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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에서는 문법을 위한 언어가 아닌, 실제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뜻에서 'authentic language (진짜 언어)'라는 말을 쓴다. 한국어의 경우에도 우리가 규범적으로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어와 직접 사람들이 사용하는 한국어가 많이 다르다.

성인으로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실제로 사용되는 말을 배우고 싶어한다. 이들을 위해 한국에 가서 여러 실제 대화를 녹음해 본 적이 있다.

그 중 한 시장의 옷가게에서 손님과 주인이 나눈 내용인데 잠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손님: "저기 있는 핑크 티셔츠는 얼마예요?"
주인: "그거 2만원이에요".
손님: "저 스타일 말고는 없어요?"
주인: "칼라 안 달린 라운드 네크도 있어요".
손님: "그럼, 그 핑크 라운드 네크 티셔츠로 주세요".

이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까? 순간 고민이 됐다. 이 대화만 들어보면 한국어는 한국 문장에 영어 단어를 끼어넣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또한,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목들을 보다보면, 정말 알 수 없는 언어의 조합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것도 사라져가는 한국 단어들을 공부한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의 제목까지도 영어 단어들이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영어 단어들을 그대로 소리나는대로 써 놓은 경우도 있고, 한국어와 조합시켜서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최현배 선생님처럼 모든 말을 순수 한국어로 풀어서 '이화여자대학교'를 '배꽃계집 큰 배움터'로 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무분별하게 생성되거나 널리 사용되는 외국어 또는 외래어들의 남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어가 혼탁해진 데에는 언론, 특히 TV 프로그램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시청자들의 시선을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 좀 더 자극적이고 강렬한 제목들을 찾다보니 그렇게 되기도 했겠지만, 제목만 들어서는 무엇을 하는 프로그램인지 그 프로그램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 전혀 알 길이 없고, 한국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외국어도 아닌 알 수 없는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제목들을 볼 때, 한 번 더 생각해서 좀 더 신선하고 효과적인 우리 말을 이용한 제목들을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3대 지상파 방송의 오락프로그램 제목들

KBS

제1 TV

가요무대, 가족오락관 , 국민가수 이미자, 라라의 스타일기, 빅쇼 2007, 열린음악회, 전국노래자랑, 콘서트 7080, 퀴즈 대한민국, 태극천자문, 폭소클럽2

제2 TV

감성매거진 행복한 오후, 개그콘서트, 경제 비타민, 그랑프리쇼 여러분,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3 , 남희석 최은경의 여유만만, 닥터 후 시즌2, 더 뮤지션, 도야지봉, 도전 주부가요스타, 뮤직뱅크, 미녀들의 수다, 비타민, 빅마마, 상상플러스, 쇼 파워 비디오, 스타 골든벨, 스펀지, 어글리 베티, 연예가 중계, 영화가 좋다,요리조리 맛술사, 웃음 충전소, 위기탈출 넘버원, 윤도현의 러브레터, 인조곤충 버그파이터

MBC

!느낌표, 개그야(夜), 거침없이 하이킥, 무한도전, 섹션TV 연예통신쇼! 음악중심, 쇼바이벌,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일요일 일요일 밤에, 지피지기, 환상의 짝꿍, 황금어장, MBC 가요큰잔치, 로그인 싱싱뉴스, 뽀뽀뽀 아이조아,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찾아라! 맛있는 TV, 출발! 비디오 여행, 행복주식회사, NG스페셜 해피타임, TV 특종! 놀라운 세상

SBS

SBS 인기가요, 게임 쇼 즐거운 세상, 결정! 맛대맛,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 놀라운 대회 스타킹, 도전! 1000곡, 생방송 TV연예, 슈퍼! 바이킹, 신동엽의 있다! 없다?, 야심만만 만명에게 물었습니다, 웃찾사, 음악공간, 일요일이 좋다 하자 GO, 작렬! 정신통일, 재미있는 TV천국, 접속! 무비월드, 진실게임, 퀴즈!육감대결, 탱자연예뉴스, 헤이헤이헤이2
/ KBS, MBC, SBS 홈페이지

프로그램들의 이름을 대충 살펴보면,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해피 선데이, 해피 투게더, 빅쇼, 더 뮤지션, 뮤직뱅크, 스타 골든벨, 스펀지, 쇼 파워 비디오, 러브레터, 개그콘서트, NG 스페셜 해피 타임, 슈퍼! 바이킹, 무비월드, 헤이헤이헤이2, 비타민, 빅마마, TV 서프라이즈' 등과 같이 영어를 그대로 쓰거나 두 개의 영어 단어를 조합하여 만든 제목들이 있다.

이들 제목들 중에 '더 뮤지션'이나 '무비 월드' 등은 한국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 제목이 좀 더 세련되어 보인다는 착각에서 만든 제목 같다. 특히, '더 뮤지션'의 경우에는 영어의 명사 뿐 아니라 정관사인 'the'까지 그대로 한국어 표기법으로 써서 거부감을 갖게 하는 경우라 하겠고, '무비 월드'의 경우도 '영화 세상'이라고 하여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하는 제목들이다. '쇼바이벌'의 경우에는 아마도 '쇼'와 '서바이벌'의 결합인 것 같은데, 이제 영어 단어까지 만들어내려 하는 대단한 도전으로 보인다.

다음은 영어와 한국어, 혹은 한자어와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제목들로 '개그야, 거침없이 하이킥, 섹션 TV 연예통신, 콘서트 7080, 퀴즈 대한민국, 폭소클럽2, 감성매거진 행복한 오후, 경제 비타민, 그랑프리쇼 여러분, 도전 주부가요스타, 상상플러스, 위기탈출 넘버원, 쇼! 음악중심, 로그인 싱싱 뉴스, 일요일이 좋다 하자 GO, 진실게임, 퀴즈! 육감대결, 탱자연예뉴스, 놀라운 대회 스타킹 '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중에는 이미 외래어로 굳어져 널리 쓰이는 '개그, 콘서트, 퀴즈, 클럽, 비타민, 쇼, 스타'등의 단어들도 있지만, '플러스, 하이킥, 섹션, 매거진, 그랑프리쇼, 넘버원, 로그인'등의 단어들을 한국 단어들과 결합시켜 사용한 사례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섹션 TV 연예통신'에서의 '섹션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랑프리쇼'는 어떤 것을 내포하고 있는지, '상상플러스'는 잊혀져가는 한국 단어를 공부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하면서 프로그램 제목이나 코너 제목을 꼭 '상상플러스'나 '올드 앤 뉴'라고 해야 하는지 의문이 간다.

마지막으로 한국 단어들을 아름답게 잘 사용하여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제목만 들어도 그 프로그램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좋은 제목들도 있다. '웃음 충전소, 환상의 짝꿍, 결정 맛대맛, 느낌표, 여유만만, 미녀들의 수다, 요리조리 맛술사, 가족오락관, 가요무대, 열린음악회, 태극천자문, 연예가 중계, 영화가 좋다, 무한도전, 놀러와, 일요일 일요일밤에, 지피지기, 황금어장, 가요큰잔치, 뽀뽀뽀 아이조아, 행복주식회사, 인기가요, 좋은 아침, 있다 없다, 야심만만, 웃찾사, 음악공간, 작렬 정신통일 '등이 한국어로 구성된 제목들이다.

이 중에서 '뽀뽀뽀 아이조아'와 같은 경우에는 아직 한글을 채 깨우치지 못 한 미취학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으로서 '아이 좋아'의 철자법을 귀엽게 들리게 한다는 취지에서 '아이조아'로 쓴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아이들로 하여금 철자법의 오류를 가져오게 하는 잘못된 생각으로 보이고, '웃찾사'와 같은 경우도 요즘같이 말 줄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세대에 불을 붙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중에서 필자가 좋아하는 제목은 '느낌표, 놀러와, 가족오락관, 웃음충전소, 환상의 짝꿍, 결정 맛대맛, 열린 음악회, 음악 공간'등인데, 아주 신선하면서도 프로그램의 성격을 정확히 나타내주는 좋은 제목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신선하고 멋진 프로그램 제목들이 많이 나와서 외래어로 물들어가는 한국어에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본교 한국어 교실의 필리핀 학생 강수진씨의 말을 빌어보면, 필리핀의 고유어들이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말은 남아 있지만, 단어들은 거의 영어 단어들을 쓴다고 한다. 이 현상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한국도 점차 그렇게 되어 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또 다른 중국계 미국인 학생 왕중화씨는 한자어로 된 한국 단어들이 나올 때마다 '중국어와 비슷하다, 일본어와 비슷하다' 라고 하면서 다른 학생들에게 한국어의 대부분 단어가 중국에서 간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부정하고 싶지만 사실이기에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제 10년, 20년이 지나서 한국어를 배우는 영어권 학생들이 한국어가 영어 단어로 이루어진 언어라 착각을 할까 겁이 난다.

#영어#한국어#프로그램 제목#단어#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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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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