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용 항공기가 해방 후 처음으로 국내 공항에 착륙했다.
3일 오후 제주도에서 열리는 한-중-일 3국 외교장관회담에 참석하는 아소 다로 외상 일행이 이날 오후 1시경 일본 자위대 항공기 'U4'를 타고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했다. U4는 일본 항공자위대가 보유하고 있는 다목적 지원기로 탑승정원 19명, 항속거리는 약 6500km로 알려지고 있다.
현행 평화헌법에 따라 자국 방어만을 목적으로 설치된 '군대 아닌 군대' 자위대의 해외 활동은 그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다. 과거 1997년 캄보디아 소요나 1998년 인도네시아 폭동 등 동남아 지역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자국민 수송을 위해 인근 국가에 자위대 수송기를 파견한 전례는 있으나, 적법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일본 각료가 해외출장에 자위대 항공기를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첫 사례여서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가 자위대의 행동반경 확대를 도와주는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만찬 참석 위해서라면 군용기 이용해도 좋다"
정부가 이번에 자위대 항공기의 진입을 허용한 것은 아소 외상의 빠듯한 일정을 배려한 이례적 조치다.
아소 외상은 당초 이날 3국 외교장관회담을 마친 뒤 오후 6시 30분경 정기항공편을 이용해 귀국할 계획이었으나, 한국 측이 만찬모임까지 참석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일본 측은 아소 외상이 월요일 재개되는 국회에 반드시 출석해야 하기 때문에 제주도에서 1박을 할 수 없다고 난색을 표명했고, 결국 양국 간 조정과정에서 자위대 특별기를 이용하는 방안을 한국 측이 수락했다.
그러나 과연 한일관계에서 민감한 '군용기 사용'이란 선례까지 남기면서 그렇게 회담의 모양새에 신경 써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일부러 그런 선례를 만들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에 한국 외교가 말려들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번 한-중-일 외교장관회담은 지난 1월 필리핀 세부에서 열린 '아세안(ASEAN)+3(한-중-일)' 정상회담 때 3국 외교장관들이 따로 만난 자리에서 송민순 장관의 제의로 성사됐다. 송 장관은 한-중-일이 아세안 회의를 계기로만 만날 것이 아니라 북동아시아의 협력방안을 따로 논의해보자고 제안, 중-일의 동의를 얻어냈다.
'3자 간 협력의 첫걸음'... 그러나 공동발표문도 없어
외교통상부는 이번 회담에 "양자관계를 넘어선 3자 간 협력의 첫 발걸음", "아세안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움직임" 등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첫걸음'인 만큼 이번 회담에서 역사나 군사문제 같은 '골치 아픈' 현안들은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도 않는다.
우선 문화교류 등 3국이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분야부터 협력사업을 확대해나가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회담이 끝난 뒤 공동발표문도 내지 않을 방침이다. "발표문안 합의에 시간을 빼앗기기보다는 실질적인 대화가 중요하다"(외교부 당국자)는 설명이나, 발표할 만큼 회담의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한-중-일 3국 외교장관회담이 별도로 만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국은 2003년 10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3국 정상 간 합의에 따라 2004년 6월과 2005년 5월 각각 중국 칭따오(靑島)와 일본 교토(京都)에서 3자 외교장관회담을 연속해서 개최한 바 있다.
3자 외교장관회담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의 계속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한-중의 반발로 2005년 12월 예정돼 있던 회담이 무산된 뒤 일단 중단됐다. 따라서 이번 제주도 회담은 '최초'라기보다는 '복원'의 성격이 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