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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부지로 치솟는 사교육비, 해마다 오르는 대학 등록금, 특목고 입학 열기와 대학 입시안의 잦은 개편 등 교육 문제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하시죠? 따라가지 않으면 뒤쳐질 것 같은데, 이렇게 따라가기엔 금전이나 시간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문제는 사교육이나 각종 특수목적교육에 비용을 들인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녀에 어울리는 교육방법을 찾아 나선 분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과 함께 '자녀교육이란 무엇일까'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편집자주>
공부를 좀 하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친척이 놀러와서 이런 말을 하셨다.

"공부를 잘 한다면서. 서울대를 가야겠구나. 상대를 가라. 법대도 좋지만, 앞으론 상대가 뜰 거야."

비단 그 친척뿐만 아니었다. 명문이라고 알려진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벌써 황금빛 청사진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그렇게 어떤 정해진 길(?)을 가기를 바라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성적에 따라서 앞으로의 모든 길이 결정되는 게 당시 학교 다닐 때 분위기였다. 물론 나이와 성적이 반비례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 기대는 갈수록 떨어졌지만 말이다. 그리고 20년 정도 세월이 지났다.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온 나로선 여전히 세상이 그러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송이(26)씨는 상당히 이색적이라고 봤다. 한씨는 경기 부천지역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2~3학년 때 전교 1·2등을 꾸준히 유지했다. 그렇다면 흔히 말하는 SKY대학(서울대·고려대·연세대)을 나와서 대기업에 다니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한씨는 4년제 대학 대신 2년제 대학을 선택했다. 대학 간판 대신 하고 싶은 분야를 택한 것. 그는 실내건축을 선택했는데, 그 과가 4년제 대학엔 없었기 때문이다. 졸업한 뒤엔 곧장 취직해서 전공을 살리고 있다. 직원이 10명인 직장에서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조경. 인터뷰를 한 것은 그래서다.

처음엔 아버지 한효석 시민기자(논술강사)에게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돌아온 아버지의 말은 이랬다.

"당사자한테 직접 들어보니 그래요. 나한테 걸러서 듣지 말고. 아이 생각은 또 다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방향을 바꿔서 한송이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면인터뷰를 부담스러워한 그는 전화인터뷰를 원했다. "독특하다"고 말문을 열자 "제가 취재거리가 안될 텐데요, 너무 평범하거든요, 그다지 극적인 것도 없구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가 대면인터뷰를 부담스러워한 것도 "너무나 평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진심이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이 말을 수도 없이 했다.

아무튼 '독특'을 뽑아내려는 나와 '평범'으로 응수한 한송이씨의 대화를 여기에 소개한다. 직장생활 5년차인 송이씨는 시종일관 밝은 목소리로 '밋밋한' 내 질문들을 잘 받아주었다.

SKY를 포기한 우등생의 선택

ⓒ 한송이
-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전교 1·2등을 했다는데, 그렇다면 4년제 대학 가는 게 일반적인 것 아닌가요?
"하하. 제가 뭐 아주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시는 듯한데요. 그건 아니에요. 저도 수능 보기 전엔 4년제 갈려고 했어요. 정확히 말하면, 원래 제가 마음에 두고 있었던 과는 실내디자인이었어요. 그런데 실내디자인은 미술 실기 비중이 높더라구요. 미술전공하는 학생들한테 밀렸어요. 제가 시험을 못 봤거든요. 그래서 실내디자인과 비슷한 과를 찾았는데, 그게 실내건축이었죠. 실내건축은 4년제 대학에 없었고, 그래서 2년제 대학 쪽으로 방향을 튼 거죠."

- 본인이 결정했어요? 주변에선 재수를 권했을 텐데요.
"물론 주변에선 재수를 하라고 권유를 했죠. 그런데 제가 원하던 공부가 아니어서,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사실 수능 볼 때 못 봐도 괜찮다고 어느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어요."

- 학교에서 무척 아쉬워했겠는데요.
"학교에서 많이 아쉬워했어요. 선생님들도 한 번 더 해보라고 하셨죠. 친구들도 괜히 제 눈치 보고 그랬어요(웃음). 제 앞에서 함부로 대학 이야기도 못하고…. 무엇보다 부모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부모님들이 더 좋은 대학 가라고 하면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힘들어했겠지만, 부모님들은 '괜찮다'고 하셨어요. 제가 2년제 대학을 선택했을 때, 부모님들은 '학교 이름은 떨어지지만 좋은 곳'이라고 하셨어요."

- 명절 스트레스는 없었나요. '누구는 어디 갔다는데'라는 말이 많이 나오잖아요.
"받았죠. 그런데 뭐 어때요. 1년에 두 번 뿐인데."

- 고등학교 때는 어떤 학생이었어요?
"아주 평범했어요. 특별히 튀지 않았어요. 꿈이 특별한 것도 아니었구요."

- 대학입시 때 미술전공 학생들한테 밀렸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왜 미술학원을 다니지 않았죠?
"그 때는 공부만 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학원에 다닐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예체능을 공부하면 대학 잘 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학생들도 몇몇 있었는데, 별로 즐거워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관심을 두지 않았죠."

- 오로지 학교 공부만 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래야 하는 줄 알았으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데…(웃음). 학원 과외도 받은 적은 없어요."

- 과외를 받지 않으면 수능이 어려웠을텐데.
"수능은 약간 부족한 걸 느꼈지만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둘 다(내신과 수능) 잘 할 수는 없으니까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점수가 안 나와서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웃음)."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면 부모님이 학원 가라고 했을 것 같은데요.
"저희 부모님은 전혀 강요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주변 이웃들이 이야기를 많이 하셨죠. '어디 다니면 점수 높아진다'라면서 계속 말을 붙이셨죠. 그러면 저희 부모님이 넌지시 여쭤보세요. '너도 다녀볼래'라구요. 제가 '싫다'고 그러면 부모님은 다시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셨어요. 저는 학교나 학원이나 똑같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수업 이해 못하는 학생이 있듯이 학원에서도 이해 못하는 학생이 있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이해 못한 것을 학원 간다고 이해하겠어요?"

- 부모님이 성적에 대한 압박을 적게 주셨나 봐요?
"거의 없었다고 봐야죠. '너 점수 떨어졌니? 다음 시험 준비 해야지' 정도는 이야기하셨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봐도 아주 적은 편이에요. 물론 스트레스 받을 때도 있었지만요."

"하고 싶은 일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어"

ⓒ 한송이
- 취직은 언제 하셨나요?
"21살이던 2003년에 취직했으니까 이제 5년차네요. 실내건축을 2년 정도 하고 지금은 조경회사로 옮겼어요. 실내건축이 범위가 굉장히 커요. 그 안에서 일하다 보니까 조경이라는 분야에 흥미가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옮겼죠.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5년차면 직장에서 중간 정도 되겠군요.
"예. 저희 회사 직원이 10명인데, 제가 딱 중간이네요."

-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죠. 실내 조경 쪽이신가요? 아니면 공원조경?
"동네 공원 작업을 많이 해요. 건물을 매입해서 헐고 쌈지공원 만드는 일을 많이 합니다. 조그만 공원이라고 해도 마을마다 다 테마가 있어요. 어르신들이 많으면 의자를 많이 설치하고 장기판도 만들죠. 어린이들이 많으면 놀이시설을 많이 만들구요."

- 그러면 마을사람들 연령층도 다 조사를 해야겠네요.
"그건 기본자료에 다 포함돼 있어요. 제가 하는 건 아니에요."

- 송이씨가 만든 공원을 이후 찾아가보는 편인가요?
"한 번씩 둘러보죠. 어떨 땐 뿌듯하기도 하고, 어떨 땐 아쉽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아, 여기에 의자를 하나 더 놔둘 걸 하는 마음이 들거든요."

- 친구들도 많이 만나시죠?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과 만나서 불편하진 않나요.
"하하. 신경 쓸 게 뭐 있어요. 오히려 그 친구들이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직장 다닐 만해?' 그렇게 물어본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어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공부를 못한 친구들이 좋은 대학 간 것 보면서 부러웠던 적 있어요."

- 4년제 대학 나온 친구들보다는 사회생활을 많이 한 편이겠네요. 진로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까?
"꼭 그렇지도 않아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직한 친구들도 있거든요. 친구들은 다 제 각각인 것 같아요. 4년제 나와서 좋은데 취직한 친구들도 있고, 4년제 나와서 계속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고. 같은 2년제 나왔는데, 꿈이라는 것보다는 현실에 부딪혀서 돈을 벌어야 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가끔 인문계 고등학교 나와서 내가 이쪽 분야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 언제까지 이 일을 하실 생각이세요.
"오래 하긴 힘들죠. 힘드니까. 그런데 일할 수 없는 나이가 될 때쯤엔 편하게 일하는 위치가 돼 있겠죠(웃음)."

- 만족도를 말한다면.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남들이 이야기할 때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힘들다'고 하는데, 내가 이걸 해내고 있구나 싶어서 뿌듯해요. 너무나 평범해서 특별하지가 않죠. 그래서 기사화하기가 좋지 않을 텐데…."

#교육#입시#대학#취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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