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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은희경, 밤범신 작가
독자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은희경, 밤범신 작가 ⓒ 이명옥
작품에만 몰두하겠다며 후학을 가르치던 일을 접은 박범신씨은 근래 히말라야에 미쳐 사는 산사나이가 되었다. 근황을 들려달라는 주문에 그는 "히말라야를 걷는 일은 결점 많고 부족함이 많은 이승의 삶으로부터 사다리를 놓고 영원한 삶으로 걸어가는 듯 황홀한 체험"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5000m 넘게 넘어가면 법에 걸리지 않는 약을 먹은 것 같은 황홀한 내면적 환타지를 가지고 걷게 된다"며 "문명사회라는 것은 끝없는 경쟁 속에 매몰되어 정보와 욕망으로 가득 차 있지만 히말라야 3천, 4천, 5천을 넘어가다 보면 그런 정보들이 다 지워지면서 정보와 욕망으로부터 한없이 자유로워진다"고 역설했다.

또 "작가로서 다른 이들보다 비교적 더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히말라야를 걷을 때만큼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며 "산이 중독성이 있는지 최근 몇 년간은 매년 한두 달씩은 산 밑에서 보낸다"고 소개했다.

은희경씨 역시 "작가가 돼서 제일 좋은 점은 자유롭게 살수 있다는 점"이라며 "소설가는 경제적 어려움이 많지만 자유가 너무 좋아서 만족도가 높은데 안 그런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최근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라는 소설을 출간한 은희경씨는 "이번 책을 내고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며 "그전에는 책을 내면서 자신이 없기도 하고 '뭔가 이런 것을 또 했나'라는 탄식도 했지만 이번에는 갖고 있던 무거움을 벗어버린 기분"이라고 만족했다.

학생들에게 싸인을 해주고 있는 소설가  박범신님.
학생들에게 싸인을 해주고 있는 소설가 박범신님. ⓒ 이명옥
독자와의 특별한 소통이나 추억에 대해 박범신씨는 독자와의 추억이 내 인생의 거의 전부였다며 누군가 '당신은 평생 뭐했느냐?'고 묻기에 '내 평생의 삶은 작업이었다'고 말했단다.

그는 '어떤 작업이었냐? 연애를 그렇게 많이 했냐?'는 질문에 "30대에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작업을 걸었고 70~80년대 소설을 많이 사보는 독자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며 "소설이 많이 팔리면 돈이 많이 생겨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수많은 아름다운 여성들이 내 책을 보고 있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환상, 바로 그 느낌이 내게 큰 힘이 됐다"고 고백했다.

은희경씨 역시 한 군 제대병이 그녀를 찾아와 군대에서 힘든 시간을 그녀의 책을 읽으며 잘 견딜 수 있었다고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해 주더라며 박범신씨에게 "선생님 저도 아, 내게도 젊은 남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생겼구나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이에 박범신씨는 "제대가 아니라, 혹시 탈영이 아니었을까?"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문학과 만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박범신씨는 "글을 왜 썼냐는 질문 같은데 살기가 좋았으면 글을 썼겠는가? 살기 힘들고 젊은 한때 너무 외로워서 글 쓰는 것으로 구원을 받고 싶었던 것"이라며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른 수많은 일들이 있는데 왜 꼭 이 일(글 쓰는 일)을 하는지"라고 말했다.

이어 "아마도 뭔가 내면에 글을 쓸 수밖에 없도록 짜여 진 이상한 그 무엇이 프로그램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다"며 "내 마음속에는 마이크를 들고 있는 나와 다른 나이 들지 않는 거대한 낙지 같은 것이 한 마리 들어 있어 글을 안 쓰면 그것이 옆구리의 생살을 찢고 나오니 안 죽으려고 글을 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은희경님 역시 학생들에게 싸인을 해주고 있다.
은희경님 역시 학생들에게 싸인을 해주고 있다. ⓒ 이명옥
은희경씨 역시 "사실 글 쓰는 일 외에는 그다지 잘하는 일이 없다"며 "나를 기억하는 어릴 적 친구들도 '아, 글 잘 쓰던 아무개'로 기억하는 것을 보면 글 때문에 인기도 얻고 부모님에게 칭찬도 받고 그랬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후 작가의 육성으로 작품의 한 부분을 들어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박범신씨가 낭독한 부분은 <바이칼 그 높고 깊은>의 한 부분. 이 책은 운동권 딸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편지 현식으로 된 소설이다.

ⓒ 이명옥
하나야,
고독한 건 가장 높은 것이고 깨끗한 건 가장 낮은 것이다.

보아라, 고독한 별은 저리도 높고 깨끗한 물은 바이칼 심해, 저리도 낮지 않으냐. 사멸의 예감이 다가오면 별들까지 이윽고 초신성으로 타오르며 절대광도가 젊은 별들의 수만 배에 이르는 것조차, 바이칼보다 높고 바이칼보다 낮으면, 모두 헛깨비 관념.

이제 아빠는 불멸을 감히 탐하진 않거니와, 그래도 네가 불타는 아비의 거리에서 꿈꾸듯이, 나 또한 세상 속으로 돌아가 보다 높고 보다 낮은, 보다 고독하고 보다 깨끗한 나의 사랑을 꿈꾼다.

꿈에서일망정 바이칼 물 밑 1,620미터, 그 단단하고 부드러운 고요 속에 아미 내리깔고 농염하게 누워있는 내 신부를 보고 싶구나.

사멸의 예감은 어느덧 익숙하여 마치 친구 같다. 내일은 니키타 파르진스키를 졸라 올혼섬의 북단까지 가볼 예정이다. 전인미답의 땅이 부르는 소리 들린다.

그 땅은 하마, 별과 맞닿아 있을까, 해저와 맞닿아 있을까.


은희경씨가 독자들을 위해 낭독한 소설의 한 대목은 로키산맥을 등산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숲은 한낮의 정적에 싸여 있었지만 지나치게 서늘한 것도 사실이었다. 깊은 숲 뒤쪽으로 검은 그림자가 쓱 지나가는 듯한 환영이 잊을만하면 한 번씩 눈앞을 스쳐갔다. 나는 애써 대화를 이어갔다.

"선배가 생각하는 진화라는 게 뭐예요?" "응, 모두들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진화야.인간들은 다르다는 것에 불안을 느끼고 자기와 다른 것은 배척하게 되어 있어. 하지만 야생에서는 달라야만 서로 존중을 받지. 거기에서는 다르다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야. 사는 곳도 다르고, 먹이도 다르고, 천적도 다르고 서로 다른 존재들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거야.
...중략...

다음 순간 피선배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내 등 뒤 넘어 어딘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중략...)

침엽수의 잎들은 녹색으로 반짝였고 빽빽이 서 있는 나무 둥치 아래 카펫 같은 풀밭위로는 검은 나무 그림자들이 길게 길게 늘어졌다. 그 안에서 길고 아름다운 갈색털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눈가가 검었고 주둥이는 길었으며 얼굴은 우리 쪽을 향해 있었다. 곰이었다.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곰이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집중했다. 숨이 멈출 듯 했지만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민들레 앞에 멈춰선 곰은 냄새라도 맡듯이 조용히 고개를 내밀어 무심한 표정으로 그것을 꺾었다. 나는 전율을 느꼈다. 자연 상태로의 존재 그 아름다움과 천연함 그리고 위엄에 압도되었다.


방송에서  이기호작가의 사회로  은희경, 박범신 작가가 대담을 나누고 있다.
방송에서 이기호작가의 사회로 은희경, 박범신 작가가 대담을 나누고 있다. ⓒ 이명옥
서로의 작품 세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묻자, 박범신씨는 "은희경 선생은 90년대 문학의 방향성과 주소를 명징하게 점찍어 준 소설가며 감수성이 뛰어난 작가"라며 "독자로 글을 읽고 있는데 단 한 번도 지루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근래는 문학의 방향을 힘들여서 바꿔가고 있는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토지문화관에 들어가서 은거해 있는 것도 새로운 어떤 것을 꿈꾸고 있는 것 같아 앞으로 더욱 기대가 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은희경씨는 "대학 때 기숙사에 한 방에 4명이 같이 지냈는데 선생님 연재소설을 서로 먼저 읽으려고 일찍 일어나던 생각이 난다"며 "요즘도 선생님 글을 읽으면 소설이 젊고 내면의 고민 같은 것을 고요하게 만드는 어떤 힘이 느껴져 감사하게 읽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박범신씨는 "2년 반 동안 히말라야에 미쳐서 소설을 한편도 못썼다. 재작년에는 석달동안 히말라야 수천 킬로를 걷고 왔다. 다음 달부터 장편 연재를 하고, 또 다른 작품도 준비 중에 있다. 요즘은 새 신부를 맞이하기 집수리를 하고 있는 느낌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은희경씨는 가을부터 연재할 장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독자들과의  문학적 소통이 끊이지 않는 한 문학의 미래는 늘 푸르름 일 것이다.
독자들과의 문학적 소통이 끊이지 않는 한 문학의 미래는 늘 푸르름 일 것이다. ⓒ 이명옥
박범신씨는 "작가들을 직접 만나고 그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책이 훨씬 재미있어 진다"면서 "혜성처럼 나타난 젊은 작가 이기호, 은희경씨의 작품을 꼭 찾아서 읽으라"고 후배 작가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작가적 환상과 환타지의 불길이 꺼지지 않는 한 작가는 늘 청춘일 것이다. 비움을 통해 세계와의 영적인 교감을 가득 채워온 박범신님의 새로운 작품, 은희경씨의 변신을 기대해본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창비(2007)


바이칼 그 높고 깊은

박범신 지음, 문이당(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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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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