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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안에 걸려 있는 양털로 만든 성화
교회안에 걸려 있는 양털로 만든 성화 ⓒ 이승철
고대 유적지 가버나움을 출발하여 달려간 곳은 다볼산이었다. 이 산의 또 다른 이름은 변화산이다. 이 산으로 가는 길에서는 의논이 분분했다. 지구 종말의 마지막 전쟁이 예고되어 있다는 므깃도를 가볼 것인지, 아니면 이 다볼산으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결론은 다볼산이었다. 다볼산으로 가는 길,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 드넓게 펼쳐진 풀밭과 밀밭이 눈이 시릴 정도였다. 잘 닦여진 도로와 깨끗하게 가꿔진 마을이며 대부분 흰색으로 칠한 주택들도 여간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저 마을들은 모두 유대인 마을입니까?"

이스라엘 땅이어서 잘사는 지역이나 마을은 모두 유대인들인 줄 알았다.

"아닙니다. 저 마을들엔 물론 유대인 마을들도 있지만 아랍인들이 사는 마을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지역에 사는 아랍인들도 잘 살고 있다는 말이었다. 우리가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을 통해서 알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저 오른쪽을 보십시오. 저 산이 바로 변화산입니다."

모두 창밖으로 보이는 둥그런 모양의 산을 바라보았다. 주변은 모두 낮은 구릉이거나 평야 지대인데 그 가운데 불쑥 솟아있는 산 모양이 뭐랄까. 꼭 옛날 군대의 투구를 엎어놓은 모습이었다.

"이제 곧 도착할 텐데 저 산은 그냥은 못 올라갑니다. 등산하는 셈치고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산 아래에서 택시를 타야 합니다."

버스는 산을 왼편으로 끼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도로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학교에서 나온 듯한 학생들의 모습과 어린이들도 보인다. 대부분 아랍인들이었다.

다볼산으로 가는 길에 바라본 창밖 풍경
다볼산으로 가는 길에 바라본 창밖 풍경 ⓒ 이승철
다볼산 정상에 있는 주변모교회 전경
다볼산 정상에 있는 주변모교회 전경 ⓒ 이승철
"이 근처는 모두 아랍인 마을입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바라본 아랍인 마을은 주택들도 반듯하고 오가는 거리의 사람들 모습에서도 생활수준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그들의 표정도 밝고 평화로운 얼굴이다.

드디어 주차장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려면 조금 기다려야 했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중동과 이스라엘을 관광하는 동안 어느 곳에서나 마주쳤던 우리 한국인들의 모습은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참 이상하네. 왜 이곳에서는 우리뿐이지?"

정말 거짓말처럼 이상한 일이었다. 이날의 다볼산에서는 산 위나 아래,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리 한국인은 단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이 다볼산은 우리 한국의 여행사에서는 아마 어느 회사에서도 여행지에 포함시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한국인들 최초의 단체관광을 하게 되는지도 모르지요."

여행사의 여행 일정상 이 다볼산은 제외되는 지역이라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우리들의 순서가 되었다.

택시비는 1인당 왕복 5달러씩이었다.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산 밑에서 산 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게 되니 거리는 분명 그리 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택시기사들도 모두 아랍인들이었다. 차량들도 종류는 다양했지만 말쑥한 새 차들이었다.

교회 입구에서 만난 현지 수도자들
교회 입구에서 만난 현지 수도자들 ⓒ 이승철
교회내부 앞쪽의 제단 모습
교회내부 앞쪽의 제단 모습 ⓒ 이승철
예상했던 것처럼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구불구불 뚫린 도로를 따라 잠깐 동안 달려 올라갔기 때문이다. 산의 정상부는 제법 넓은 평지였다. 다볼산(mount tabor)은 해발 570m로 주변 지역인 이즈르엘 평원지대에 480m 높이로 우뚝 솟아 있으며 갈릴리 지역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 산이었다.

이 산을 히브리어로는 '하르 타볼'이라고 하는데 '높은 산'이란 뜻이다. 이 산은 대략 8만 년에서 1만5천 년 전에 네안데르탈인들이 부싯돌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 왔으나 물이 없어 정착하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고고학계의 기록이 있는 곳이라고 전한다.

산정의 둘레가 1170m, 폭이 405m인 장방형의 정상 평지 둘레에는 13세기 때 회교도들이 세운 요새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1924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십자군시대에 있었던 교회를 보수하고 재건하여 새 교회를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주변모기념교회'다. 주변에는 또 이 교회뿐만 아니라 옛 수도원의 흔적도 남아 있었다.

"이쪽으로 오셔서 저 평원 좀 보세요. 정말 기막힌 풍경이네요."

산 위에서 바라보이는 주변의 풍경은 정말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과 밭, 그 가운데 자리 잡은 마을들과 작은 호수가 어느 쪽을 둘러보아도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1924년에 세웠다는 기념교회는 상당히 고풍스러운 모습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몇 사람의 외국인 수도사들이 앉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내부를 둘러보았다. 촛불이 켜 있는 앞쪽의 제단은 전에 다른 곳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모양이다.

찾아가는 길에 멀리서 바라본 다볼산
찾아가는 길에 멀리서 바라본 다볼산 ⓒ 이승철
산위에서 바라본 초원과 마을풍경
산위에서 바라본 초원과 마을풍경 ⓒ 이승철
그런데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성화가 아주 색다른 모습이다. 카펫처럼 양털로 짠 성화였는데 얼마나 정교한지 종이에 그린 그림 같았기 때문이다. 그림이 섬세하여 온화한 성화의 얼굴 표정이 너무나 생생했다.

교회 내부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니 또 몇 사람의 외국인 수도자들이 안으로 들어온다. 정상의 평지 한쪽은 그냥 숲이 우거진 모습이고 길옆으로는 야자나무 정원수와 함께 화려한 빛깔과 기묘한 모양의 꽃을 피운 선인장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이 다볼산, 아니 변화산의 깊은 의미를 알고 계십니까?"

가이드 서 선생이 갑자기 성경 문제를 꺼낸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였기 때문이다.

"첫째,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통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은 인간 예수, 즉 요셉의 아들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이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인시키기 위하여 제자들과 함께 이 산에 오른 것입니다.

둘째, 이 변화산에서 모세를 보여주신 이유는 모세가 당시의 유대인들이 가장 영웅시하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를 보여주심으로써 예수님 자신의 신성과 위대하심을 알려주는 것인데, 실제 목적은 모세라는 죽은 자가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셋째, 엘리야를 보여주신 이유는 예수를 가리켜 엘리야가 왔다고 했던 것처럼 엘리야는 살아있는 모습으로 승천했는데 그 승천한 엘리야도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교회 앞마당 길가의 정원풍경
교회 앞마당 길가의 정원풍경 ⓒ 이승철
교회 내부와 천정모습
교회 내부와 천정모습 ⓒ 이승철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이 다볼산, 아니 변화산은 신약성경에 예수가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과 함께 올라 죽은 지가 오래인 구약시대의 인물인 모세와 살아 있는 상태로 하늘로 올라갔다는 엘리야와 더불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여준 장소다.

왼편의 길쭉한 건물은 수도원이었다. 수도원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시 주차장으로 나가자 발 빠른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는 벌써 택시를 타고 내려갔다고 한다. 우리 4명이 제일 뒤처진 것이었다.

아랍인 택시기사가 우리에게 빨리 승차하라고 손짓을 한다. 우리 일행들이 승차하자 택시는 잽싸게 출발했다. 그런데 다시 구불구불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길에 정말 아름다운 산 아래 초원과 마을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멋있다고 탄성을 지르자 눈치 빠른 택시기사가 차를 세운다. 그런 다음 밖에 나가 사진을 찍으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이 택시기사 정말 눈치 한 번 빠르네. 어떻게 우리가 좋아하는 줄 알고 택시를 세워주지."

사진을 찍고 다시 승차한 일행 한 명이 고맙다며 1달러를 집어주자 고맙다고 머리를 끄덕인다. 말이 서로 통하지 않는 이국 땅, 이국 사람이었지만 상대의 기분을 알아차리고 친절을 베푸는 아랍인 택시기사가 정말 고마웠다.

다시 주차장에 모두 모였다. 바로 아래 산자락은 올리브 나무 농장이었고 그 아래로 바라보이는 큰 마을은 역시 아랍인 마을이라고 했다. 마침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은 마을 풍경이 더욱 산뜻해 보였다.

산위에서 내려다본 아랍인 마을
산위에서 내려다본 아랍인 마을 ⓒ 이승철
"자! 제가 시원한 아이스크림 한 개씩 쏘겠습니다. 예정에 없었던 다볼산 관광을 기분 좋게 한 기념으로."

일행 중 한 사람이 정말 기분이 좋은지 모두에게 아이스크림을 한 개씩 돌렸다. 본래 여행 코스에는 없었던 곳을 찾았는데 아랍인 택시기사의 친절한 대우까지 받게 되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 것이다.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 다음 코스로 향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다볼산#변화산#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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