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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그칠 기미도 없이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보면서 저 비가 내일까지 내리면 어떻게 하나 안절부절 못하며 잠이 들었다. 비가 계속 내리거나 조금이라도 흐렸다가는 오늘로 예정되어 있는 졸업사진 촬영을 못하게 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려 한 달 전부터 마음 졸이며 기다려오던 졸업사진 촬영.

25일 아침, 평소보다도 맑게 개인 하늘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정작 나 자신은 졸업이 멀어 사진을 찍지도 않으면서 동기들 걱정에 덩달아 마음 졸이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날씨가 개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안도감 때문이기도 했다.

▲ 오전 11시 증명사진 촬영을 위해 제2학관에 모인 동기들
ⓒ 최재인
내 친구를 나도 못알아보겠네

오전 10시, 여자 동기들이 미용실에서 화장을 하고 있거나, 이미 다 마치고 학교로 오고 있을 시간이다. 누구보다 가장 기대되는 사람은 진영(가명)이다. 평소 화장한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거니와 티셔츠에 면바지를 즐겨 입던 진영이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신'을 했을까.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난다.

11시부터 증명사진 촬영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부랴부랴 제2학관으로 달려갔다. 소위 '졸업사진 의상'이라고 불리는 하얀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보통 치마)를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 모습이 마치 여중생의 교복차림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얼굴을 보는 순간 생각이 달라진다.

대학생활하면서 이제껏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동기들의 '변신'한 모습이 하도 신기하여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찰나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최재인, 사진도 안 찍는 니가 여기엔 왜 왔어"라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시선이 닿는 곳에 진영이가 있었다. 한참만에야 알아봤다. 진영이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나를 보며 자신도 무안한지 연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화장을 하고 '졸업사진 의상'을 차려 입은 모습이 정말 예뻤다.

너, 어디서 얼마 주고 했니?

대기 중인 동기들의 주된 대화 소재는 "너 어디서 했니?" 였다.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서 이화여대, 성신여대 근처에 있는 미용실에 가서 화장과 머리를 하고 온 동기들의 수가 절대적이었다. 아니, 경진(가명)이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였다. 졸업사진을 찍기 위한 준비과정에 대해 전혀 지식이 없는 나는, '변신'을 하는데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드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선민(가명)이는 발갛게 상기된 표정으로 일회용짜리 드라이를 하고 화장을 하는 데에만 4만원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동기들의 사례까지 모두 종합해 봤을 때 졸업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서는 옷 값까지 포함해서 평균 20만원 정도가 드는 셈이다.

하지만 남자 동기들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았다. 대부분 군복무 중이라 이번에 졸업사진을 찍는 사람은 두 명뿐이었지만, 정장을 입었다는 것 말고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심지어 형의 옷을 빌려 입었다는 명우(가명)는 졸업사진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찍은 셈이다.

▲ 여자동기들의 단체사진
ⓒ 최재인
'졸업사진'이 갖는 의미

요즘은 사진 찍기 전에 미용실에 가서 메이크업을 받는 남학생들의 숫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졸업자신을 찍는 데 들어간 '비용'을 기준으로 여학생과 남학생을 이분화시키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각자의 말을 들어보면, 졸업사진에 부여하는 의미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위에서 흔히 우스갯소리로 "졸업사진을 잘 찍어야 중매자리가 많이 들어온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보통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열에 아홉은 남학생이 아닌 여학생이다. 물론 이왕에 찍는 사진, 잘나오면 좋은 거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기 위해 돈 좀 들일 수 있는 거 아니겠냐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카메라의 셔터가 눌리기 직전까지 외모에 '공'을 들이는 여학생들을 보노라면 남학생들과 틀림없이 많이 다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능력'으로 평가받는 시대에 여성이 졸업사진 한 장에 '사활'까지는 아니지만 그토록 공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혹 여전히 우리 사회의 여성과 남성이 '능력'에 의해 동등하게 평가,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남성의 외모는 그가 지닌 능력으로 얼마든지 극복이 가능하다.(물론 외모가 꼭 극복해야 할 대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 아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능력 이전에 그녀의 외모로 평가를 받는다. 누구나 중요하게 여기는 '첫인상'에 여성들이 더 많은 공을 들여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가 보이도록 환하게 웃으세요!

고민을 잠시 접어두고 다시 동기들의 사진 촬영에 열중했다. 증명사진 촬영이 끝나고 바로 프로필 사진과 단체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비가 갠 직후라 평소보다 맑았던 날씨는 야외 사진 촬영을 마치 봄소풍 나온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이가 보이도록 환하게 웃어보라는 사진기사 아저씨의 요청에 진영(가명)이는 세 번이나 연거푸 어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명 '썩소'라고 불리는 어정쩡한 웃음 말이다.

"비웃지 마세요."

하는 사진기사 아저씨의 말에 주변에 있던 동기들 모두가 크게 웃었다. 덩달아 함께 웃던 진영이가 마침내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 그룹사진 촬영 모습
ⓒ 최재인
나는 곁에서 열심히 디지털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한장 한장 사진에 추억을 담고, 동기들 모두 미래에도 오늘처럼 웃는 모습이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번거롭고 돈만 드는 일, 졸업사진을 안 찍겠다고 굳게 먹었던 마음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다. 4만원 정도의 돈, 약간의 시간과 맞바꾸기에 졸업사진을 찍으면서 만드는 또 하나의 추억이 너무나 값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졸업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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