서 태어나 예산으로 이사한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홍성군은 "고암의 부친이 1910년 12월 22일 홍주의병에 참여한 동생 이근주의 '유품을 돌려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내면서 자신의 거주지를 홍성군 홍북면 중리(현 중계리의 옛 이름)로 적은 것과 고암의 조카 이묵세(80)씨가 '고암은 홍성 홍천마을에서 출생했다'고 말한 증언 등으로 볼 때 고암의 출생지는 홍성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홍성군은 "예산군이 이러한 증거를 무시하고 고암의 제적부상에 기록된 본적지만을 근거로 예산이 출생지라고 주장하는 것은 중대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며 "이응노 미술관측에 관련 자료를 보내, 내용 정정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응노 화백의 출생지를 둘러싼 논란

고암의 생전 마지막 전시회(1989년 1월 1일~2월 26일, 중앙일보 주최, 호암갤러리)인 고암 이응노 작품전시회 도록연보. ‘충남 예산 출생’이라고 기록돼 있다.
고암의 생전 마지막 전시회(1989년 1월 1일~2월 26일, 중앙일보 주최, 호암갤러리)인 고암 이응노 작품전시회 도록연보. ‘충남 예산 출생’이라고 기록돼 있다. ⓒ 예산군
반면, 예산군은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홍성군의 주장을 반박했다. 예산군은 "예산군 덕산면사무소에 보관된 제적부를 확인한 결과 '덕산면 낙상리 24번지 출생'이라는 법적 근거를 찾아냈다"며 "고암의 출생지는 예산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예산군은 "제적부에 따르면 고암과 10살 터울인 형 종노씨가 고암의 출생신고를 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당시에는 호적기록이 제 때 이뤄지지 않아 고암의 출생신고가 고암 부친의 사망 후 형 종노씨가 호주상속을 한 1935년 이후에 이뤄진 것 같다"며 "형 종노씨가 동생의 출생지를 분명히 기억했기 때문에 자신의 출생지(홍북 중계리)와 다른 덕산면 낙상리로 기록한 것이 자명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암 생전인 1989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고암 이응로전'과 1975년 현대화랑에서 열린 '고암 이응노 작품전'의 도록에 고암의 출생지가 예산으로 적혀있고, '계간미술(현 월간미술)' 1976년 창간호와 3호·5호 등에도 고암의 출생지가 일관되게 예산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예산군은 "세계적인 예술가의 출생 기록을 늦게라도 바로잡는 것은 역사바로잡기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며, 정치적인 이유로 끝내 고국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이국에서 생을 마감한 화가에 대한 예의"라며 "앞으로 군에서는 7월 개관예정인 수덕여관을 중심으로 관련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고암#이응노#출생지#홍성#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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