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강행 움직임과 러시아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로 '제2의 냉전'에 대한 우려가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MD에 대한 비판을 자제했던 중국도 MD에 대한 비판과 대응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정부의 공식 대응은 자제하고 있지만, <인민일보>와 <신화통신> 등 관영매체를 통해 MD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의 한 군사전문가는 5월 18일 칼럼에서 MD는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불장난"이라고 비난했고, <인민일보>는 5월 22일자 사설에서 미국의 MD는 절대안보와 과학기술신봉주의가 낳은 "세계지배전략"이라고 비판했다.
중국이 이처럼 MD에 대해 정부 차원의 대응은 자제하면서도 관영매체를 통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중국이 '미ㆍ러간의 MD 전쟁'에 대해 '관리된 균형'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MD에 대한 강도 높은 대응이 9.11 테러 이후 공들여온 미국과의 협력관계를 헤칠 수 있다는 우려와 미ㆍ러간의 MD 전쟁을 이용해 그동안 품어왔던 불만을 표출코자 하는 의도가 함께 녹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지난 1월 위성파괴무기 실험은 중국이 MD에 대한 군사적 대응책도 강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중국의 MD에 대한 '관리된 균형' 전략은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대한 중국의 대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은 MD를 포함해 미국의 의도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우호 협력 관계를 유지·발전시키는 것을 대미 외교의 골자로 삼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미국의 전략적 의도가 중국을 봉쇄·포위해 중국의 성장을 억제·예방하려는데 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는 중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대해 '양면 전략'을 취하는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중국의 입장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 및 대만 독립 억제 등 자신의 국익을 달성하는데 미국과의 안정적인 관계 유지가 필수적이라는 현실적인 판단과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봉쇄하거나 제약하려는 나라 역시 미국이라는 전략적 판단이 함께 깔려 있다.
이러한 판단은 대만 문제 및 미일동맹 등 구체적인 문제에서도 나타난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 중국은 미국이 대만의 독립 노선을 억제하는 역할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중국의 대만 통일 역시 방해하는 세력으로 보고 있다. 미일동맹 역시 과거에는 일본의 재무장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재무장을 촉진하고 있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봉쇄망을 무력화하라
미국이 한편으로는 중국과의 우호협력관계를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적 봉쇄·포위 전략을 구체화하자, 중국 역시 미국과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미국의 봉쇄망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치밀한 외교안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은 우선 미국이 봉쇄정책을 계속 추구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중국의 부상은 위협이 아니라 기회임을 강조함으로써, 이들 국가들이 미국의 대중 봉쇄정책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데 방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원칙 하에 중국이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경제성장과 군비증강 사이의 최적의 균형을 이루면서 미국과의 국력 격차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소련이 몰락한 데에는 미국과의 무리한 군비경쟁이 큰 원인이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중국은 경제성장에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미국에 대한 최소한의 억제력과 대만 독립을 저지할 수 있는 수준의 군비증강은 꾸준히 해오고 있다.
둘째는 주변국들과의 적극적인 관계 개선이다. 중국은 최근 들어 과거 적대관계에 있었던 러시아, 인도 등 강대국들과의 양자관계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한 1990년대 후반 이후 아세안국가연합(ASEAN)과 연례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한편, 비(非) 아세안 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아세안과 불가침 약속 및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추진을 골자로 하는 우호협력조약(Treaty of Amity and Cooperation)을 체결했다.
아울러 아세안 국가들과 영해 분쟁의 대상이었던 남중국해와 관련해 평화적인 해결을 도모하기로 한 선언을 채택함으로써 중국과 아세안 사이의 신뢰구축을 도모하고 있다. 한반도와 관련해서도 미일동맹의 해양세력에 대한 완충지대를 유지한다는 전략적 목표 하에 한국과의 관계 개선 및 북한에 대한 지원자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셋째는 다자간 외교 무대의 적극적인 활용이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 제도가 중국의 성장과 국제적 위상 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1990년대 전반기까지는 국제 제도 참여에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기 들어 이러한 인식에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를 상징하듯 1997년 장쩌민 주석은 "우리는 다자간 외교 무대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중국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자 제도의 장점을 활용할 필요가 있고, 오히려 적극적인 다자 외교가 중국의 부상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듯 중국은 다자 외교에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중국이 아세안과의 적극적인 관계 개선에 나서고 6자회담을 주도하고 있는 것 역시 이와 맥락이 닿아 있다. 또한 새로운 에너지원이자 전략적 요충지로 평가받고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2001년에 창립된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를 통해 주로 이뤄지고 있는데, 초기에는 테러리즘, 분리주의, 종교적 극단주의 문제를 다뤘으나, 점차 경제와 안보 분야에로까지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회원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카자흐스탄, 키르지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배키스탄으로 이뤄져 있으나, 2005년에는 이란, 인도, 파키스탄이 SCO 회의에 참관단을 보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SOC가 남아시아와 중동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는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와 분리주의 저지 등 공식적인 목표와 함께, 미군 기지를 중앙아시아로까지 확대하고 있는 미국의 군사포위전략에 대한 대응책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와 인도에 공들이는 중국
미국의 대중전략에 대한 중국의 대응책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러시아와 인도와의 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우선 중러관계를 살펴보자. 냉전시대 초기 동맹국이었다가 1950년대 후반부터 냉전해체기 때까지 적대 관계에 있었던 중국과 러시아는 최근 양국관계를 준동맹관계로까지 격상시키고 있다.
양국은 1990년대 초반 미국이 발칸반도 분쟁에 개입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영향력을 확대해나가자 1996년 '전략적 협력 관계'를 선언하면서 본격적인 관계 개선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또한 클린턴 행정부 말기 MD가 본격화되고 일방주의 성향의 부시 행정부가 등장한 2001년에는 '선린우호협력조약'(Treaty of Good-Neighborliness and Friendly Cooperation)을 체결했는데, 이 조약 9조에는 조약 당사자가 위협에 직면하면 '즉각 협의'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중러 양국은 2004년 10월 40년간의 국경 분쟁을 매듭지은 데 이어, 2005년 9∼10월에는 서해와 랴오둥반도에서 사상 최초로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한 이후 이를 정례화하고 있다. 이 훈련은 양국의 육해공군이 모두 참가하는 대규모 종합 훈련인 데다가, 한국 및 일본의 인접 지역에서 실시된다는 점에서, 최근 재편되고 있는 한미ㆍ미일 동맹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공동 대응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이처럼 중국이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에 몰두하고 있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양국은 미국 단일 패권체제에 불만을 공유하고 있고, 이는 양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밀접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기초이기도 하다. 또한 러시아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중국의 에너지 수요의 상당 부분을 충족해줄 수 있는 자원 부국이자 러시아의 최첨단 무기체계는 중국 군사 현대화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은 자체적인 군사기술이 여전히 2류 수준이고 미국이 유럽연합, 이스라엘 등의 대중 무기수출을 차단함으로써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높이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1990년대 초반이후 중국의 무기수입 가운데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85%에 달한다. 이러한 미러관계의 밀착은 향후 양국이 미국의 MD 및 미일동맹으로 상징되는 군사패권주의에 대한 '대항동맹'의 탄생을 예상케 한다.
중국이 2005년 4월 인도와의 관계에서 최대 걸림돌인 국경분쟁을 해결하기로 하고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시키기로 한 것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인도를 친미 일변도의 국가로 기울지 않게 함으로써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에 타격을 준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과 인도가 세계 1, 2위의 인구 대국이자 군사력 역시 만만치 않은 국가들이라는 점에서, 이들 국가의 관계는 미중관계는 물론 유라시아의 안보, 경제 질서에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미중 양국의 잇따르는 러브콜에 인도의 몸값은 치솟고 있고, 인도는 미중관계의 균형자로 부상하고 있다.
거울 보며 손가락질하는 미국과 중국
미중 양국은 두 가지 연례 행사를 벌이고 있다. 하는 미국 국방부가 매년 5월경에 '중국 군사력에 관한 연례 보고서'(Annual report on the military power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를 통해 중국의 급격한 군비증강과 그 의도를 비판하면, 중국이 '군사패권주의를 추구하는 나라는 미국'이라며 맞불을 놓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미국 국무부가 연례보고서를 통해 중국을 최악의 인권탄압국이라고 지목하면, 중국은 '미국 인권보고서'를 발표해 '너나 잘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비방전은 일종의 거울영상효과를 가져오면서, 양국 모두 '양면 전략'을 취하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양면 전략이 '자기충족적 예언'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미국이 중국의 군사력 증강이 아시아에서 패권 추구로 이어지는 것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자국 군사력 강화와 동맹 체제를 강화하면, 중국은 이를 자신에 대한 봉쇄·포위 전략으로 받아들여 군비증강에 더욱 매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 내에서는 '중국위협론'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고 강경한 대중 정책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고 만다. 최근 미중간에 군비경쟁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러한 우려가 점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양국 관계를 고려할 때, 미중관계가 전면적 협력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양국은 양립하기 어려운 전략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 전략을 간략히 요약하면,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미국 유일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니 중국이 세계적 차원이든, 지역적 차원이든 이에 도전할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톡톡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보내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은 미국 패권에 도전할 의사는 없지만 미래의 세계 체제는 다극체제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국이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중국 내부의 비민주성에 주목하고 있는 반면에, 중국은 국제체제의 비민주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양국간의 근본적인 긴장 요인이다.
이러한 양국 사이의 근본적인 '불일치'를 고려할 때, 미중관계의 미래를 결코 낙관하기 어렵다. 최근 부활하고 있는 미러간의 전략적 긴장관계가 '제2의 냉전'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면, 유일 초강대국 미국과 떠오르는 강대국 중국 사이의 긴장은 '새로운 냉전'에 대한 걱정을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