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지난해 11월 열린 미국산 수입쇠고기 검역설명회는 이견이 노출되면서 고성이 오가면서 결국 예정된 시연회를 마치지 못한 채 끝났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근 반입된 미국산 쇠고기에서 단순 '뼛조각'이 아닌, 갈비짝이 발견됐다. 당연히 수입금지 대상이다. 이런 사실을 정부는 국민에게 신속하게 알릴 필요가 있을까?

상식적으로는 '물론 그렇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오늘(5월 30일) <서울신문>은 비행기가 아니라 선박편으로는 첫 반입된 미국산 쇠고기 수백톤 가운데 비교적 큰 크기의 '뼈(갈비)'가 포함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수입미쇠고기 이번엔 큰 뼈')했다.

반입된 쇠고기는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생산업체('카길 사'로 확인됐다)에서 수출한 것이다.

미국 쇠고기에서 갈비짝 발견됐지만

이영표 기자는 이 기사에서 "검역 당국은 향후 어떤 조치를 취할지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손톱만한 크기의 뼛조각이면 발견된 상자만 '부분 반송'하면 되지만, 일반 뼈라면 수입위생조건에 명시된 수입금지 물질이기 때문에 전면 수입중단 조치가 불가피하게 된다"는 검역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 검역 당국 관계자는 또 "권오규 부총리가 국제수역기구의 판정과 미국 요청을 존중해 '9월 미국산 갈비 수입' 의사를 시사했고, 한미FTA 재협상도 걸려 있어 민감한 상황"이라면서 "지난 2005년 일본에서 수입금지 대상인 뼈 붙은 고기가 발견돼 수입을 금지한 전례도 무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이영표 기자는 "농림부 관계자는 미국 대사관측이 뼛조각 검역과 관련해 청와대 등에 연락해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안다"면서 "명백한 내정간섭으로 도가 지나치다"는 반응도 소개했다.

<서울신문>의 이 기사는 오늘 아침 '서울판'에만 실렸다. 어제 밤늦게까지 농림부 관계자들한테서 '최종 확인'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영표 기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업체와 현장 검역 관계자로부터 지난 25일 수입된 미국산쇠고기에서 갈비뼈가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검역 문제를 맡고 있는 농림부 축산국 관계자들로부터 최종 확인이 안돼 마지막 판에 가서야 기사를 싣게 됐다"고 말했다.

농림부 담당 부서인 축산국 관계자들은 어제 끝까지 이 같은 사실에 대해 "모른다"며 확인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확인해보겠다던 국장의 '리턴 콜'은 끝내 없었다. 그러나 "아니다"라고 부정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이 기자는 관련 업체 관계자, 검역 관계자, 그리고 제3의 취재원에 대한 취재 결과에 입각해 이를 보도했다.

이영표 기자는 "이런 사실은 당연히 농림부에서 브리핑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신속하게 알려주어야 할 일이 아니겠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그렇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답변했다.

[1차시도-담당 주무관] "계장·과장에게 물어보세요"

▲ 지난 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한미FTA 협상타결 발표 기자회견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를 비롯한 한미 양측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번 미국산 수입쇠고기 갈비뼈 발견 보도 경위는 정부의 브리핑제도나 공직 사회의 정보 공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민감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든, 고장난 보고체계 때문이었든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 중요한 정보를 '신속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발로 뛴 기자의 '확인취재'에도 끝내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농림부는 <서울신문>의 보도가 있자 30일 오전 10시경 부랴부랴 이같은 사실을 확인한 '보도자료'를 냈다.

궁금했다. 확인을 안 해준 것인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였을까?

미국산 쇠고기 검역을 맡고 있는 농림부 축산국 가축방역과 과장과 계장은 '회의중'이었다. 담당 주무관에게 물었다.

"25일 들어왔다고 하는데 갈비뼈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언제죠?"
"계장님이나 과장님한테 물으십시오."
"두 분이 회의 중이어서 그런데 실무자로서 언제 확인됐는가 정도는 알려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답변드릴 수는 없습니다. 계장님이나 과장님한테 물어 보십시오."

'철벽'이다.

[2차시도-담당 과장] "알지 못했어요, 끊어요"

1시간 정도 후에 담당 과장과 통화가 됐다.

<오마이뉴스>에서 미디어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고 소개하고, 언제 확인했는지를 물으려 했다. 그러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담당 과장은 "보도자료를 보내줄 테니 보시면 된다"는 말로 대신했다.

"보도자료 내용은 파악을 했습니다. 보도자료에 나와있지 않은 점이 궁금해서 전화를 드린 건데, 언제 이런 사실을 확인하셨는지요?"

왜 묻는가 싶은 모양이었다. "<서울신문> 이영표 기자가 어제 밤 사실 확인을 요청했는데, 모른다고 하셨다면서요,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묻는 것"이라고 보충 설명을 했다.

"그렇잖아도 청와대에 경위서도 냈습니다. 알지 못했다니까요. 어제 밤늦게 국장하고 나한테 확인전화가 왔는데 몰랐어요."
"그렇다면 오늘 <서울신문> 보도를 보고…."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끊어요" 하고 전화가 끊겼다.

[3차시도-홍보관리관]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오후쯤 돼야"

이제 어쩐다? 언론 창구인 홍보관리관실로 전화를 했다.

"보도 자료가 아직 홈페이지에 게시되지 않았던데요."
"담당자가 출장을 가서 오후가 되면 올라갈 것입니다."
"보도자료 내용은 대략 확인을 했는데, 궁금한 것은 이런 사실을 농림부에서 언제 확인을 했던 것인지 궁금해서 연락을 드렸는데요."
"글쎄요, 프로세스를 아시는 분이 안 계셔서 언제 확인이 됐는지는 모르겠는데요."
"그럼 언제쯤 확인을 할 수 있을까요?"
"오후쯤 돼야 할 것 같은데요."

왜 그것을 확인하려는지, 또 그간의 취재 경위를 설명해주고서도 똑같은 이야기들이 몇 차례 오갔다.

"잘 아시겠지만, 저도 기사를 써야 하는 입장이어서 무한정 기다릴 수만은 없고 언제쯤 알 수 있는지라도 확인을 해야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글쎄, 오후쯤 돼야…."

[4차시도-언론 담당 사무관] "공무원 사정도 이해해주세요"

▲ 미국 쇠고기 갈비뼈에 대해 보도한 30일자 <서울신문> 기사.
ⓒ <서울신문> PDF
그러다가 직접 '언론 담당 사무관'과 접촉해보라고 했다. 담당 사무관은 비교적 솔직했다.

"농림부에서 언제 확인을 했는지 궁금해서 전화했습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언제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가 중요한 건데."
"아니, 제가 궁금한 것은 이런 사실이 확인이 됐다면 농림부가 신속하게 국민들에게 알려야 했던 게 아닌가 싶고요. 또 하나는 <서울신문> 기자가 일단 사실 여부에 대해 확인을 요청했으면, 최소한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이해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방침이 결정되기 전에 맘대로 말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또 담당자들이 몰랐을 수도 있고, 알았다고 해도 이야기하기 어렵지 않겠어요. 또 밤늦게 전화해 확인했다면 그 때 확인하기 어렵지 않았겠어요?"
"밤늦게 확인 요청을 한 것이 무리한 주문일 수 있겠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또 시간에 쫓기는 기자 입장을 고려하자면 수고스럽겠지만 전화 한 통이면 확인이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방침을 정하는 데 검토단계에 있었다면 뭐라 말할 경우 자칫 혼선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런 것은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맞는 말이다. 이해해 줄 수 있는 일이다. 이 기사를 쓴 <서울신문> 기자 또한 '공무원의 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단 한 마디는 덧붙였다. "모르고 있었다면 그것도 문제 아니겠느냐"고.

공무원 사회의 어쩔 수 없는 폐쇄성

브리핑룸과 기자실 통폐합과 관련해 정부와 언론의 논쟁이 뜨겁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한꺼번에 바뀌면 (기자들이) 너무 불편할까봐 브리핑룸 외에 기사송고실을 제공하려는 것인데 언론이 계속 터무니없는 특권까지 주장한다면 원리원칙대로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통합 기사송고실을 아예 없애는 방안도 검토하라고 국정홍보처에 지시했다.

그러나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공무원 사회의 어쩔 수 없는 '폐쇄성'이다. 공무원들 탓만 할 게 아니다. 공무원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오늘 <서울신문> 이영표 기자의 '수입쇠고기 갈비뼈 발견 기사'가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그 이후의 반응'은 그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수 있을 것이다.

#백병규#미디어워치#수입쇠고기#뼈조각#갈비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