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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달과 수걸은 상대와 자신의 전력을 은근히 가늠해 보았다. 머릿수는 일단 하달 쪽이 많았지만 기세는 방금 전까지 상대를 쫓던 수걸 쪽이 조금 앞서 있었다. 일단 맞서 싸우면 한쪽의 일방적인 우세보다는 양측 모두 피해를 감수해야 할 처지임에는 분명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았단 양측은 말없이 어둠 속에서 눈을 번뜩이며 한참동안 서로를 노려볼 따름이었다. 누가라도 입을 열기만 하면 돌도끼가 날아들고 살과 뼈가 찢어지고 부숴 지는 고통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질 것만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달은 무슨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지만 상대와 타협을 할 여지가 있는지 자신이 없었다.

‘이 상황은 우리에게 좀 더 불리하다. 틈을 만들기 위해 무슨 수를 내야 한다.’

하달이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먼저 말문을 연 쪽은 수걸이었다.

“우린 굳이 싸울 생각은 없다. 보아하니 전에 무리를 통솔하던 자 같은데 나를 기억하겠나?”

하달은 가볍게 수걸의 말을 받았다.

“이미 내 이름까지 알고 있으면서 새삼스럽게 뭘 그러나? 그리고 싸울 마음이 없다면 저 많은 무리들은 뭐란 말인가?”

수걸은 도끼를 치켜든 손을 서서히 내리며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소. 원래 우리는 머나먼 북쪽 큰 호수가에 살고 있었지만 ‘바살’이라고 하는 사나운 자들이 수없이 몰려들어와 우리를 내몰아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오, 그들은 언젠가 산과 강을 넘어 이곳까지 들이칠 것이오. 그렇기에 제안을 하고자는 것이외다.”

수걸이 맞은편에서 바짝 긴장한 채로 하나 남은 화살을 활에 재고 있는 처얼을 바라보느라 잠시 말을 끊자 하달은 이를 만류했다.

“기다려라. 저 자의 말을 한번 들어보자꾸나.”

“감사하오. 지금 우리는 거느린 사람들의 입은 많으나 겨울을 날 식량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오. 우리에게 겨울을 날 수 있는 식량을 제공하면 다음해부터는 황무지를 개간해 농지를 넓히고 농사일을 돕겠소. 그리고 당장 쳐들어오는 바살족을 막아 두레마을을 지켜내겠소이다. 바살족이 사납기는 하나 우리와 두레마을이 합쳐진다면 감히 덤벼들지 못할 것이오.”

하달은 수걸의 말이 끝나자 느닷없이 껄껄 웃기 시작했다. 수걸은 물론 두레마을의 장정들까지 하달이 웃는 진정한 의미를 몰라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그대가 알지 모르나 그대의 족속은 삼십년 전에 우리의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잡아간 일이 있소. 그때의 일은 생각해 본다면 이런 제안은 믿기 힘들지 않소?”

“......역시 그 일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입니다만.”

수걸은 가지고 있던 횃불과 돌도끼를 옆에 서 있던 부하에게 맡겼다.

“주위에 있는 자들은 모두 돌려보내도록 합시다. 이들이 이토록 긴장하며 노려보고 있으니 편히 말을 나누기 어렵군요.”

처얼이 옆에 하달의 옆에 바짝 붙어서 주의를 주었다.

“저 자들이 무슨 흉계를 꾸밀지 모릅니다. 홀로 저 자와 남아 있으면 아니 됩니다.”

하달은 수걸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하달은 수걸의 눈 속에서 자신이 보고자 했던 탐욕이 아닌 분노와 아쉬움을 읽어내고서는 조금은 혼란에 빠졌다.

“아니다. 어서 물러가거라. 물러가서 방비를 철저히 하라 이르거라.”

“장로님!”

이미 수걸의 부하들은 수걸의 명령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다. 만약 두레마을의 장정들이 무기를 휘두르며 일제히 덤빈다면 위험한 상황이 닥칠 수도 있었지만 수걸은 하달이 홀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 했다.

“어서 가라지 않느냐!”

너르족 장정들과는 달리 두레마을의 장정들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느린 걸음으로 물러나갔다. 희미한 별빛만이 그들의 사이를 비추는 가운데 수걸은 하달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두레마을#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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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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