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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악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하달 앞에 섰다. 그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하달이 몇몇 장정들을 제사에서 빼겠다는 결정을 내린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제사에 빠지는 자들의 일이라면 저나 다른 장로들에게 양해를 구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마악은 하달의 의도를 넘겨짚어 미리 얘기를 해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크게 줄어든 제사의 규모를 두고 이러저러한 말들이 오고가는 터라 하달의 심사가 좋을 리 없다는 배려에서였다.

“그런 일로 부른 것이 아니라네.”

“그렇다면 무슨 일인지요?”

“이번 기습에 나도 나갈 생각이네. 그래서 말이네 이번 제사는 자네가 주관하게나.”

마악은 놀란 눈을 치켜뜨고 입을 딱 벌린 채 하달을 쳐다보았다. 최고 장로가 마을의 중대사를 앞두고 제사에서 빠지겠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아닙니다. 장로님.”

마악은 물론 기습에 참여하기로 한 십 삼인의 장정들조차 하달을 말렸다.

“장로님, 그건 우리들에게 맡기십시오. 장로님이 구태여 제사까지 빠져가면서 기습에 참여할 것 까지는 없습니다.”

“맞습니다. 저희를 믿고 맡겨주십시오.”

하지만 하달의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

“그대들이 그렇게 제사를 중요시 여긴다면 그 제사를 소홀히 한 앙화는 고스란히 내게 닥칠 걸세. 허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터인데 뭘 그리 유난을 떠는 건가? 내가 기습에 성공해 돌아온다면 내가 시키는 바를 잘 따르면 될 터이고 부정을 타 돌아오지 못 한다고 해도 그 죄는 내가 다 짊어질 터인즉 나를 따르는 이 젊은이들의 목숨은 구해야 하니 그런 것일세. 아무 말 말고 마악 자네가 제사를 주관해 주시게나.”

마악은 펄쩍 뛰며 하달의 결심을 극구 만류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제사도 물리치면서까지 가망 없는 기습에 몸을 던지시겠다니요! 제사에 장로께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모든 이들이 이를 불안하게 여길 것이고 만에 하나 기습이 실패해 장로께서 화를 당한다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마을은 적에게 넘어가 버릴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걸 몸소 보여주겠다는 데 뭘 그리 성화인가. 어차피 제사야 무녀가 알아서 진행하는 것이고 장로들과 사람들은 이를 지켜보며 고기나 나눠먹는 게 일인데 적을 앞에 두고 그것이 그리 중요한 일인가. 어서 가보시게. 난 이들과 함께 미리 휴식을 취할 테니 말일세.”

“허......”

마악은 하달의 이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막막해했다.

얼마 후 마악이 하달의 말을 전하자 예상했던 대로 장로들은 물론 마을 전체가 이 결정에 발칵 뒤집혔다.

“이 무슨 망발이오! 하달장로께서 망령이 든 모양이구려!”

어떤 장로는 노골적으로 하달을 성토했지만 아무도 이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 동조했다.

“하달 장로가 노망이 든 것이 틀림없소.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하달장로는 놓아두고 우리끼리라도 제사를 정성껏 모시도록 합시다.”

마악은 격앙된 장로들과 마을 사람들을 겨우 진정시키며 돼지 다섯 마리를 한번에 잡고 음식을 거나하게 차린 후 무녀인 유란을 맞을 채비를 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가운데 섬뜩하게도 얼굴에 붉은 색 돌을 빻아 짙게 바른 유란이 성큼성큼 제단위로 올라갔다. 그것은 전쟁을 상징하는 의식 중 하나였다. 그와 동시에 북과 딱따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며 장단을 돋웠다. 유란은 폭이 좁은 제단위에서 한 동안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그와 함께 요란하게 울려 퍼지던 북과 딱따기 소리도 잦아들었다.

“여! 이 사람들아 내 말을 들어라!”

“예 이~!”

사람들은 몸을 깊게 숙이며 유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대저 이 마을이 어디서 유래되었느냐. 우리선조 바다 같은 호수를 건너 북쪽에서 오실 재 터 좋은 이곳을 두고 보시며 짐승을 잡고 밭을 일구었다. 휘리리리리리......”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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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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