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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 충성하고 또 충성하라!
수없이 많은 변수를 모두 묵살하고 '출세'하는 사람들. 실적과 능력 등의 객관적인 기준도 당연히 고려되어야겠지만 이에 괘념치 않고 승진할 수 있는 직장인 유형은 대부분 정해져 있다. 출세하는 유형의 1순위는 이른바 '충성형'이다.
서기 2000년대(2007년은 단기 4330년)에도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왕과 사장에 대한 충성은 가문의 영광과 직결된다. 사장은 조직의 대표이자 팔딱팔딱 뛰는 심장이다. 조선의 왕이 종묘사직의 상속자이자, 조선 만백성의 주인인 것처럼 말이다.
이를테면 사장이 콩을 팥이라고 말하면 팥인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거기다 대고 "어, 왜 콩이 팥입니까? 콩은 콩입니다"라고 반박한다면 일찌감치 진로를 수정해 학계로 진출하거나 현재 주어진 업무만 충실하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 왜 사장이 콩을 팥이라고 했을까? 내가 지금 달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만 보고 있는 것을 아닐까? 시각의 교정은 그래서 어렵다.
'충성형'을 확장해 보자. 때가 어느 때인데 드러내 놓고 충성을 한단 말인가. 자칫 잘못하면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충성하는 사람이나 충성을 받는 쪽 모두 도매금으로 넘어간다. 즉 좋은 말도 세 번 들으면 화가 나는 것처럼 충성도 드러나지 않게 은근하게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군대에서 흔히 얘기하는 '짜웅'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중대나 연대의 인사과장은 '짜웅'의 달인들, 하다못해 탱크까지 '짱박아' 놓아 유사시 써먹을 준비가 되어있다. 이런 '짜웅'문화는 때로는 군대를 끈끈한 정이 넘치는 집단으로 인식되게 하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충성'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회사 업무 외에 상사에게 필요하고 상사가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해 아무런 조건과 제한 없이 노력봉사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른바 '심적 경호'다(굳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사례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상사의 마음이 편안해야 전략적 결단과 업무추진이 효율적으로 진행된다는 명분도 마련되어 있다. 제갈공명이 없었다면 오늘날 유비 신화가 만들어졌겠는가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식사 자리에서 혹은 술자리에서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얘기를 상사가 한다고 하자. 옳거니 싶어 이 얘기 저 얘기 떠벌린다면 '충성형'이 될 수 없다. 마치 처음 듣는 얘기처럼 적절한 타이밍에 추임새와 함께 고개를 주억거리나 대화의 쌍방향성을 높이기 위해 종종 답변하기 쉬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괜히 자신이 잘 아는 얘기랍시고 주억거리며 나섰다가는 그 다음 인사 때에 잘난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부하가 가끔 잘난 척하는 것은 애교로 봐주지만, 노선이 불분명한 녀석이 그런 식의 행동을 한다면 불순한 분자로 찍히기 십상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보스에게 잘 보인다
충성형에 이른바 돌쇠 기질이 많은 반면 아첨형은 복지안동형이다. '복지안동'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자본과 효율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직장인의 또 다른 생존전략이다. 이른바 영업직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유형이다. 충성형과는 차원이 다르다. 종일 사무실에서 상사와 같이 생활하는 충성형은 자기단련이 되지 않으면 쉬이 속마음을 드러낸다. 무대 위 연기도 하루 이틀이지, 섣부른 충성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된다.
아쉬운 소리를 항상 해야 하는 영업직은 쉽게 '아첨형'으로 흐를 수 있다. 실적과 목표로 항상 주 타깃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외부와 접촉도 많을 뿐더러 이직도 내근직에 비해 손쉽다는 장점도 있다. 내근직과 달리 외근을 주로 뛰는 영업직은 사무실 밖에서는 상사의 감시통제권을 벗어나 있다. 몸이 피곤할 때는 종일 사우나에서 자거나 보신탕집에서 고스톱을 칠 수도 있다. 부하들이 밤새워 보고서를 만들어 와도 사장한테 보고는 내가 한다. 잘못된 내용은 사장이 보는 자리에서 부하를 조지고, 잘된 사항은 다 잘난 덕분이다. 아쉬우면 "네가 부장 해!"
1970~80년대 한국경제의 성장과도기 시절, 대기업 부장들은 '간'이 간장곤죽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밤새워 술 마시다가도 회사 숙직실에서 취침, 정확한 출근시간 준수를 스스로 대견해하기도 한다. "야! 나는 밤새워 술 마셔도 아침 일찍 출근했는데, 당신은 왜 이리 출근시간이 늦어?"
이들이 왜 밤새워 술을 마셨는지는 며느리도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다고 밤새워 술 마시라고 누가 지시하지도 않았다. "난 이렇게 술 열심히 마시며 회사에 목숨 바친다"는 자기 각성과 만족일까? 누구 돈으로 어디에서 왜 마셨는지는 직장인의 영원한 패러독스다.
아첨형은 영업실적이 목표치 이하라도 사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월말 목표치에 도달한 매출전표를 만들어낸다. 뻔히 들여다보이는 부실채권이지만 지금 당장은 실적을 채워 넣는다. 충성형과 다른 결정적 부분이다. 설령 사장이 바뀐다고 할지라도 그 골치 아픈 비하인드 스토리를 어찌 알겠으며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는데 뭐라고 할 사장은 없을 것이다. 찜 쪄 먹든지 볶아먹든지 돈을 닦아 쓰든지, 알아서 하면 되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실행력이며 문제는 해결하라고 있는 것이다.
직장생활은 줄이다, 줄을 제대로 서라!
충성과 아첨을 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줄서기'를 해야 한다.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십분 이해할 수밖에 없는 테제 중의 하나가 "인생은 줄"이라는 것이다. 인생을 리사이징(resizing)하라는 것인지, 인생이라는 녀석의 이름이 줄(Jul)이라는 것인지 헷갈린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적과 아군을 분명히 하라는 의미이다.
"나는 내 사적인 이익에 따라 배신을 하거나 말을 바꿀 사람이 아니다. 당신이 그 자리에 있는 동안에는 뒤통수를 치거나 배신을 때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 봉사하겠다"는 메시지를 상사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 바로 줄을 서는 것이다. 다들 노를 앞으로 젓고 있는데, 나 홀로 뒤로 젓는 경우 아예 배에 태우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다면 어떤 상사에게 줄을 서야 하는가? 똑똑하고 잘난 상사에게 줄을 서는 것은 대부분 아무런 이득이 없다. 내가 똑똑하고 잘났는데 귀찮게 왜 부하까지 챙기겠는가? 부하 챙길 여유 있으면 책이라도 한 권 더 읽을 일이다. 줄을 제대로 선다는 것은 내 능력이 최대한 발현될 수 있는 상사를 찾는 것이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상태의 업무능력과 정치 감각을 최대한 키워주고, 지금 그대가 바친 1포스(force)를 10년 내 최강 포스로 되돌려줄 수 있는 상사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직장 내 계급이 올라갈수록 자리는 점점 작아진다. 처음에는 동기들 간의 경쟁이었지만 선후배 간 경쟁으로 범위는 점차 넓어진다. 이해관계가 수평적으로 얽혀 있는 것이 아니라 수직으로 전방위적으로 확산된다. 그러니 이해관계를 쉽게 풀어줄 수 있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 '줄'이 중요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남의 돈 먹기가 어디 그리 쉽냐?'
최첨단 기술 산업과 달리 일반기업들은 핵심인재나 사장이 없어도 굴러간다. 바꿔 말하면 '꿩 대신 닭'이라고 대체인력이 풍부하다는 의미이다. '지식경영', '시스템경영'이 확산되는 기업환경에서 막말로 "저 사람 아니면 안 돼!"라는 예외 규정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칼로 무 자르듯이 싹둑 잘라내면 졸지에 백수 신세로 전락한다. '노동의 종말' 시대는 이미 우리 집 논 앞에 다가왔다.
'남의 돈 먹기가 어디 그리 쉽냐?' 하루에 열두 번씩 사표를 던져버리고 싶지만 당장 들어가야 할 아파트 할부금, 아파트 관리비, 작은 녀석 태권도와 피아노 보습학원 학원비, 부모님 용돈, 자동차 할부금과 세금 등을 생각하면 슬그머니 담배로 손이 간다. 흡연은 백해무익한 것이라지만, 담배 한 모금에 학원비 걱정과 부모님 용돈 걱정이 공기 속으로 스러진다.
아버지 소주잔은 눈물이 반 잔인 것처럼 월급의 반은 자존심과 미래의 꿈을 포기한 대가일 것이다. 처자식 먹여 살린다는 대의명분과 함께 가진 것 없는 무산계급의 한계도 같이 녹아 있다.
대한민국에 왜 그렇게 기러기 아빠가 많을까? 과연 월급만으로 아이의 유학비용을 충분히 지원할 수 있을까? 내가 비록 젊은 시절의 꿈과 희망을 저버리고 이렇게 힘들게 살지라도 자식만큼은 이러지 말았으면….
정상이 가까우면 바로 고생 시작이다
능력과 실적은 출세의 바로미터이다. 허나 세상 일이 교과서대로 되지만은 않는다. 시험성적 1등이 인생 1등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출세하고 싶다면 좀 더 고민하라. 하루에도 열두 번씩 조직과 상사를 위해 이 한 몸 불사르겠다는 다짐을 행하라. 조직과 상사는 내 영원한 신앙이자 유일신임을 믿어 의심치 마라. 사장이 콩을 팥이라 하면 날밤을 새워서라도 왜 콩이 팥이 되는지 연구하고 고민해 그 논리를 만들어라.
불과 사십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CEO를 하셨지만 지금은 보험설계사로 일하시는 분이 있다. 사장까지 올라가긴 갔는데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오너라면 금상첨화겠지만 월급쟁이 사장은 노력하지 않는다면 월급쟁이 과장과 별반 차이가 없다. 기를 쓰고 정상까지 오르긴 올랐는데 정상에는 휑한 칼바람과 눈보라 우박까지 쏟아지니…. 오르기는 쉽지만 정상을 계속 걷기는 더더욱 힘들고 어렵다. 그래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면, 그것은 당신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