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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에서 5월 18일 열린 닭장파티
고려대에서 5월 18일 열린 닭장파티 ⓒ 최재인
5월 셋째 주, 대학가는 축제의 열기로 뜨겁게 달궈졌다. 최근에는 대학 축제가 그 대학만의 자체행사가 아닌 지역 전체의 축제로 변화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축제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은 대학생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축제는 좀 더 남다르다.

대학생, 특히 신입생들에게는 누구나 한번쯤 겪게되는 '5월 병'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문자 그대로 5월에 겪게 되는 우울증 혹은 무기력증 같은 증상이다. 개강과 중간고사 준비로 빡빡한 일상을 보내던 3월과 4월이 지나고 5월이 되는 순간, 신입생들은 나사가 풀어진 듯한 허탈감과 비어있는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무기력함을 경험하게 된다.

이 5월병을 치유해주는 것이 바로 대학 축제다. 대학에서도 엄연히 존재하는 시험제도와 그 성적으로 나눠지는 우열의 질서, 취업준비로 인해 1학년부터 고시를 준비하게 되는 입시학원의 분위기. 이 두가지로부터 '배신'을 당한 신입생들은 축제가 되어야 비로소 적잖은 해방감과 달콤한 자유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된다.

5월 18일에 벌어진 닭장파티?

축제에 직접 참여하려는 사람들과 보고 즐기려는 사람들로 캠퍼스는 북새통을 이루고, 축제를 기획하는 학생들은 작년과 달라야 한다는, 보다 다채롭고 재밌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은 행사들을 준비하게 된다.

그 결과 대학캠퍼스의 빈 공간을 채우는 '축제 아이템'들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에서 단순한 재미 이상의 의미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올해 고려대의 경우, 총학생회는 축제기간 중(5.14~5.18) 여섯개의 놀이기구를 인문계, 자연계 캠퍼스에 나누어 배치한 후 그 여섯개를 모두 이용했다는 표시로 스티커를 모아 온 학생들에게 추첨을 통해 상품을 나눠주었다. 행사를 기획한 총학생회 미디어국장 김재경씨는 "그동안의 축제는 식상하고 따분해서 학생들이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축제에 생동감을 불어 넣을 수 있는 변화들을 시도하려고 했다" 고 설명했다.

축제 마지막날인 18일 저녁 7시 30분에는 캠퍼스 한 켠에서 '닭장파티'라는 이름의 댄스파티가 벌어졌다. 밤 늦은 시간까지 큰 노랫소리와 화려한 조명이 캠퍼스 구석구석을 메웠다. 하지만 다른 날도 아닌, '5월 18일'에 벌어진 '댄스파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이에 대해 행사를 주최한 학내 동아리 파티 프로바이더스의 한 관계자는 입장료를 통해 얻어진 수익금의 일부를 5.18 유가족회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지만, 왠지 씁쓸하다.

연세대의 경우 축제기간이었던 17일, '무한도전' 연예인팀이 행사에 참여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고려대와 같이 총학생회 차원에서 마련한 행사는 없었지만, 단과대 별로 놀이기구를 설치해 수익사업을 벌이는 모습은 어느 대학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축제의 풍경이다.

'광고'로 넘쳐나는 축제

축제를 구경할 목적으로 대학캠퍼스에 발을 들려놓으면 여기가 대학인지, 시장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학생들이 차려놓은 행사부스 만큼이나 많은 여러 업체들의 차량, 부스가 마치 '시장통'을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물론 축제기간이 아닌 평상시에는 볼 수 없는 모습들이다.

학생들의 이동이 많은 장소일수록 휴대폰 판매 업체를 비롯한 담배회사, 헤어제품 회사 등이 차려놓은 가판들이 즐비하다. 설문조사에 참여하거나 간단한 응모엽서를 작성하기만 하면 담배나 헤어젤과 같은 회사제품을 공짜로 나눠준다. 심지어 AUCTION이라는 업체는 업체명이 선명히 적힌 종이팩에 이것저것 사은품을 담아 지나가는 학생들 손에 쥐어주기도 한다.

대학이 시장의 모습으로 변화해가고 있다는 지적은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하게 제기되어 왔다. 왜냐하면 대학내에 상업시절이 들어와 영업을 하거나, 대기업명을 따르는 새 건물들을 심심찮게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등록금이 물가상승률을 배제한 채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교육이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다'라고 비판은 이제 식상할 정도다.

하지만 캠퍼스내에 버젓이 업체들의 가판이 차려지고 판매자들이 지나가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비를 독려하는 모습들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축제기간에 목격하게 되는 이러한 풍경이 '일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겉이 화려한 축제보다는 내실있는 축제로 거듭나야

총학생회에서 설치한 놀이기구를 즐기고 있는 학생들.
총학생회에서 설치한 놀이기구를 즐기고 있는 학생들. ⓒ 고려대 총학생회
과거 대학 축제는 저항의 공간이자 대동의 공간이었다. 주점행사를 하더라도 사회단체를 후원하기 위한 연대의 주점이 대부분이었고 '대동'의 취지를 살려 학생-학교-사회의 관계를 '우애로운 관계'로 재구성하기 위한 시간들이 많았다. 축제에 가수를 초대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수나 개그맨을 초대하고,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수익사업을 벌이는 것이 대학축제의 일반화된 모습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담론과 토론, 논쟁이 소멸해가고 있는 대학사회의 모습을 축제가 닯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고려대학교 사범대학에 재직 중인 권내현(역사교육과)교수는 대학의 축제가 "사회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이라는 공간과 시간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일은 학생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 이뤄졌을 때 보다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현재의 대학생들은 사회에 순응하고 현실에 타협하며 자신의 문제를 체념해가기 보다는 대학생으로서의 권리를 온전한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되찾으려는 노력들을 해야한다. 그것이 바로 죽어버린 담론에 새 숨을 불어놓고, 단절되어 버린 학생간, 학생-학교간 소통의 관계를 회복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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