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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조금 지났을까 내가 목을 빼고 기다리던 표지판이 나타났다. 적도 표지판이다. 캄팔라에서 78㎞ 떨어진 남쪽 지역이다. 근처의 도로 표지판에는 마사카라는 도시까지는 앞으로 52㎞가 남았다는 표시도 보인다.

내가 운전사에게 "사진을 찍게 차를 잠시 멈춰달라"고 요청하자 차가 멈춘다. 그러면서 운전사는 빨리 사진을 찍으라고 말한다. 바로 가야한다는 뜻이다. 운전사가 멀리서 온 여행객을 위해 우체국 버스를 멈춰준 것만으로 감지덕지인 셈이다.

적도가 통과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10개국에 불과하다. 아프리카의 우간다를 비롯해 남미의 에콰도르와 아시아의 인도네시아 등이다. 내가 아프리카 종단여행 중 적도와 마주친 것은 모두 두 번이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출발해 우간다로 올 때 케냐의 나쿠루호수를 지나 엘도레트지역을 지나는 사이에 케냐 적도선이 있었지만, 어두운 밤에 버스를 타고 오다 보니 잠결에 그냥 스쳐 버렸다.

우간다 적도는 시원하다?

차 안에서 차문을 열고 적도선 표지판 사진을 재빨리 몇 장 찍었다. 우간다의 적도 표지판은 가운데가 뻥 뚫린 하얀색의 시멘트로 되어 있었다. 허리에 대고 돌리는 훌라후프처럼 생긴 하얀색의 둥그런 구조물이었다.

구조물 안에는 영어로 'EQUATOR(적도)'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적도 카페가 있고, 또 다른 쪽에는 역시 영어로 '부패는 살인자(CORRUPTION KILLS)'라는 문구와 함께 죽은 사람의 시체를 싣고 가는 그림의 섬뜩한 부패방지운동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적도 표지판과 똑같은 선상과 적도를 사이에 두고 남북 쪽에 각각 2~3m 떨어진 곳에 세워진 3개의 팻말과 실험도구이다. 노란색 팻말에 "당신은 알고 있느냐(DID U KNOW?)"라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게 하는 문구와 함께 가운데 구멍이 뚫린 둥그런 솥뚜껑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과 같은 세면대 모양의 실험도구를 설치해 놓은 것.

여행객들이 직접 적도에 왔다는 것을 과학적 실험을 통해 체감할 수 있도록 한 나름의 관광 상품이다. 적도선상에 있는 실험도구에 물을 부었을 때와 적도의 각각 남북에 있는 실험도구에 물을 부었을 때 구멍으로 물이 흘러들어가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적도 선상에 있는 실험도구에서는 아무런 회오리현상 없이 그대로 물이 구멍으로 빨려나가는데 반해, 북반구에서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물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빠져나가고 남반구에서는 시계 방향으로 물이 돌면서 빠져나가는 차이를 보여준다. 물 위에 나뭇잎을 올려놓으면 물의 회오리 방향 차이를 손쉽게 볼 수 있다.

지구가 약간 기울면서 도는 자전과 중력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이른바 '코리올리힘(Coriolis' force. 전향력)'을 실험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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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세상의 중심에 서다

적도에서는 중력이 가장 약하고 코리올리힘도 0에 가깝기 때문에 나타나는 적도현상이다. 북반구에서 태풍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고, 지상으로 낙하하는 물체는 서쪽으로 쏠리는 현상도 바로 이 코리올리힘으로 설명된다.

중력의 힘이 가장 약하게 받는 적도에서 사람이 똑바로 걷기 힘들거나 거꾸로 계란의 뾰족한 부분을 세우기 쉬운 것도 적도의 신비라고 할 수 있다. 여행 중 적도들 통과할 때 과학 교과서에서 배웠던 중력과 코리올리힘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내가 탄 우체국 버스는 막 지구의 북반구를 지나 남반구를 넘어가는 순간이다. 도로 한가운데도 하얀색으로 가로로 적도선을 표시해 놓아 차량을 타고 가면서 적도를 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서울의 위도가 북위 37.5도인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적도는 지구의 자전축에 대하여 직각으로 지구의 중심을 지나도록 자른 지표면으로 위도 0도(0°). 태양의 직사광선을 받는 일이 많기 때문에 고온다습한 열대우림 기후를 형성한다.

적도 주변은 당연히 열대성 기후에 속하는 데 우간다는 케냐 나이로비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해발고도가 대부분 1300m 이상으로 다른 동서 아프리카의 해안지대보다는 훨씬 높기 때문에 연평균 기온 20~22℃로 온난한 기후를 보이고 있다.

서울의 해발고도가 87m이고, 우리가 높다고 생각하는 강원도 대관령의 해발고도가 832m인 것과 비교하면 우간다가 얼마나 고지대에 위치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다른 아프리카 나라에 비해 우기와 건기도 뚜렷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비가 내려 나무도 잘 자라고 토양이 기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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쪄서 먹는 우간다 바나나의 맛

적도를 통과한 우체국 버스는 다시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적도에서 52㎞ 남았다는 표지판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마사카에 도착했다. 제법 큰 도시여서 인지 마사카 우체국에 도착해서는 내려놓은 우편물 행랑도 3개나 되었다.

우체국 화장실을 이용하도록 승객들에게 휴식시간을 주기도 했다. 캄팔라에서 마사카까지는 빅토리아 호수를 옆으로 끼고 달려서 가끔씩 멀리 호수도 보이고, 호숫가의 파피루스 갈대도 구경할 수 있었다.

마사카 우체국을 떠난 버스는 빅토리아 호수를 멀리하고 남서쪽 내륙으로 깊숙이 달려갔다. 30대 중반의 운전사는 길가에 팔고 있는 구운 바나나를 사서 맨 앞자리에 앉은 우리에게 먹어보라고 권한다. 맛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구운 감자나 고구마 맛이다.

나도 500우간다실링(약 250원)을 주고 구운 바나나 3개를 샀다. 우체국 주변에 버스가 설 때마다 정거장과 길옆에는 여자들과 아이들이 구운 바나나와 돼지고기 꼬치구이, 물과 콜라 등 음료수를 팔았다.

농촌지역 여기저기 바나나 나무가 심어져 있고 파란 바나나를 파는 노점상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바나나를 구워서 팔거나 먹는 모습은 우간다만의 독특한 특색이다. 구운 바나나에는 소금도 곁들여 주었다. 우간다는 바나나의 나라이다. 주식이 바나나라고 할 정도로 흔하다.

우간다에서는 예로부터 빅토리아 호수를 항해하는 선원들이 배를 타고 건너기 전에 호수의 신인 무카사에게 안전한 항해를 위해 비는 뜻에서 바나나를 호수에 던졌다고 한다. 바나나는 주식이자 생명줄이고, 단순히 인간의 먹을거리일 뿐 아니라 신의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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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이 내려오는 듯한 나비 사파리

구운 바나나 맛에 심취해 있던 나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마사카를 떠난 버스가 다시 2시간 정도 달렸을까. 어디서 날아왔는지 수많은 나비들이 도로를 꽉 메운 채 춤을 추고 있었다. 하얀 나비와 노란나비 등 수십만 마리가 넘는 나비 떼가 하얀 눈이 하늘에서 흩날리는 것 같기도 하고, 흰색의 노란무늬 옷을 입은 천사가 천상에서 내려오는 것 같았다.

마사카에서 음바라라 사이에 있는 상가라는 지역이 바로 나비의 숲이자 나비의 천국이다. 나비의 춤은 몇 분간 짧게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무려 30여 분이나 끊임없이 나비 숲이 이어져 나를 즐겁게 했다. 주변의 음부로 호수에 살고 있는 나비들이 날아온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사바나의 초원도 아니고 차가 달리는 도로에서 수십만 마리의 나비가 춤을 추는 '나비 사파리'를 덤으로 구경하다니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우리나라의 함평 나비축제도 유명하지만 세계적으로는 멕시코의 모나크 나비축제가 유명하다. 수억 마리의 나비가 여름에는 캐나다에서 나고 겨울이 되기 전 멕시코로 이동하는, 하루에 120㎞까지 날아 이동할 수 있는 모나크 나비 떼의 놀라운 광경을 보여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마치 철새의 겨울나기를 떠올린 기억이 있다.

물론 나비들이 도로까지 구경을 나왔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참사를 당하는 안타까운 광경들도 보게 된다. 평화롭게 도로에서 춤추던 나비들 가운데는 달리는 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버스의 앞 유리창에 부딪혀 죽어가는 숫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나는 맨 앞좌석에 앉아 한 마리의 흰 나비가 날아와 유리창에 부딪히면서 하얀 점으로 남고, 노란나비는 노란 점으로 남는 장면들을 수도 없이 보았다. 버스가 나비 숲을 다 지났을 때 앞 유리창에는 이곳저곳 온통 하나의 점으로 남은 나비 시체의 흔적으로 얼룩져 있었다.

들판에는 나비 떼뿐 아니라 바나나와 옥수수·사탕수수 등이 무성하게 자라고, 뿔이 길고 날카로운 아프리카 소 떼들이 유유히 풀을 뜯어먹는 등 평화로운 우간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카메라 대신 마음으로 우간다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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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바라라를 지난 버스는 우편물을 싣던 공간에 편지 주머니 대신 푸른 바나나를 가득 싣고 달렸다. 종착지에 다가오면서 우편물이 줄어들자 아예 화물칸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내륙으로 버스를 타고 가면서 우간다가 아프리카의 진주라는 말을 더욱 피부로 느끼게 된다. 버스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모든 우간다의 시골 풍경들이 한편의 푸른 천국의 그림이고 파노라마 영화장면이다.

카메라를 꺼내 모든 장면을 고스란히 담고 싶지만 달리는 버스 안에서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아름다운 광경들은 카메라를 꺼내기 전 버스 뒤편으로 밀려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밀려가는 썰물처럼 지나간 농촌 풍경들은 두 겹 세 겹 겹치면서 버스 차창 뒤로 멀어져 갔다.

카메라에는 담지 못했지만, 내 마음속의 필름 속에는 우간다의 아름다운 장면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추억의 필름은 무제한의 용량이어서 카메라가 놓친 장면들을 내장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우간다는 그럴 정도로 아름다웠다.

음바라라를 지나면서 카발레로 가는 도로는 높은 언덕길이다. 해발고도 1871m로 우간다에서 가장 높은 도시인 카발레로 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힘들다. 카발레 도착 10㎞ 정도를 앞두고 차가 경사진 언덕길로 오르느라 끙끙거리면서 기어갔다.

아프리카 행상들의 물건을 보면 지역의 특산물을 알 수 있다

양배추와 양파·당근·고추·감자·완두콩 등이 언덕길 밭을 따라 잘 자라고 있었다. 강원도 대관령 등지의 높은 지대에서 볼 수 있는 고랭지 채소이다.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이 고랭지 채소를 팔려는 행상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과일이나 음료수를 파는 다른 지역의 행상들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채소를 파는 행상들로 가득했다.

거리의 행상들이 파는 물건을 보면 그 지역의 특산물을 알 수 있다. 행상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직접 재배한 것을 주로 팔기 때문이다. 이 곳 고랭지 채소는 우간다에서도 유명한 듯 현지 승객 중에는 양배추와 당근을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버스 운전사도 양배추와 양파 한 묶음을 사서 운전석 밑에 놓았다.

여러 크고 작은 도시의 우체국에 들러 편지와 소포 등을 내려놓고 달리던 우체국 버스가 종착지인 카발레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 30분께. 수도 캄팔라에서 무려 8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여행책자에는 6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으나 훨씬 오래 걸린 셈이다.

나는 버스 운전사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버스 운전사는 말이 거의 없는 과묵한 편이었으나 버스가 우체국이나 길거리에 설 때마다 바나나와 꼬치구이·음료수 등을 사서 나에게 권하기도 하고, 자신의 집에 가져가려는 듯 양파와 양배추 등을 한 묶음씩 사는 모습이 친절하면서 다정한 인상이었다.

아프리카 시골에 사랑의 소식을 싣고 달린 우체국 버스와의 즐거운 시간도 이제 끝이 났다. 우체국 버스는 정원에 맞는 승차와 깨끗한 실내로 편안하기도 하고 여러 시골 우체국의 풍경 등을 구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대신, 우체국마다 우편물을 내려놓고 싣다 보니 예상보다 오래 걸리는 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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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운전사에게는 브레이크가 없다

이제부터는 다시 전형적인 아프리카 닭장차인 대중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마운틴고릴라를 보러 가는 키소로는 우간다와 르완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접경도시이다. 우체국 버스마저 가지 않는 험하고 고립된 작은 국경 마을이다.

닭장차라는 별명답게 키소로로 가는 봉고버스는 사람들을 꽉 채운 뒤에야 오후 5시 출발했다. 이미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하면서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카발레에서 키로소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 아프리카 여행 중 최악의 여정이었다. 우간다의 가장 높은 도시인 카발레에서 출발한 봉고버스는 험한 산과 계곡을 넘고 넘어 우리를 녹초로 만든 뒤 저녁 9시 30분이 되어서야 키소로에 내려놓았다.

아예 도로가 포장되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흙길이었다. 우간다의 붉은 땅을 달리자 봉고버스 좌우와 뒤로 흙과 먼지가 뿌연 안개가 되어 날아간다. 뒤에서 오던 차량이 우리 버스를 추월해 달리면 마치 중국의 황사가 아프리카에까지 날아온 듯 시뿌연 먼지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20대 초반의 젊은 운전사는 자신을 추월한 차량을 다시 뒤따라 잡기 위해 뿌연 먼지 속을 오히려 더 과속으로 달려나간다. 아프리카의 젊은 운전사들에게는 속도를 줄인다는 개념이 아예 없다. 브레이크가 필요 없는 셈이다. 추월당하는 것을 마치 자신의 운전 실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지 참지를 못한다. 오로지 관성의 법칙에 의해 앞으로 달려나갈 뿐이다.

아찔아찔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치 곡예비행을 하듯 산을 넘고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몇 차례나 했는지 모른다.

어둠이 깔려 칠흑 같은 밤인데다 봉고버스의 전조등도 희미한데 차의 속도는 갈수록 빠르다. 아프리카 운전사의 시력은 넓은 초원에 사는 몽골 사람들처럼 5.0 정도 되나 보다.

차가 도로를 탈선할 것만 같은데도 용케도 도로는 벗어나지 않고 울퉁불퉁한 흙길 위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잘도 달린다. 도로 위를 달린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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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미라를 만드는 아프리카 닭장차

과속도 신경이 쓰이는데 버스의 삐걱거림은 나의 혼을 완전히 빼놓는다. 정말 골동품 수준의 차량이라고 해야 할듯 하다.

오래된 나무상자의 아귀가 뒤틀려나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차량의 문과 유리창 곳곳에서 엇박자로, 그것도 지휘자가 없는 오케스트라의 멋대로 연주처럼 여기저기서 신경을 건드린다. 화음이 맞지 않은 버스의 삐걱거리는 합창은 차라리 공포의 소리로 다가왔다.

엔진의 윤활유를 제대로 갈아주지 않았는지 베어링이 차축과 부딪쳐서 나는 찌∼익 하는 소리는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하다. 이러다 차체가 폭삭 무너질 것만 같다. 차 안에 앉아 있는 것이 곧 무너질 것 같은 폐가의 지붕 밑에 서 있는 느낌이다. 비포장도로를 과속으로 달리다 보니 아무리 철제로 만든 차량이라도 성할 턱이 없다.

그런데도 승객들 중 누구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놀랍다. 모두가 사지가 마비된 인간 미라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원 11명에 무려 24명이 앉거나 서서 타고 있었다. 운전석 바로 뒤에 탄 우리 좌석도 정원이 3명인데 7명이나 탔다.

자리에 앉은 나와 뉴질랜드 여행객인 로렌스는 골반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양쪽에서 밀어붙이는 힘에 속수무책이었다. 로렌스 옆에는 보통사람의 2배가 넘는 덩치가 큰 현지 젊은 남자가 앉았다. 그 큰 엉덩이로 밀어붙이니 로렌스의 얼굴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아예 고통스런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 고통 속에서도 로렌스는 내 귀에다 대고 "정말, 치킨버스(Oh, Really Chicken Bus)"라고 말하면서 웃는다. 서구사람들도 아프리카 대중버스를 우리와 똑같이 "닭장차(Chicken Bus)"라고 부른다.

화장실이 급한 30대 중반의 현지인 여성이 잠시 차를 세워 달라고 한다. 도로 옆 풀숲에서 일도 다 보기 전에 운전사는 뭐가 급한지 빨리 타라고 자동차 경적소리를 울려댄다. 그녀는 치마를 내리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생리현상을 해결한 뒤 다시 차에 오른다. 아프리카 대중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현지인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목격할 수 있다.

마운틴고릴라, 참 보기 어렵구나

봉고버스가 한참 계곡을 따라가는 듯 경사진 길을 내려가다 멈췄다. 마침내 목적지인 키소로에 도착했다. 어두운 밤인데다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어서 빛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속에 치이면서 훈제된 오리고기 마냥 오그라든 몸이 잘 펴지지를 않는다. 카발레에서 80㎞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을 무려 4시간 30분이나 콩나물시루 안에 꼼짝없이 있다 보니 우리는 인간 미라가 되어 있었다.

다리에 쥐가 나 약간 저렸으나 다행히 골반 뼈에는 이상이 없어 간신히 배낭을 메고 근처 여행객 숙소인 비룽가 호텔로 갈 수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밤이 너무 깊어 저녁식사로는 계란반죽에 감자를 구운 것밖에는 음식이 없단다.

아침 6시에 일어나 13시간 30분이나 버스에 시달린 데다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한 나의 몸은 피곤과 허기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마운틴고릴라를 보러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