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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점심을 막 먹고 난 뒤인 5교시 수업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칠판에 큼지막한 글씨로 제 이름 석 자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안 준 칠
물론 제 이름은 '안준칠'이 아니라 안준철입니다. 그런데 '철'이라는 글씨에서 점 하나를 빼버리니까 안준칠이 된 것이지요. 이름을 아주 바꾼 것도 아니고 '철'자 하나에서 그것도 점 하나를 뺐을 뿐인데도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른지 눈꺼풀에 납덩이를 매단 듯 잔뜩 졸린 눈으로 저를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이 조금씩 커지면서 입도 함께 찢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안준칠, 하하, 하하하, 정말 웃긴다. 선생님이 꼭 띨띨이 같아요."
아이들이 교실이 떠나갈 듯 웃어 젖히기 시작하자 저는 신이 났습니다. 하지만 짐짓 모른 채 시치미를 뚝 떼고 이렇게 딴전을 부렸지요.
"저는 제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선생님 이름을 정말 안준칠이라고 지어주셨다면 어찌할 뻔했습니까? 여러분에게 아무리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해도 이름이 안준칠이니 웃지 않고 배기겠어요? 정말 제 이름이 안준칠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그 말이 또 뭐가 그리 우스운지 아이들은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가만 보니 잠은 십리나 멀리 도망을 간 듯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웃음소동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줄 차례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여느 때처럼 출석부를 들고 아이들의 눈을 들여다보며 일일이 이름을 불렀습니다. 강수정을 강수종으로, 공다래를 공달래로, 김나희를 김너희로, 나솔지를 나솔자로, 박규리를 박구리로, 평소 부르던 이름을 조금 바꾸어 불렀을 뿐인데 더 이상 웃기면 죽고 말겠다는 듯 절박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 젓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한 번 뺀 칼을 다시 집어넣을 제가 아니었지요. 별이란 예쁜 외자 이름을 가진 아이의 차례가 돌아오자 저는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박벌!"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말이 있습니다. 너무 유명한 말이니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그날 안준철이 안준칠이 되듯 박별이 박벌이 되면서 그때까지도 게슴츠레한 눈으로 상황파악을 하고 있던 마지막 한 아이까지도 그만 웃음의 마술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교실에서 진을 치고 있던 잠이라는 이름의 용 한 마리가 승천을 해버린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 이상의 얘기는 생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만, 그날 우리는 한 명도 조는 사람 없이 진도도 제대로 나가며 즐겁고 행복하게 수업을 잘 마쳤다는 얘기는 꼭 해야겠습니다.
내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스승의 날만 돌아오면 스승의 날을 바꾸자는 둥 아예 없애자는 둥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이 나돌지만 저는 그런 논쟁과는 상관없이 아이들을 웃기는(혹은 행복하게 해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해봅니다. 그러다 보면 안준철이 안준칠이 되어 전통적인 교사상으로 보자면 조금은 체면이 구기는 일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저 하는 말이 아니라, 저는 아이들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까짓 체면이 뭐 그리 대수일까 싶습니다. 혹자는 그러다 보면 아이들이 교사를 우습게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우려 섞인 말씀을 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아이들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철없는 아이들이라도 자기를 아끼고 행복하게 해주려는 교사에게 막된 행동을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너무 편하다보니 응석을 부리는 일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런 아이들을 교무실로 데려와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 것은 역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교사는 학생의 인격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교사도 감정을 가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항변을 한다면 저는 그분에게 조금 언성을 높여서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라니까요."
오늘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 저와 참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이었는데 요즘 들어 부쩍 수업 태도가 나빠져서 급기야는 저에게 혼쭐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 두 아이가 마침 쉬는 시간에 담임을 뵈러 왔는지 교무실에 얼굴을 들이밀었습니다. 저는 두 아이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즘 너희들 선생님하고 사이가 별로 안 좋지? 그것이 선생님 잘못이야, 아니면 너희들 잘못이야? 만약 선생님 잘못이라면 고칠게. 그래야 너희들하고 예전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 난 그러고 싶으니까. 정말이야 내가 고칠 테니까 말해봐. 선생님 잘못이야 너희들 잘못이야?"
두 아이 중 한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죄인처럼 서 있고 다른 한 아이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눈에 잠시 힘이 들어갔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들 잘못이에요."
"선생님 잘못은 없어?"
"예."
"그럼 너희들이 고치면 되겠네?"
"예. 죄송해요."
"그래. 고맙구나. 어서 가봐."
참 쉬웠습니다. 아이들을 보내놓고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말입니다. 내일은 스승의 날이라 학교가 쉽니다. 두 아이를 만나려면 이틀을 기다려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싫습니다. 솔직히 하루 쉬는 것은 좋지만 왜 스승의 날 학교가 문을 닫아야 하는지, 왜 두 아이를 이틀이나 기다렸다가 만나야 하는지. 두 아이가 많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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