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기쁨이 남의 기쁨이 되고 남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된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쟁시대는 내 기쁨이 남의 슬픔이 될 때가 있고, 남의 슬픔이 내 기쁨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세상을 모두가 바라지 않지만 경쟁만이 살길처럼 치닫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남의 슬픔이 내 기쁨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 FTA가 그런 세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미국의 초국적 기업의 기쁨이 가난한 나라 민중의 슬픔이 되고, 한국 대기업의 기쁨이 농민과 노동자의 슬픔이 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10일)은 내 기쁨이 남의 기쁨이 되고, 남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는 소풍 날입니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장애인이나 가난한 이웃들의 가정을 직접 방문해서 도와주는 가정방문실에서 대상자들과 봉사자들이 봄나들이를 갑니다.
오전 9시 버스에 오르자, 아침을 못하고 나오신 분들을 위해 백설기와 방울토마토와 과자 봉지가 배분되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은 수녀님이 인사말을 하십니다.
"오늘 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지리산 온천에 가서 묵은 때를 말끔히 씻고 구례 화엄사에 가서 꽃들과 나무, 계곡과 사찰을 구경하겠습니다. 온천으로 몸이 건강해지고 사찰과 숲의 구경으로 마음이 건강해지시길 바랍니다."
수녀님의 사랑처럼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백설기를 혼자 먹기가 아까웠습니다. 백설기를 들고 통로로 나왔습니다. 한 사람의 푼수 짓이 많은 이들에게 기쁨이 된다면 그 푼수 짓은 즐거움이고 행복입니다.
"할머니 한 번만 먹으면 안 잡아먹지요?"
"아이고 무서워라! 아!-"
"줄까 말까- 아나! 먹어라!"
"맛있는 백설기 먹어라!"
"아!--"
"아나 먹어라- 내 입으로 쏙……"(할머니 입으로 가던 떡이 내 입으로 돌아오는)
그 익살스런 풍경을 지켜보고 있는 할머니들과 봉사자들이 껄껄거리며 웃습니다. 이렇게 장난을 치며 모든 할머니들과 봉사자들에게 백설기 한 입씩 넣어드렸습니다. 어느새 버스는 남원을 지나 구례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자매님이 군청에 전화를 해서 할인혜택을 받도록 조치한 온천에 도착했습니다.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나와 로비에서 할머니들을 기다렸습니다.
"워매, 10년은 젊어 보이네요."
"왔다, 할망구가 온천 한번 했다고 10년이 젊어지면 어쩐대요. 뻥이죠! 뻥!"
"아, 나무 양판이 쇠 양판이 되겄어요."
"근디 겁나게 예뻐졌네요. 근디 온천 오신 할아버지들이 없어서 안 됐네요."
"눈까지 씻고 나왔는디 통 안 보이네요."
"하-하-하……."
한 할머니가 가방에서 바나나 우유와 꼬모(요구르트)를 하나 꺼내십니다.
"음료수 팔고 있는디 하나 갈아 줘야지, 그냥 나올 수 있나요. 이것 겁나게 맛있는 것인 게 드쇼잉"
"그렇게 갈아주는 할머니가 천사네요."
바나나 우유와 꼬모를 건넨 할머니는 기념품 가게에도 하나 갈아줘야 한다며 모자를 만지작거립니다. 연분홍 모자 하나 쓰고 잘 어울리느냐며 활짝 웃습니다.
점심이 예약된 구례 화엄사 입구 식당에서 산채정식을 먹습니다. 평소에 혼자 식사를 하시는 할머니들이 모처럼 여럿이 식사를 하는 탓인지 맛있게 드십니다. "오늘은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네"하며 함께 먹는 즐거움을 이구동성으로 쏟아냅니다.
도로변 철쭉이 한창 피어나는 계곡을 따라 버스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오릅니다. 봉사자 자매님들이 할머니 한 분씩 손을 잡고 사찰을 향해 오릅니다. 모녀지간처럼 다정한 풍경이 철쭉이 흐드러지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의 싱그러운 풍경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도란도란 오르는 걸음이 어느새 대웅전 마당에 이르렀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사진 한 방 박자고 합니다.
화엄사를 구경하고 나온 버스가 장수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깊은 산 속에 비취색의 저수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버스가 잠시 주차할 수 있는 도로변에서 잠시 내려 쉬어갑니다. 단풍미인주 병을 들고 모든 할머니들에게 한잔씩 권합니다.
"저 술 못해요."
"삥아리 눈물만큼만 드세요."
"이것은 반칙이에요. 고래 눈물이 그만요."
"요로코롬 예쁜 총각이 언제 술 따라 주겠어요."
"아! 음악이 구렁이 담을 넘어가는디 어떻게 궁댕이를 흔들겄어요. 뛰어가는 놈 좀 틀어주쇼잉."
"저는 뛰는 놈은 안 좋아 허고요. 뛰는 년은 좋아 헌디요."
"하-하-하……"
"자- 돌리고! 돌리고!"
"젊어서는 잘 돌았는디 못 돌겄네요."
"전 못해요."
"시키는 대로만 혀 봐, 잘 돌아갈 것인 게"
"몇 바퀴 돌았응께 자동으로 돕니다."
지르박으로 할머니들을 몇 바퀴씩 돌려주자, 아주머니 봉사자들의 눈치를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라 겁나게 잘 돌아가긋만!"하며 할머니들이 껄껄거립니다. 화들짝 웃음소리가 시원한 바람을 타고 저수지를 건너 푸른 숲을 더 푸르게 합니다.
창 밖에는 모내기를 준비하는 농부들의 손길이 바쁩니다. 전주로 향하는 버스가 연둣빛 푸름에서 연초록으로 넘어가는 숲길을 꼬불꼬불 달립니다. 숲이 불러주는 싱그러운 오월 자장가에 아기처럼 사르르 잠든 할머니들, 돌리고 돌리고 지르박의 내 작은 기쁨도 사르르 잠이 들고 맙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