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대의' 즉 '지역주의 통합 반대'는 18일 광주민주화항쟁 기념사에서, '대세' 즉 '공론을 모은 통합 지지'는 19일 무등산에서 밝혔다.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다. 귀 기울일 건 따로 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쏟아내는 말들이다. 정세균 의장과 박상천 대표의 대통합 논의가 사실상 결렬된 후 두 당을 오가는 비난성 말들이 더 중요하다.
이 말을 기준 삼으면 노 대통령이 대세를 따를 여지는 거의 없다. 대통합의 대상이 대통합을 원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은 '대세'에 울타리를 쳤다. "조직의 대세"라고 했다. 열린우리당의 공론이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공론을 모아 '조직의 명'을 하달할 가능성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오히려 정세균-박상천 회동을 기점으로 기대는 낙담으로 바뀌고 있다. 노대통령이 '조직의 대세'를 따르고 싶어도 따를 여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시간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통합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한은 다음달 14일까지다. 이 때까지 성과, 더 정확히 말하면 대통합 성과를 내지 않으면 '조직의 대세'는 대분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노 대통령의 입장이 궁금하다면 관찰시점을 뒤로 늦추는 게 생산적이다. 대통합 무산이 공식 선언되는 경우, 그래서 '조직의 대세'를 따를 여지가 박탈되는 경우 어떻게든 입장을 조정해야 한다.
'대의'로 돌아가 '우국지사'의 길을 걷든지, 아니면 탈당 취지를 살려 정치 불개입을 선언하든지 해야 한다. 노 대통령의 진짜 입장, 진짜 속내는 이 때 나타난다.
봐야할 곳은 민주당과 두 전직 의장
지금 시점에서 주요한 관찰대상은 민주당이다. 열린우리당의 대통합 주장에 이른바 배제론으로 방벽을 친 민주당이 입장을 선회할 것인지를 지켜보는 게 현실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범여권 통합과 관련해 "국민이 바라는 것을 해야 하고 그렇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를 '지극히 원론적인 말'로 의미 축소하는 민주당이다. 이런 민주당이 입장을 바꿀 것인지, 바꾼다면 그 계기가 무엇일지를 지켜보는 게 더 생산적이다.
김근태·정동영 두 전직 의장이 경제속도를 지킬 것인지를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다. 정동영 전 의장의 경우 "이르면 다음주 중 탈당을 예고(<한국일보>)"하면서 과속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 두 전직 의장이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통합전권 위임시한 만료를 기다리지 않고 독자 행동에 나서는지를 예의주시하는 게 더 긴요하다. 그 여하에 따라 노 대통령의 '대의'와 '대세' 진자운동 폭도 조절될 것이다.
바뀐 게 없다. 말도 바뀐 게 없고 상황은 더더욱 바뀐 게 없다. 더디고 지루하고 소모적인 상황이 흘러간 옛 영화 재생되듯 거듭해서 되풀이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