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상황을 모두 내가 주도했다."
10일 '보복폭행'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한화그룹 진아무개(40) 경호과장이 기자들을 만나 내놓은 말이다.
진 경호과장은 "어린 대학생을 폭행한 사람을 감추고 나를 속이려 해 청담동 G가라오케에서 주먹으로 2~3차례 때린 적은 있지만 청계산에서 폭행하지는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김승연 회장은 (청담동, 청계산) 현장에 없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진 경호과장의 호소는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말 바꾸기가 됐기 때문이다.
"청계산 안 갔다"→"갔지만 폭행 없었다"
경찰조사를 4차례나 받은 진 경호과장은 처음부터 "청계산에 가지 않았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휴대폰 위치추적 등으로 증거가 확보되자 "가긴 갔다"고 시인했다. 거짓말이 들통난 셈이다.
진 경호과장은 말을 바꾼 것에 대해 "너무나 이 사건이 커지고 진실과 다르게 피해자 쪽 주장이 편향적으로 가다보니 청계산에서 폭행이 없었어도 오해할까봐 피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너무 뒤늦은 변명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청계산 폭행은 없었다"는 진 경호과장의 말이 믿길 리 없다. 피해자들은 초기부터 "김 회장에게 손과 발로 수십 차례 얻어맞았다"는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다. 경찰은 사건 다음날(3월 9일) 피해자들의 병원치료 기록까지 확보한 상태다.
거짓말로 의심받은 사람은 진 경호과장만이 아니다.
지난 8일 경찰에 자진 출석한 한화그룹 김아무개(51) 비서실장은 청계산에 간 것은 인정하면서도 김 회장 부자는 현장에 없었다고 밝혔다. 또 "우리가 납치, 감금한 것처럼 보도되는 게 가장 억울하다"고 말했다. "피해 종업원들이 장소 이동에 흔쾌히 동의했고 차 안에서 자유롭게 담배도 피우고 휴대폰을 사용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S클럽 업주인 조아무개(41)씨와 종업원들은 "맞으러 가는 사람이 어떻게 담배 피우고 전화도 하고 그러겠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정황상으로도 김 비서실장의 말보다 피해 종업원들의 말에 더 신뢰가 갈 수밖에 없다. 김 회장 부자가 현장에 없었다는 김 비서실장의 주장에 신뢰성이 떨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실 김 비서실장은 한화 측이 '거짓말' 해왔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김 비서실장은 8일 '언론에게 드리는 글'에서 "경찰수사를 믿지 못하여 우리 직원들이 다소 솔직하게 진술하지 못한 부분에 대하여도 진술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앞서 조사를 받은 경호원들이 진실을 감췄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다.
두 사람이 '청계산 현장'을 인정하면서도 폭행을 부인하는 것은 김 회장 부자를 향한 '충성심'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달 29일 경찰 조사에서 "청계산 폭행은 모른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다음날엔 차남 동원씨도 "종업원을 때린 적 없다"고 발뺌했다.
김 회장 대신 십자가 지려 했지만...
'청계산 폭행'이 들통나게 되자 한사코 자신들이 떠안으려는 것도 김 회장 부자의 혐의 부인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마치 조폭 영화에서 부하 폭력배가 죄를 지은 '보스' 대신 들어가듯 김 회장 부자 대신 십자가를 지겠다는 뜻이다.
두 사람의 충성어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김 회장의 사전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보스'를 감싸려던 진 경호과장의 영장도 함께 청구됐고 김 비서실장은 불구속입건됐다. 두 사람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 셈이다.
영장 청구는 경찰이 신청한지 딱 하룻밤 사이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경찰과 검찰은 그만큼 혐의 증명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김 회장에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흉기 사용 폭행ㆍ상해, 공동감금, 공동폭행, 공동상해와 형법상 업무방해 등 6가지 혐의를 적용했다.
김승연 회장이 폭력 혐의로 구속되는 첫 재벌총수가 될는지 결정될 시간도 가까워졌다. 법원은 11일 오전 10시 30분 영장실질심사를 해서 김 회장의 구속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