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결국 동북쪽의 변경을 빼앗고 가 땅을 신주라 이름 지었다고 하오.”
왕은 침통한 기색으로 여섯 좌평들에게 말했다. 좌평들도 이미 이 소식을 알고 있었지만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숙인 채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신라의 말인 즉 우리의 힘이 더 이상 다다르지 않으니 자신들이 취하였다고는 하나 이로 인해 고구려를 향한 우리의 칼날이 막혔음은 너무 자명한 일이오. 내 이 참에 신라와의 동맹을 파기하려는데 귀공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왕의 말은 일단 곁과 속이 다름을 좌평들은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당장 신라와의 동맹을 파기해서 얻을 이익은 적었으며 오히려 적이 하나 더 늘어남을 뜻할 뿐이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좌평 중 하나인 도다루가 고슬여의 눈치를 살피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신라가 겁 없이 그 땅을 취하기는 했으나 우리가 동맹을 파기할 것을 염려하는 눈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동맹을 파기하기 보다는 의심 많은 신라왕을 다독여서 실리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옵니다.”
“그러합니다. 지금 신라와 싸우게 되면 득보다는 실이 많습니다.”
좌평들의 의견은 거의 일치하고 있었고 왕 역시 신라와 전쟁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지만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저들이 굳이 우리를 도발하겠다면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
“저들이 도발하지 않도록 이쪽에서 넓은 도량을 보인 후 후일을 도모하면 되는 일입니다.”
도다루가 기다렸다는 듯이 왕의 말에 바로 대답하였다. 왕은 이미 남몰래 도다루와 대책을 논의한 바가 있음에도 이에 대해 되물었다.
“그것이 무엇이오?”
“신라왕의 아들이 혼기가 차 짝을 고르는 중이라 합니다. 화안공주님의 혼기도 차 있으니 서로 혼인을 맺어 동맹을 굳건히 하고 고구려의 공격을 방어하자는 빌미로 신주의 일부를 양도 받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신라도 분명 내심 우리의 반응을 불안해하고 있을 터이니 굳이 이런 제의를 거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다른 네 명의 좌평도 도다루의 말에 찬성했으나 고슬여는 나서지 않았다. 나라일이 중요하다고 해도 아들이 화안공주를 사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슬여는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왕은 고슬여를 짐짓 외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를 먼 곳으로 보내는 일은 과인으로서 마음 아픈 일이오. 허나 경들의 말에 허울 됨이 없고 실리도 취할 수 있다면 내 굳이 이를 마다할 수는 없소. 신라에 사신을 보내도록 하시오.”
왕은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았고 내심이야 어찌되었건 냉혹하게 딸을 신라로 시집보내기로 결정하고 말았다. 고도는 그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앞뒤 가릴 것 없이 화안공주를 찾아가 앞을 막아서는 궁녀들을 제치고 공주의 처소로 들이닥쳤다.
“이 무슨 짓이오? 물러가시오.”
화안공주는 짐짓 엄히 소리쳤으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공주님 이대로 신라로 가 생면부지의 사람과 혼인을 맺을 작정입니까? 그것이 공주님이 원하는 바는 아니지 않습니까?”
“물러가라 하지 않았소!”
“공주님, 저와 혼인을 올립시다. 그러면 폐하께서도 공주님을 신라로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함부로 그리 할 수는 없소. 이 일은 국운이 걸린 일이오.”
화안공주의 말끝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고도의 설득은 계속되었고 화안공주의 거부는 궁중을 지키는 병사들이 달려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화안공주의 만류로 이 사실은 당장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도는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화안공주의 처소로 찾아와 지키고 있는 병사들을 주먹으로 때려눕힌 후 눈물로 호소하기까지 했다.
화안공주는 마음이 흔들렸지만 함부로 처신했다가는 뒷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고도의 행동은 단순한 연모라기 보기에는 지나치게 집요한 감이 있었다. 자연히 이 사실은 온 궁궐 안에 퍼졌고 왕의 귀에도 들어가고 말았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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