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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주기 추모미사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조성만 열사의 어머니와 아버지.
19주기 추모미사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조성만 열사의 어머니와 아버지. ⓒ 최종수
5월 15일, 스승의 날이다. 부모의 은혜와 같은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는 오늘, 또 다른 인생의 스승을 생각한다. 그는 내 동갑네기이다. 내가 일생동안 짊어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를 지워준 스승이다.

그를 생각하면 민족과 신앙이 일심동체였던 안중근 의사가 떠오른다. 안 의사는 신앙적으로 금지된 살인의 길이었지만 민족을 위해 죄인의 길을 갔다. 하지만 그를 아무도 죄인이라 비난하지 않는다. 민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조성만(요셉), 그는 내 영혼의 벗이자 사제직의 동반자인 통일열사다. 1988년 5월 15일 '양심수 전원 석방 및 수배자 해제 촉구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던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그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막아져서는 안 된다', '한반도에서 미국은 축출되어야 한다', '군사정부는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 '다가오는 올림픽은 공동개최되어야 한다', '광주학살 진상규명 노태우 처벌하자', '양심수 전원 석방하라', '진정한 언론 자유의 활성화', '노동 형제들의 민중생존권 싸움', '농민 형제들의 뿌리 뽑힌 삶의 회복', '민족 교육의 활성화' 등의 구호와 유서를 뿌리고 할복 투신하여 숨을 거두었다.

그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광주신학교에 입학하기로 부모님께 승낙을 받아놓았었다. 하지만 그런 사제의 꿈도 민족의 십자가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아 민족의 제단에 산 제물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신학교에 가기 위해 재수하던 시기였다. 학원 담임선생에게 승낙을 받고 전주 해성고에서 있었던 노재에 참여했었다. 어느새 19년의 세월이 흘렀다. 동장이셨던 아버지는 농사꾼이 되었고, 신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나는 사제가 되었다.

살풀이춤을 추고 있는 해오름 예술창작원 대표 전영선씨.
살풀이춤을 추고 있는 해오름 예술창작원 대표 전영선씨. ⓒ 최종수
지난 금요일(5월 11일 오후 7시 30분) 전주 평화동성당에서 조성만 통일열사 19주기 추모미사가 있었다. 강론 후에 살풀이춤이 이어졌다. 춤꾼의 손에서 하얀 천이 너울거릴 때마다 어머니의 두 눈에서 눈물도 너울거렸다.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는 춤사위가 이어질 때 그만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훔치고 만 어머니.

사제가 되어 함께 미사를 드려야 할 아들이 추모미사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현실이 어머니의 가슴을 도려냈던 것이다. 그 어머니 가슴에 묻힌 것은 자식만이 아니었다. 아들이 남긴 유서도 함께 묻혀있었다.

15일 오후 9시. 신학생 시절부터 방문하고 있는 열사가 살았던 집을 다시 찾았다. 어머니는 서울대 추모식에 가시고 아버지 혼자만 계셨다.

"어제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 1시쯤 눈을 떴어. 잠이 오질 않더군. 세월이 약이라고 하지만 잊혀 지지 않아. 오늘은 왜 그리 성만이가 미운지 모르겠어."

광주 망월동 묘지의 조성만 열사 영정과 묘.
광주 망월동 묘지의 조성만 열사 영정과 묘. ⓒ 최종수
추모미사를 드리는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
추모미사를 드리는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 ⓒ 최종수
해마다 5월 15일이면 댁을 방문하는 목사님과 시민운동가와 함께 수박을 먹었다. 한 시간 동안 담소를 나눈 방문객들이 떠난 자리를 치우고 아버님과 마주 앉았다. 벌겋게 충혈된 눈망울 속에는 그 날의 눈물과 슬픔이 감추어져 있었다. 앉아 있는 아버지 등 뒤로 가서 두 손으로 목을 감싸 안았다. 한참을 그렇게 머물렀다.

아버지의 따뜻한 등에서 전해지는 메시지. 성만이가 꿈꾸었던 한반도의 통일을 성만이의 정신으로 이루어 달라는, 살아생전 통일의 날을 보고 그 기쁨을 누리다가 하늘에 가서 성만이에게 이야기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당부였다.

손을 잡고 골목길까지 배웅 나온 아버지는 커브 길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문득 유서가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아버님, 어머님 얼굴. 차마 떠날 수 없는 길을 떠나고자 하는 순간에 척박한 팔레스티나 땅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한 인간이 고행 전에 느낀 마음을 알 것도 같다"는 성만의 마음이 날 사로잡았던 것이다.

통일의 꽃잎으로 떨어진 열사. 그가 꽃다운 목숨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민주화는 대통령 탄핵을 추진할 만큼 성숙되었고, 한반도의 통일은 개성공단이 가동되고 열차가 시험운행을 할 만큼 한층 가까워졌다. 하지만 미군이 없는 자주국가의 길은 멀고먼 가시밭길이고,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었는데도 재협상을 요구하는 한미FTA를 통한 미국의 경제적 침략은 열사의 유서 받침 하나까지 유효한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조성만 열사의 유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척박한 땅, 한반도에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한 인간이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이 글을 드립니다.
- 한반도의 통일은 그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막아져서는 안 됩니다.
- 한반도에서 미국은 축출되어야 합니다.
- 군사정부는 반드시 물러나야 합니다.
- 다가오는 올림픽은 공동개최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언론 자유의 활성화, 노동 형제들의 민중생존권 싸움, 농민 형제들의 뿌리 뽑힌 삶의 회복, 민족 교육의 활성화 등등….

척박한 땅 한반도 땅에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한 인간이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이 글을 바칩니다. 도대체 누가 애국하는 사람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현실, 우리는 우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선입견을 버리고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야 합니다. 그랬을 때만이 진정한 통일은 이뤄질 수 있으며 한 민족이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에서 평화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문제를 쌓아놓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한 형제들이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은 차분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에게 더 이상의 자책만을 계속하게 할 수는 없었으며 기성세대에 대한 처절한 반항과 우리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조국을 남겨주어야 한다는 의무감만을 깊이 간직하게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아버님, 어머님 얼굴, 차마 떠날 수 없는 길을 떠나고자 하는 순간에 척박한 팔레스티나 땅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한 인간이 고행 전에 느낀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

이 기사는 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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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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