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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멀리 바다가 보이는 마을풍경. 이제 모내기를 끝낸 논과 마을집들이 그림같다.
저멀리 바다가 보이는 마을풍경. 이제 모내기를 끝낸 논과 마을집들이 그림같다. ⓒ 이덕은
혼자서 차를 몰고 저 아래 남도여행을 가자니 귀경길 혼잡과 피로, 운전이 부담스럽다. 모 여행사 상품 중에서 무박여행으로 흔하게 접할 수 없는 '다랭이 마을', '우포늪', '순천만', '지심도'가 눈에 띈다.

물론 여행사 상품 특성상 여러 곳을 들르긴 하지만 마음에 두고 있었던 곳을 저렴한 경비에, 게다가 운전 신경쓰지 않고 점심에 한 잔 곁들이는 여유도 맛볼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그러나 전화를 거니 인원 미달로 모두 취소되었다면서 '외도'나 '매물도'는 어떠냐고 묻는다. 아무래도 여행코스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코스와 그렇지 않은 코스가 있는 모양이다.

이미 집사람에게 바람을 집어 넣은 터라 자가운전을 각오하지만 역시 아래쪽은 부담이 된다. 다시 한 번 인터넷을 뒤져보니 '주문진 재래시장-양떼목장-서울도착 9시' 상품이 있다. 더구나 주문진 시장에서 두어시간를 준다니 후배까지 같이 가자며 덥썩 신청했다. 게다가 1인당 1만9900원, 경비도 착하다.

방파제 담장을 쇼케이스 삼아 늘어놓은 알록달록 원피스. 재래시장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듯 우리를 마중하고 있다.
방파제 담장을 쇼케이스 삼아 늘어놓은 알록달록 원피스. 재래시장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듯 우리를 마중하고 있다. ⓒ 이덕은
귀경을 고려해서 오전에 양떼목장을 들르고, 버스는 차량으로 가득 메워진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길가 담장을 쇼케이스 삼아 걸쳐놓은 알록달록 원피스들은 바다바람에 일렁이며 우리를 환영해 준다.

언제나 주차장 화장실 곁에 자리잡은 할머니는 오늘은 앵두와 딸기를 들고 나와 팔고 있고, 그 옆 반건어물 아줌마는 가자미를 들고 한 마리 더 달라는 손님과 손사래를 치며 흥정에 정신이 없다. 엿장사 가위소리에 춤을 추는 할아버지는 오늘도 여전한 장판의 소란스러움이 오히려 푸근하게 와닿는다.

주차장 화장실 옆이 고정좌석인 할머니. 철따라 가지고 나오는 야채가 다른데 오늘은 앵두와 딸기가 주종이다.
주차장 화장실 옆이 고정좌석인 할머니. 철따라 가지고 나오는 야채가 다른데 오늘은 앵두와 딸기가 주종이다. ⓒ 이덕은
주문진으로 방향을 정하는 순간 집사람에게 단박 '젯밥에만 정신파는 중생'으로 낙인찍힌 후배들과 나는 염치불구하고 먹을 곳부터 찾는다. 오늘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먹을 수 있게 노상좌판 골목으로 들어간다.

골목 안은 굽는 연기로 자욱하고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가득하다. 자리잡고 앉아 주인 아줌마와 '서비스는 왜 이리 짜냐?'고 노닥거리며 도루묵 구이, 성게, 전복치를 시킨다. 매운탕과 야채값을 따로 받는 좌판은 오히려 수산시장내 횟집보다 비쌀 수도 있지만 사람 구경하며 먹는 재미는 그것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도루묵과 성게의 맛

노상좌판에서 먹으면 수산시장내 횟집보다 비싸질 수 있다. 그러나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이를 보상해주고도 남는다.
노상좌판에서 먹으면 수산시장내 횟집보다 비싸질 수 있다. 그러나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이를 보상해주고도 남는다. ⓒ 이덕은
도루묵구이. 도루묵은 간장에 졸여야 젓가락으로 '낫또'처럼 찍찍 늘어나는 알집을 흐트러지지 않게 먹을 수 있다. 쫀득쫀득한 알이 입 안에서 터지면서 고소한 맛이 퍼진다. 부서지기 쉬운 살도 살짝 집어 입 안에 넣으면 미끄러우면서도 기분좋게 비린 생선살이 일품이다. 구이는 도루묵 특유의 질감과 맛이 모두 사라져 '엇다 도루 묵어라'가 되어 버렸다.

휴일이라 성게값이 비싸졌어도 맛은 여전히 훌륭하다. 반 갈라놓은 성게가 가시를 움츠리며 비밀스러운 속살을 내보인다. 은밀한 것만큼 보드라운 감촉과 감치는 맛이 파란 바다내음과 함께 목구멍을 간지르며 내려간다. '큰 것으로 잡았는데도 회 뜨니 요것밖에 안 나오나?' 하는 아쉬움을 주는 전복치의 찰진 맛. 그 아쉬움을 달래려 해삼, 멍게, 오징어를 섞어 한 접시 더 시킨다.

살아서 가시를 꼼지락거리는 성게가 속살(알)을 보여주고 있다. 혀에 녹아 내리며 감치는 맛은 마치 파란 바다를 먹는 것 같다.
살아서 가시를 꼼지락거리는 성게가 속살(알)을 보여주고 있다. 혀에 녹아 내리며 감치는 맛은 마치 파란 바다를 먹는 것 같다. ⓒ 이덕은
좌판의 꽁치는 60~50마리가 1만원이다. 싸서 좋긴 한데 처치 곤란이다. 얼마나 물이 좋은지 껍질이 파란 비단결 같다.

얼마 전 왔을 때는 도루묵 알이 통통히 찼더니 이젠 그런 것 보기 힘들고 물도 좋은 것 같질 않다.

플라스틱 함지가 비좁다고 들어가 있는 문어는 체념한 듯 귀찮다는 듯 한 번씩 꿈틀거리고 오징어는 급한 성격처럼 어항 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닌다. 비닐 바가지에 광어, 우럭, 오징어, 개삼치를 담아들고 3만원이라고 흔들어댄다. 내가 보기에도 엄청 싼 가격이지만 내 마음과 장보는 아줌마의 마음이 같을 수 있나? 아줌마는 옆집을 기웃거린다.

홍게. 이제는 대게 먹으러 굳이 영덕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어시장 지천에 대게, 털게, 홍게, 랍스터가 쌓여있다.
홍게. 이제는 대게 먹으러 굳이 영덕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어시장 지천에 대게, 털게, 홍게, 랍스터가 쌓여있다. ⓒ 이덕은
대개, 털게, 홍게, 랍스터 온통 '게판'이다. 살아있는 놈은 어항과 플라스틱 함지를 돌아다니고 죽은 놈은 삶아져 겹겹히 플라스틱 체바구니에 쌓여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동해 특산인 털게는 예전엔 작은 놈만 보였는데 지금은 어른 주먹보다도 큰놈들이 즐비하니 먹는 사람이야 즐겁지만 씨가 마르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된다.

디젤엔진 소리가 나더니 작은 어선 하나가 파도를 헤치며 부두로 들어온다. 닻줄을 매자마자 콘테이너로 만들어진 사무실에서 배로 다가오는 아줌마에게 선장님 갖다 주라며 검은 비닐을 건네 준다. 뭐 좋은 거 있나 하고 좀 보자하니 가르쳐 주진 않고 '오늘 손님 치른대요' 하고 달아난다. 아침에 들어온 배는 그물을 내리고 소주 한 병 옆에 갖다놓고 그물 손질하느라 정신이 없다.

갖 잡아온 꽁치를 그물에서 떼고 있다. 그옆에선 떼어낸 꽁치를 파는데 파는 사람이나 살 사람이나 꽁치보다는 흥정하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갖 잡아온 꽁치를 그물에서 떼고 있다. 그옆에선 떼어낸 꽁치를 파는데 파는 사람이나 살 사람이나 꽁치보다는 흥정하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 이덕은
배도 부르고 고등어 한 손 사서 검은 봉다리에 넣었다면, 근처 소돌해수욕장이나 좀 더 떨어진 휴휴암, 죽도암의 기암괴석. 남애항(남애3리 해수욕장 포매리) 곁에 있는 학마을에서 김씨문중 고택 마루에 걸터 앉아 쇠백로와 왜가리를 구경하는 것도 여행의 재미를 더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5월 27일에 다녀왔습니다.  <닥다리즈포토갤러리>에도 실려 있습니다. http://yonseidc.com/index_2007.htm에서 더 많은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주문진#회집#여행#대게#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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