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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문
지난 5월 22일 오전의 일입니다. 제가 다니는 방송통신대학교에서 한 수업을 마치고, 동료 학생 몇 명은 바람기가 돌아 인사동 행 버스를 탔더랬습니다. 더우면 못 가니 지금 가야 한다는 주동자분의 은근한 협박은 사실 즐거운 유혹이었습니다. 방송대의 특징이지만 이번 나들이 동행인들의 나이 차이는 격심합니다(?).

그러나 학교 안도 장시간의 산책과 나들이하기에 좋은 곳임을 먼저 말씀드리고 인사동 나들이를 소개하겠습니다.

학교 뒤 후문으로 향하는 외길에는 숲 울타리 역할을 하는 쥐똥나무 덤불이 쭉 이어져 있습니다. 지난 해 겨울까지 한껏 시꺼먼 열매를 달고 있더니, 이제 푸른 잎새 사이로 은근한 향기 내뿜는 정말 자잘한 흰색 꽃들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 은근한 향내 때문에 한 아주머니가 그곳 앞에 앉아 식후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학교 안은 나무마다 꽃잎마다 온통 녹색 물이 짙게 배어 있어, 손만 대면 묻어날 것 같습니다.

진달래가 늑장 부린다 싶었는데 진달래인 줄 알았던 철쭉도 다 지고, 철쭉인 줄 알았던 붉은색 연산홍도 거의 지고 있는 학교 마당엔 녹색만이 마치 5월의 색인 양 위엄을 떨치고 있습니다. 그 흔한 장미도 출입허가증이 없는지 학생증이 없는지 좀처럼 보이지 않네요. 겨우 한 그루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날개가 둘 달린 시과가 특징인 단풍나무만은 가을의 색을 담지하고서 은근히 붉은 끼를 발휘하며 가을을 기다립니다.

감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교수 1동 뒷 뜨락에 있는 감나무가 작년 감을 주렁주렁 매달더니, 그 팝콘 모양 같다는 노르스름한 감꽃을 드디어 매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이 개화시기거든요. 저는 올해 처음 보았습니다.

동화를 읽고 알았지만, 정말 떨어진 감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 놀았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잎 사이로 빈 공간이 있거든요.

중앙도서관 앞에 독야청청 서 있는 느티나무(제가 듣기론 느티나무라고 하는데 영 미덥지가 않습니다)를 옥상에서 자주 만납니다. 잎사귀를 가끔 만지작거리는데, 신기하게 잎사귀 위에 팥알 크기만한 것들이 돋아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잎사귀 위에 마치 부종 같이 말입니다. 무슨 나무인지 아시나요?

이런 주변의 늦봄 분위기 속에서 실컷 떠들며 수업을 하고서, 무언가 허전한 듯 우리는 맛난 것을 찾아 떠났습니다. 인사동에 '土房(토방)'이라는 음식점이 있다는 것을 주동자분께서 애써 알아오신 거죠.

버스는 원남동 사거리를 지나, 예전에는 고가도로가 있어 위태위태하게 좁은 고가를 버스가 지나가던 길, 창경궁과 종묘 담 사이의 길을 지나 안국동으로 향합니다. 동행인 중 한 분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지나가는 길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안국동 주변은 어릴 때 놀던 곳이고요. 그렇게 추억을 되살려주는 기회가 되어 좋았습니다.

인사동과 안국동 주변은 제게도 훤한 동네입니다. 안국동 옆으로 이름도 아름다운 가회동도 사랑스럽구요.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웠으니 인사동 옆 조계사에는 오색 연등이 지붕이 되어 수를 놓고 있겠지요.

점심시간 무렵이라 그런지 인사동 골목이 분주합니다. 데이트나 나들이 나온 젊은이들도 많았습니다. 미술관이 즐비한 곳이니, 화가나 미대생들에겐 안마당 같은 곳이겠지요. 외국인 많은 거야 당연하고요. 인사동 입구의 한 빵집은 아예 벽과 창이 되는 미닫이 문을 완전히 열어제치고 영업을 합니다.

'土房'을 찾아갔습니다. 샛골목으로 들어갈 필요 없이 중앙 길 상가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토담집 같은 식당 내부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딱 제 때의 점심 시간이기도 했지만,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그런 식당이구나 싶었습니다. 할 수 없이 인사동을 잠시 누비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인사 아트센터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층마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이곳 로비 중앙에는 사방이 투명유리로 된 멋진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그 엘리베이터를 감싸며 놓여 있는 나무 계단을 오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차례차례 보면서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5층의 전시장 그림은 그저 그랬습니다. 그때, "오늘이 제 생일입니다. 좋은 시간 보내고 있네요" 하고 말을 꺼내서 인사동 나들이를 더욱 '합리화' 시켰습니다. 예, 그날이 제 생일이었습니다. 부처님보다 이틀 먼저 태어났다고 자랑하곤 합니다.

그런데 4층의 전시회 덕분에 날씨가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하는 날 그 나들이가 더욱 빛과 열을 냈습니다.

ⓒ 봉문
한 스님의 사진 전시회였습니다. '안거(安居)'라는 주제였습니다. '안' 자가 '편안할 안' 자군요. 흑백으로 일관된 커다란 사진들이 사방 벽을 가득 메웠습니다. 사찰의 풍경을 찍은 사진들이구나 싶었는데, 안내석에 있던 한 아가씨가 다가와 설명을 해줍니다.

단번에 그 아가씨와 저는 많은 말을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사진이라는 공통분모, 공통 관심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통분모가 있고, 그 자리가 그 공통분모의 장이니 말은 청산유수처럼 나왔습니다. 말이라기보다 질문이죠. 정말 색다른 사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전시장의 사진은 스님이자 시인이자 사진가인 봉문 스님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작품이라고 말하면 스님에게 누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님 자신은 작품을 남긴다 말 안하실 것 같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찍음과 찍힘의 방식이 사뭇 달랐습니다.

사진의 많은 부분은 백담사 스님들의 동안거나 하안거 때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찰 내 안거를 하는 집(그 이름을 듣긴 했는데 잊어버렸습니다)은 철저히 폐쇄된 곳입니다. 3개월 정도를 보내는 그 기간 동안 안거의 집은 밖에서 자물쇠로 걸어 잠겨집니다. 봉쇄 수도원과 같은 곳이 되지요.

ⓒ 봉문
창으로 급식을 넣어줄 뿐 스님들은 절대 밖으로 나오지 않고 각자 자기만의 방에서 생활하고 선을 행합니다. 선방이 되는 거지요. 사진 속 스님들의 모습이 자연스럽습니다. 차를 끓여 마시는 버너도 눈에 띕니다. 제겐 자가용 모는 스님처럼 이색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일반인들은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곳을 사진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봉문 스님은 주지 스님의 허락을 받고 자신도 수행을 하면서 수동 카메라로 잠깐 잠깐씩 사진을 찍었습니다. 인화도 수작업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나 너 찍는다"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요는 찍는다는 의식도, 찍힌다는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찍은 사진들이랍니다.

그러니까 연출도 없고 가식도 없고 '뾰샵'도 없고 멋진 찰나도 없는 그런 사진들이었습니다. 선을 하는 사람들이 보면 단박에 이 사진들을 이해한다 했습니다. 저 순간이 어떤 순간이고, 아무 의식 없이 지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말일 것입니다.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막상 누군가 저를 찍으려 한다면 얼굴이 굳어지는 저로서는 정말 부러운 경지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인간시대>라는 휴먼 다큐드라마가 있었지요.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일상의 모습을 자연스레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시청자 입장에서 아주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보이는 장면들은 사실 그 전에 피디와 카메라맨들과 주인공들과의 편안한 관계가 선행된 후에야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같이 동고동락하면서 친해지고, 마치 카메라가 없는 셈치고 평소대로 생활하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과정과 훈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성우의 목소리로 나오는 말들 그러니까 (구성작가 같은 이들의) 글을 써보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가끔씩 글 쓰는 제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이곳의 사진은 그런 것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히 일생을 선을 행하며 사는 이들의 삶과 의식을 속인이 감히 범접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전시장을 나오면서도 계속 의식없이 찍고 찍힌다는 것이 뇌리에 남았습니다. 욕심 없이 자잘한 번뇌에 구애받음 없이, 오로지 한 가지 화두에만 몰두하며 24시간을 보내는 이들의 그 '의식'이 궁금했습니다.

그런 평정으로 일상을 산다면 참으로 느리게 욕심 없이 짜증냄 없이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꼭 해야만 하는 일만 하면서요. 그러다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 꽃들, 강아지들을 마치 선물처럼 만나는 거지요. 그런데 강아지요?

아! 이건 비밀입니다만, 나들이 다음날 멋진 경험을 했습니다. 방송통신대학교 안에 터줏대감 같은 누렁이 개가 한 마리 살고 있습니다. 수위실 앞에 턱 주저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마치 도 닦는 도인마냥 지켜봅니다.

개를 좋아하는 저는 친해지려고 그 친구에게 가까이 다가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자리를 피하는 바람에 번번이 바람만 맞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손짓하는 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매만져 주면 제 앞에 주저앉습니다. 나이가 꽤 들어보이는, 그래서 거동도 굼뜬 개였습니다.

사실 이 개가 어디서 잠을 자고 밥은 어떻게 먹는지 몰랐습니다. 수위 아저씨들이 보살피는 것 같고, 해가 질 무렵이면 사라지는 녀석의 사생활이 궁금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 학교 안의 작은 정원 안에 그것도 나무와 덤불로 기가 막히게 둘러싸여 있는 잔디밭 한가운데 이 개의 집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날, 이 녀석의 다섯 마리나 되는 새끼들을 보게 된 거죠. 아저씨 두 분이 개집 근처에 있길래 개 안부도 물어볼 겸 들어갔던 것입니다. 수위 아저씨가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을 한 마리 한 마리 들고서 우유를 먹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가가니 어미가 저를 맞이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반갑게 제 손을 핥으면서요. 전에는 안 하던 행동이었습니다. 새끼들이 있어 경계심이 일 터인데도 저를 반가운 손님으로 허락한 것입니다. 이런 만남이 저에게는 그 날의 선물이었습니다.

ⓒ 봉문
다시 사진 전시회 이야기입니다. 안내를 해준 아가씨와 말이 길어졌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었으나 동행분들이 로비에서 기다리니 이 정도로 인연을 마쳐야 했지요. 명함이라도 전해줄 걸 그랬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 이 아가씨는 개신교 신자 그렇게 둘이 스님의 삶을 배웠습니다.

알고 보니 그 날이 전시회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그 사진들과의 만남도, 그 아가씨와의 짧은 만남도 다 생일 선물이었습니다. 아쉬운지 돌아가는 저희들에게, 이제 끝물에 들어간 전시회의 안내장을 나누어 줍니다. 덕분에 사진 두세 장을 얻었고, 이 글과 같이 실린 사진은 그 안내장에 있던 것입니다.

土房에서의 식사는 그저 그랬습니다. 시골밥상 같은 한식 음식이었습니다. 애꿎은 굴비 한 마리씩이 밥그릇 옆에 놓였습니다. 제 생일이라 한 턱 쏠려고 했는데 '더치 페이' 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안국동의 제가 가끔 들르는 빵집에 들어가 약식 생일 축하 파티까지 치렀습니다. 동행분들이 네모난 녹차 빵에다 카운터에서 구해 온 초 하나로 멋지게 생일 케이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맛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며 한적한 오후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헤어졌습니다.

눈을 바로 뜨면, 무심하면, 느리게 걸으면, 욕심을 조금 덜어내면 아마 만사가 선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순간이 선물인 것 분명하니까요. 스님의 사진 찍는 법이 제게 당분간 화두로 남을 것 같습니다. 가끔씩 생각하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되겠지요.

추신 하나.

컴퓨터에 서툰, 그래서 사진 크기 조절하는 것도 최근에 간신히 배운 제게 동생이 포토샵에 관한 책자를 건넵니다. 온통 '뾰샵'에 관한 내용들입니다. 아직 디카 사진을 올리는 방법도 모르고, 스캐너로 필름 사진을 화면에 올리는 구시대적인 제가 이 책을 보게 될까요? 모를 일이지요.

덧붙이는 글 | 위의 사진은 전시회장에서 받은 안내장에 있던 것을 스캔받은 것입니다. 스님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안거#스님#인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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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번역은 지금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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