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중국 길림성의 연길을 다녀왔다. 2005년부터 해서 세 번째 방문이다. 해마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 청소년들 간의 교류활동을 펼치고 있고, 나는 그 곳에서 여러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는 터라 조선족 청소년들과는 어느덧 미니 홈페이지 친구 사이가 되었다.
이번에 중국 연길 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 몇 명의 조선족 친구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비행기가 1시간 넘게 연착하면서 2시간 넘게 공항에서 우리를 기다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9개월 만에 다시 만나는 것이라 무척 반가웠고, 2시간 넘게 기다리면서 우리를 환한 얼굴로 맞이해준 조선족 친구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이 중에 은옥(가명)이라는 연변대학교 학생을 떠올려본다.
"은옥아~ 너무 반가워."
"간사님 안녕하세요. 오신다는 얘길 듣고, 이렇게 나왔어요."
"은옥이는 고급중학교 때 모습하고 똑같은데 벌써 대학 2학년생이네."
"그런가요? 하하하"
은옥이는 연변대학교 조문학부를 다니는 학생이다. 나와는 2년 전 여름, 청소년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고, 우리 단체와는 3년 전부터 인연이 닿았던 친구다. 3년 전에 단체에서 연변대학교와 공동으로 진행한 백일장 대회에서 상을 타고, 그 해 여름 한국 청소년과의 교류 프로그램에도 참여한 후, 3년 째 여름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해온 친구다.
원래 집이 심양이어서 연길과는 기차로 무려 11시간 이상을 달려야 하는 거리임에도 은옥이는 현재 연변대학교 조문학부를 다니고 있다. 중국은 가을 학기가 신학기인지라 2년 전 여름에 내가 은옥이를 처음 만났을 때는 연변대 조문학부 입학을 기다리는 입학생이었다.
"은옥아, 가을 신학기부터 연변대 조문학부에서 공부하지?"
"네."
"여기에서 거리가 꽤 멀텐데, 어떻게 연변대를 선택하게 되었어?"
"작년 봄에 백일장 대회, 그리고 여름에 한국 청소년들과의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면서 민족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요."
"아~ 그랬구나."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해야할 지 많이 방황했었는데 교류 프로그램들을 경험하면서 조선 문학을 공부해야겠다 싶어졌어요"
"그래. 그럼 은옥이는 언제부터 심양에 살았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 고향은 이 곳이 아니에요."
은옥이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지 못하고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엄마, 아빠가 모두 한국으로 일하러 왔기 때문이다. 두 분 중에 한 분이 먼저 한국으로 오신 후, 이어 또 한 분이 한국으로 오셨다. 이는 은옥이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한국 내에 약 13만 여명의 조선족 분들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많은 조선족 청소년들의 엄마, 아빠들이 한국에 계신다. 은옥이도 여느 조선족 청소년처럼 부모님을 매우 그리워하고 있었다.
"은옥아, 엄마, 아빠 보고 싶지?"
"네. 두 분 모두 멀리서 고생하고 계셔서 안타까워요."
"심양 집에 한 번도 못 오셨어?"
"네. 한국으로 가신 후, 몇 년 동안 한 번도 못 오셨어요. 조문학부에서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꼭 한국으로 공부하러 갈 거예요."
“그래~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구나~”
지난 2월,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 참사를 떠올려본다. 희생자들 중에는 조선족 동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춘절 명절을 앞두고 10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려고 했던 아들은 불법체류자이며,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관계기관에 의해 부검이 된 아버지의 주검 앞에서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약 3만 여명의 조선족 근로자가 불법체류자 신분의 상황 속에서 오늘도 그들은 감시와 단속의 어두운 곳에서 숨어살아야만 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한국인들은 중국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여전히 조선족들을 대상으로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으며, 교묘한 방식으로 임금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부모님을 둔 조선족 청소년들은 이러한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오늘날 우리들이 조선족 동포를 대하는 모습을 어떻게 지켜보고 있을까? 그들의 대답을 가만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벌써부터 이번 여름에 만날 은옥이가 보고 싶어진다. 반가운 두 눈빛과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작년 백일장 대회에서 수상한 룡정시 OO소학교 6학년 학생의 시 '병아리'를 옮겨본다.
병아리
애처롭게 삐약삐약
울어대는 병아리
나처럼 엄마 잃고
그리움에 울어대나
병아리야, 울지마
네가 자꾸 울면
한국간 울엄마 생각에
내 눈에서도
마알간 이슬이
똘랑 떨어진단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현정씨는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