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천 년 전의 이야기다. 지금의 이스라엘 지역에 '에세네파'라고 부르는 유대교의 한 분파가 있었다. 이들은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대한 고유한 해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성서에 자주 등장하는 바리새파, 사두개파와는 달리 유다사막의 한 귀퉁이에서 금욕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예루살렘 유대교의 권위를 격렬하게 비판했고, 부패의 사원에 몸담고 있는 사제들도 비난했다.
이들은 속세를 떠나서 은둔생활을 하며 모든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했다. 작은 수도원에는 자신들만의 사제와 예식을 가지고 있었다. 유대전쟁 3년째에 로마군이 이들을 몰살시킬 때까지, 이들은 쿰란동굴에서 자급자족하면서 살았다.
에세네파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47년 쿰란동굴에서 사해문서가 발견되면서부터다. 이 사해문서를 작성한 사람들이 에세네파였기 때문이다.
이 사해문서는 구약성서의 사본, 성서의 외경 그리고 에세네파에 관한 기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세네파 사람들은 사막구석에 틀어박혀서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수많은 필사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에세네파에 관해서는 많은 논란거리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초기 기독교도들과 에세네파는 어떤 관계였을까, 간단하게 말해서 '예수와 에세네파는 어떤 관계였을까'하는 점이다. 사해문서에는 '정의의 스승'이라는 익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 정의의 스승이 에세네파의 지도자나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많은 가설이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정의의 스승이 바로 세례 요한이라는 설이다. 당시에 세례 요한은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메뚜기를 잡아먹으며 유다사막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세례 요한의 모습과 에세네파의 생활방식이 유사했다. 에세네파의 본질적인 의식인 세례를 전파했고, 사막에서 금욕적인 생활을 했으며, 곧 도래할 신의 왕국을 설파하고 다녔다. 만일 세례 요한이 에세네파였다면,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예수도 에세네파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예수의 삶과 죽음을 새롭게 바라본 <쿰란>
물론 이것은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엘리에트 아베카시스는 <쿰란>에서 이 가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작가는 <쿰란>을 통해서 예수가 에세네파였다고 가정하고 예수 생애의 몇몇 장면들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예수는 12살 때 성전에서 학자들과 논쟁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당시 예수는 이미 에세네파의 관습에 따라 에세네파에 입문한 것이다. 그리고 논쟁에 필요한 교리와 성서지식들을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예수가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일갈한 것도 납득이 된다. 에세네파 사람들은 예루살렘 유대교와 적대적인 사이였다. 그리고 바리새파는 예루살렘 유대교의 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예수가 성전에서 상인들의 좌판을 뒤엎으며 분노를 터뜨린 것도, 에세네파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장면은 또 있다. 예수가 제자들을 맞아들이자, 제자들은 모두 직업을 버리고 맨 몸으로 예수를 따라온다. 이것 또한 속세의 직업을 버리고 공동재산으로 금욕적인 생활을 했던 에세네파의 관습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예수는 부자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했다.
여기서 가난한 자들이란 바로 예수가 속한 에세네파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가난한 자들'이란 에세네인들이 그들 공동체의 회원을 지칭하는 용어였다고 한다. 예수는 유다사막에서 40일 동안 수행을 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40일 동안 예수가 살아남았던 것은, 바로 유다사막에서 은둔하고 있던 에세네파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삶을 색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동시에 <쿰란>은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소설이다. <쿰란>의 주인공은 예루살렘에서 유대 학교에 다니고 있는 독실한 유대교 신자이다.
어느 날 한 남자의 시체가 예루살렘 정교회당의 나무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발견된다. 그 남자는 사해문서에서 잃어버린 두루마리의 행방을 찾고 있던 사람이다. 그 잃어버린 두루마리에는 선지자 다니엘이 왕의 꿈을 해석하는 부분이 담겨 있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에 관한 내용이 적혀있다.
주인공은 아버지와 함께 이 두루마리를 추적해간다. 이때부터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 이 두루마리를 한번이라도 접했던 사람들은 모두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주인공은 예수의 삶을 색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수의 삶에 관해서 열변을 토한다. 예수와 에세네파 사람들이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궁금한 점은 남는다.
누가, 무엇 때문에 예수를 죽였을까?
에세네파의 최후는 유대전쟁과 함께 찾아왔다. 서기 67년 유대전쟁이 시작되면서 로마장군 베스파시아누스, 그 뒤를 이은 티투스가 군사를 이끌고 유대 지역으로 쳐들어왔다.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것은 70년 티투스였다. 사망자의 수는 60만 명에서 10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티투스의 군대는 시내를 약탈하고 성전을 파괴했다. 이때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 건물 중에서 아직까지 남아있는 유적이 바로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는 서쪽 벽이다. 유대인들이 성전 파괴를 슬퍼하며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고 유럽인들이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쿰란에 은둔하던 에세네인들도 이때 최후를 맞았다. 에세네파 사람들은 이때까지도 '최후의 날'을 기다리면서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에세네인들은 몰려오는 로마군사를 보면서 자신들이 기도했던 최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그렇지만 곧 하느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믿고 있지 않았을까.
로마군이 휩쓸고 간 쿰란 지역은 다시 사막으로 돌아갔다. 로마군도 발견하지 못한 에세네파의 문서들은 모두 동굴에 감추어졌고, 얼마 후에는 그조차도 흙먼지를 뒤집어쓰게 된다. 황량한 사막, 인간의 흔적도 동물의 사체도 없는 사막, 그 사막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는 유일신 종교 밖에 없었을 것이다.
쿰란 지역은 에세네인들에게 에덴동산이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풀 한포기 제대로 자라지 않는 그 지역은 인간에게 무척 가혹한 장소였다. 에세네인들은 태초에 가까이 다가감으로 종말에 이른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에세네파는 종말을 맞았지만, 이들이 남긴 기록은 2천 년을 넘어서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소멸해가면서도 불멸을 꿈꾸는 것처럼, 이들의 이야기는 죽고 나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덧붙이는 글 | <쿰란> 1, 2. 엘리에트 아베카시스 지음 / 홍상희 옮김. 문학동네 펴냄.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를 전후로 해서, 로마 가톨릭을 둘러싼 역사 미스터리 소설이 끊이지 않고 출간되고 있습니다. 관련 작품들을 소재별로 분류해서 한 편씩 소개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