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센닥은 대부분의 어른들이 잊어버린 어린 시절 공포를 또렷이 기억하고 그것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그는 1928년 생의 유태계 미국인으로서 삽화가이며 동화작가이다. 1964년, <괴물들이 사는 나라> (Where the wild things are)로 '가장 눈에 띄는 그림책' 에게 수여하는 칼데콧 상을 수상하면서 유명작가 반열에 올랐다.
각기 1970년과 1982년에 칼데콧 명예상(은상에 해당)을 수상한 <깊은 밤 부엌에서> (In the Night Kitchen) 와 <저 너머 밖에서>(Outside OverTthere)도 그의 대표작이다. 아이들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격한 감정, 혹은 두려움에 대해 다루었다는 공통점 때문에 세 작품은 흔히 '삼부작'이라고 일컬어진다.
모리스 센닥의 작품은 밝고 순진한 웃음이 절로 나는 여타의 그림책과 다르다. 물론 공포감을 조성하는 무서운 그림책은 아니지만, 암울한 느낌이 서걱거린다. 작가 자신이 어릴적 느꼈던 공포를 근간으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여러 언어로 번역되는 이유는 무엇일까(특히 "<괴물들이 사는 나라>와 <깊은 밤 부엌에서> 이 두 권은 국내에서도 오래 전부터 사랑받고 있다). 그림 속 아이들이 실제 아이가 느끼는 두려움과 불쾌함을 드러내 주고, 게다가 스스로 공포에서 벗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미지의 괴물에 관련한 두려움은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막스의 거친 장난을 통해 나타난다. 막스는 실컷 장난을 치고 스스로 방으로 돌아온다(관련 기사 참조)
누군가에게 잡아 먹히는 환상은 <깊은 밤 부엌에서>의 믹키(Mickey)에게 일어난다. 밤잠을 방해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믹키의 몸은 두둥실 떠올라 옷도 벗겨지고, 밀크 대신에 케이크 반죽에 섞여 오븐 안까지 들어간다.
믹키는 그곳에서 탈출하여 케이크 반죽옷을 입고 빵반죽으로 만든 비행기를 타고 'Mickey way 믹키웨이'(milky way:은하수를 변형하였다)까지 올라가 요리사들이 원하는 우유를 구해준다. 잡아 먹히는 위험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아침 케이크를 만들도록 큰 공헌을 한 영웅이 된 것이다.
슈퍼맨 같은 만화 주인공처럼 위기를 해결하는 신나는 모험담이다. 실제로 여러 만화적 요소가 사용된다. 말풍선 같은 글칸, 만화처럼 대문자로만 쓴 글, 여러 개로 나눈 그림칸, 갖가지 의성어, 의태어를 작은 글자로 적어 둔 것 등이 그러하다. 그 덕분에 소리가 들리고, 행동이 보이는 역동적인 그림책이 탄생한다.
특히 침대에서 둥실 떠오른 몸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우유를 구하기 위해 은하수까지 비행기를 타고 ‘위로 위로 올라가고’, 해가 뜨자 팔을 퍼덕거리며 수탉처럼 ‘꼬끼오~’해준 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서’ 침대로 돌아오는 믹키의 동선은 불안감, 흥분, 안도 등 주인공의 심리상태와 일치하기도 한다.
여기서도 달은 별들과 함께 언제나 배경에서 믹키를 바라보고 있지만,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달처럼 엄마의 따뜻한 시선은 아니다. 믹키는 ‘달도 지나고, 방에서 꼭 붙어 자고 있는 엄마 아빠도 지나서 past the moon & his mama & his papa sleeping tight’ 부엌으로 두둥실 떠내려간다.
그들은 믹키의 외침도 듣지 못했다. 이상한 밤에 믹키와 함께 있었던 것은 그의 비행기이다. 침대 머리맡에 있던 비행기는 부엌에서 반죽 비행기가 되어 믹키를 태우고 요리사들 손아귀에서 벗어났고, 높은 우유병까지 도달하였다. 모험이 끝나 침대로 돌아왔을 때에도 머리맡에 여전히 매달려 그를 반겨 주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처럼 <깊은 밤 부엌에서>도 금서 논란이 있었다. ‘꼭 붙어 자고 있는 엄마 아빠의 소음’이 믹키의 단잠을 방해했을 지도 모른다는 추정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잠옷이 벗겨져 알몸이 된 믹키의 ‘고추’가 여러 차례 보이고, 특히 수탉 흉내를 내는 장면에서는 정면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 너머 밖에서>에는 ‘잡혀가면 어쩌지?’라는 공포가 등장한다. 꼬마 괴물 고블린들이 이다(Ida)의 어린 동생을 신부감으로 삼기 위해 납치한다. 이다는 용감하게 동생을 찾아와, 납치 공포를 물리친다.
이 그림책은 동생이라는 존재에 대해 큰 아이가 느끼는 부담감, 책임감, 그리고 애정도 보여주고 있다. 이다는 동생을 매우 사랑하고 아끼지만, 자신의 놀이, ‘나팔불기’에 심취하여 바로 뒤에서 고블린이 동생을 납치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의연히 일어나 나팔과 엄마의 비옷을 입고 그 뒤를 쫓아가지만, 놀랍게도 고블린은 동생처럼 어린 아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동생을 사랑하지만, 가끔씩 괴물처럼 느껴진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Oh, how those goblins hollered and kicked, just like her sister!(고블린들이 어찌나 투덜대고 발길질하는지! 정말 이다의 동생이랑 똑같군요)"
여기서도 달은 이다를 지켜보고 있지만, 엄마가 아닌 아빠의 시선이다. 바다로 떠나는 아빠를 배웅한 뒤, 엄마는 정원에 있다. 앙앙 울어대는 동생을 이다가 달래고 있지만, 엄마는 아이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바다만 바라본다. 이다가 엉뚱한 방향에서 동생을 찾고 있을 때에도, 바다에 나간 아빠의 노래가 이다를 제 길로 가도록 도와준다.
<저 너머 밖에서>(Outside Over There)의 그림은 앞선 두 작품처럼 귀엽지 않다. 배경그림까지 꼼꼼히 묘사하고 채색하여 훨씬 ‘어른’스럽다. 동생을 찾아오는 여자아이 이다의 활약을 그린 모험담이지만, 신나지도 않고 흥겹지도 않다.
이른바 ‘삼부작’은 아니지만, 흥겹지 않은 모리스 센닥의 그림책을 하나 더 소개한다.
< 우리는 모두 쓰레기더미에 있다-잭과 가이와 함께>(We are All in the Dumps with Jack and Guy)다.
미국의 구전동요 마더구스(Mother Goose)에서 차용한 두 개의 노래로 줄거리를 만들었고, 그림체는 만화처럼 귀엽지만, 내용은 매우 어둡다. 아동용 서가에 꽂혀있지만, 어른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대도시 빈민가 판자촌, 누더기조차 제대로 걸치지 못한 아이들이 살고 있다. 어느 날, ‘도와주세요. Help’만 입에 달고 사는 ‘유색인 꼬마’가 쥐 두 마리에게 잡혀간다. 잭과 가이는 그를 되찾기 위해 카드게임을 하지만, 지고 만다. 분노한 달의 도움으로 그들은 다시 꼬마를 찾아와 별빛 아래에서 잠이 든다.
표지에서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달이다. 심술궂은 표정이지만, 쥐들이 꼬마를 잡아갈 때는 슬퍼하고, 카드게임에서 졌을 때는 안타까워 한다. 쥐가 꼬마의 눈을 깨물었을 때는 불같이 성을 내며 입을 크게 벌린다. 그 입으로 잭과 가이를 물어 꼬마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준다. 달은 커다란 흰 어미 고양이가 되어 쥐들을 쫓아낸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살 곳도 제대로 없는 아이들의 현실이 빈 상자에 적힌 광고문구와 아이들이 덮고 자는 신문지의 기사들을 통해 나타난다. 이 우울한 그림책은 바로 이 순간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아이들의 공포, 두려움을 고발한다.
모리스 센닥의 작품은 아이들에게는 공감을 일으키고, 어른들에게는 유년을 이해하게 한다. 괴물을 만나지는 않을까, 괴물이 되면 어떡하나, 잡아 먹히면 어쩌나, 납치되지는 않을까. 아이들은 환상을 통해 스스로 두려움을 치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 아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구석구석에는 얼토당토 않은 공포가 현실인 곳에 너무나 많다. 아이를 직접 낳고 키워보니 이제야 알겠다. 나의 아이가 소중한 만큼 남의 아이도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 IN THE NIGHT KITCHEN, Maurice Sendak, Harper Collins Publishers, 1970
Outside over there, Maurice Sendak, Harper Collins Publishers, 1981
We are all in the dumps with Jack and Guy, Harper Collins Publishers,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