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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선생님.

오늘(26일) 유난히 화창한 하루였습니다. 신록은 눈부시게 푸르고 햇살은 투명했습니다. 햇살이 거실 깊숙이 비추던 5월의 마지막 주말 오후 저는 소파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무심히 켜놓은 텔레비전 뉴스에서 선생님 존함 석 자가 흘러나오기 전까지는 매우 평범하고 따분한 하루에 불과했죠.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요. 뉴스에서 단지 '인연의 수필가로 알려진 피천득…'까지 들었을 뿐인데 뉴스를 듣던 제 가슴은 갑자기 철렁했습니다. 저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앉았습니다. 선생님은 25일 밤 11시 40분,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뉴스를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햇살은 너무나 투명하고 나뭇잎은 푸르더군요. 참으로 무심하게도요.

그런데요, 선생님. 이상하게 슬픈 마음보다는 '좋은 날, 좋은 계절에 잘 가셨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2007년 봄까지 보고 가셨으니 행복하셨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선생님, 생전에 봄을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아마 선생님처럼 봄을, 어린 아이와 같은 천진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신 분도 드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전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꽃을 보거나 푸른 잎사귀를 바라보거나 팔랑거리는 나비에 시선이 끌릴 때면 선생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봄을 느낄 수 있음을 잠시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사함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봄>을 읽기 전까지는요.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과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과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이러한 봄을 사십 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작은 축복이 아니다. 더구나 봄이 사십이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것이다' - <봄> 중

선생님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저에게 끼친 영향이야 여기서 구태여 말하지 않으려 합니다. 어디 비단 저 하나뿐이겠습니까.

뭇 여고생들의 가슴을 저리게 했던 수필 <인연>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선생님의 작품은 참 단아했습니다. 그리고 향기로웠습니다. 처음으로 제게 수필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나의 사랑하는 생활>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중학교 소녀였던 저는 그 작품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 선생님의 작품을 한두 개씩 알게 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맹렬히 읽어대다 대학시절에는 좀 뜸해졌습니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거의 보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알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고 궁금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죠. 수필 따위는 싱거웠습니다. 그런 것 말고 재미있고 신기하고 놀라운 내용들로 가득 찬 책들이 저를 충동질했습니다.

호기심, 궁금증으로 가득 찬 세상이었습니다. 세상의 책이란 책은 모두 다 섭렵하고 싶었습니다. '저 책을 언제나 읽어볼까', 전전긍긍하며 애태우기도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여자를 갖고 싶어하는 카사노바처럼 책에 대한 제 욕심은 집요했고 집착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다 어느날인가 갑자기 책을 보기가 싫어졌습니다. 책 자체가 보기싫을 정도로 책읽기에 염증을 느끼게 이르렀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 것도 안하고 몇일만 푹 쉬고 오고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 때였습니다. 책읽기에 지쳐있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책읽기가 지겹다던 저의 손은 참으로 희한하게 선생님의 수필을 보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습니다. 한결같이 서가 한 편에 꽂혀있던 선생님의 책이 우연히 눈에 띄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수필을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책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고 알아내고 얻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참으로 편안하게 책과 마주했습니다. 선생님의 생생한 육성과 따뜻한 마음과 만났습니다. 그렇게 따듯하고 포근한 느낌 얼마 만이었는지 모릅니다.

중학교 시절, 국어시간이 생각나고 고등학교 단짝도 생각났습니다. 푸른 봄날의 햇살을 받고 있는 듯한 아련함과 평화로움이 가득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책을 읽은 하루였습니다. 정말 좋은 책이란 이러한 안식과 위안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중학교 시절 느꼈던 그것과는 또 다른 맛이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엔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이 매우 순수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순수를 벗어나니 순수가 제대로 보였다고나 할까요.

선생님. 선생님은 천상 순수한 어린 아이 그 자체이십니다. 오늘 뉴스에 함께 나온 자료사진에는 무슨 인형인가를 꼭 안고 계시며 활짝 웃고 계시는 사진이 있더군요. 난영이는 아니겠지요. 난영이도 이미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전 그 인형이 꼭 난영이로 보이더군요. 선생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셨던 당신의 딸, 서영이의 인형동생 난영이요. 선생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딸아이의 인형에게도 이름을 붙여주고 사랑하셨던 분.

선생님의 순수함을 닮고 싶습니다. 순수함에 물들고 싶습니다. 그런데 생전에 한번 뵙지도 못하고 이렇게 떠나보내고 마는군요. 선생님의 부음을 듣고는 잠시 망연하긴 했지만 그렇게 많이 서운한 기분은 들지 않았습니다. 영전에 올리는 글에 항상 등장하는 표현인 '황망하다'는 느낌도 절실하진 않습니다.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선생님이 계시나 안 계시나, 제 곁에는 항상 선생님의 수필이 함께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사실인걸요.

선생님은 수필로 영원히 저의 마음속에 살아계실 것입니다. 저뿐 아니라 앞으로 선생님의 수필을 읽을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금껏 수필을 읽은 사람도 그럴 것이고 지금 이 시간 선생님의 작품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그럴 것입니다.

선생님, 이 푸른 오월에 가실 것을 예상이나 하셨는지요. 오늘 선생님 생각에 다시 뒤적여본 수필집에 이런 글귀가 있어서 잠시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속에 있다.' - <오월> 중

선생님. 편히 쉬십시오.

2007.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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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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