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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 종결회의에서 공동 보도문을 발표한 이재정 통일부 장관(왼쪽)과 권호웅 내각책임참사가 회담장을 나오고 있다.
1일 오후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 종결회의에서 공동 보도문을 발표한 이재정 통일부 장관(왼쪽)과 권호웅 내각책임참사가 회담장을 나오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윤창원

"북한의 태도는 개탄스럽지만 정부가 모처럼 남북관계에서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바람직했다. 4월 말 남북 경제회담에서 남측은 쌀 지원을 6자회담의 '2·13 합의' 이행과 연계했다.

그러나 결국 쌀을 보낼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는 그런 우려를 불식하고 '쌀 지원 유보'라는 입장을 견지한 것이다. 앞으로도 북한에 대해 이런 당당한 자세를 계속 보여 주길 바란다."


지난 2일 <중앙일보>에 실린 '북핵 해결과 쌀 지원 연계원칙 잘 지켰다'라는 제목의 사설이다.

<중앙일보>는 이번 장관급 회담 기간동안 통일부와 대립했다.

통일부는 프레스센터 개설을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 방침과 모순 되는 것으로 비판한 <중앙일보>에게 취재 편의 제공을 거부한다고 선언했고 둘은 큰 마찰을 빚었다. 이렇게 감정이 쌓인 언론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정도면 이번 남북장관급 회담 때 현 정부의 태도가 얼마나 그들 마음에 들었는지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물론 이라크 파병, 대북송금특검, 한미FTA 등 큰 사안에서 항상 보수언론과 노무현 정부가 코드가 맞았던 사례에 또 한 가지가 추가되는 것이다.)

2·13 합의와 대북 쌀 지원을 연계함으로써 사실상 결렬로 끝난 장관급 회담의 결과를 설명하면서 통일부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국민의 뜻'이다.

40만t의 대북 쌀 차관 제공은 국민이 낸 세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국민적 합의와 지원 속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사실 청와대의 뜻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나로서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언제 청와대가 다른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른바 '국민의 뜻'을 언급했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에 대한 대연정 제안은 거의 전 국민이 반대했는데도 청와대가 밀어붙였다. 올해 초 정가를 달궜던 개헌 문제도 마찬가지다.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노무현 대통령은 원맨쇼를 하듯 추진했다.

기자실 통폐합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반대가 많다. 국민의 반발이 많은 사안을 강행할 때 청와대는 '원칙' '진정성' 등의 이유를 들며 합리화했는데 그 밑바탕에는 "역사가 우리를 평가할 것"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뜻, 국제사회 분위기 핑계

회담이 열리고 있는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 3층 다이아몬드홀에 프레스센터에 중앙일보 기자의 노트북이 놓여져 있다.
회담이 열리고 있는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 3층 다이아몬드홀에 프레스센터에 중앙일보 기자의 노트북이 놓여져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권우성
이것이 유아독존인지 아니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인지 각자 판단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유독 남북관계에서만은 청와대는 이렇게 묘사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9일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노 대통령은 포용정책을 포기하겠다면서 그 이유로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들었다. 그는 "이제 한국이 소위 제재와 압력이라고 하는 국제사회의 강경수단 주장에 대해 대화만을 계속하자라고 강조할 수 있는 입지가 상당히 없어진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 실패'는 해괴한 이론"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무소의 뿔'을 휘두르자 노 대통령은 슬그머니 태도를 바꿨다.

이번에 문제가 된 대북 쌀 지원과 2·13 합의 연계만 해도 문제가 많다.

정부는 여러 번 대북 쌀 지원은 인도적 사안이라고 설명해왔다. 인도적 사안을 정치적 문제와 연결시키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말을 뒤집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쌀 지원을 끊으면서 북핵 문제의 국제적 출구가 열리면 지원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국제적 출구는 6자회담 재개였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6자회담이 재개되었는데도 정부는 눈치만 살피며 차일피일 쌀 지원을 미뤘다. 지난달 4월 1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 회의 때 남한은 5월 말 첫 번째 배가 출항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정부는 그동안 북한에 대해 합의 사항의 이행을 촉구해왔는데 스스로 모순된 행동을 했다. 이재정 장관은 취임 뒤 남북대화의 제도화·정례화를 중점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불과 몇 개월 만에 큰 난관에 부닥쳤다.

현재 2·13 합의의 진행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 문제다. 그런데 BDA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 정부 입장도 "북한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BDA를 제재해놓고 지금은 애국법에 따라 제재를 풀지 못해 고민에 빠졌다. 중국도 중국은행을 통해 동결된 북한 자금을 중개할 수 있는데 뒤로 빼고 있다.

북한 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까지 책임을 면할 수 없는 BDA 문제, 그리고 이 때문에 지연되고 있는 2·13 합의 이행과 쌀 지원을 연계시킨 것은 논리적 정합성도 없다.

북한에 통미봉남의 유혹 느끼게 할 것

지난해 6·15 남북공동선언 6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2일차 부문상봉 남북농민대회에서 통일쌀 인도 인수식을 하고 있다.
지난해 6·15 남북공동선언 6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2일차 부문상봉 남북농민대회에서 통일쌀 인도 인수식을 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김철수
더 큰 문제는 장기적으로 북한에게 다시 한번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유혹을 강하게 느끼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통미봉남이란 미국과만 대화나 협상을 진행하고 남한은 배제하는 전략이다.

김영삼 정부 때 한국은 통미봉남 전략에 뼈아프게 당했다. 미국은 제네바 합의 때 경수로 2기를 지어준다고 마음대로 북한에게 약속해놓고 공사비 70%를 한국에 떠맡겨버렸다. 그리고 한국은 아무런 발언권도 확보하지 못했다.

북한은 2000년 6·15 정상회담 이후 남한과 직접 대화를 시작했다. 이전에는 북한이 우리를 배제하고 미국과만 대화한다고 반발하던 남한이 이제 와서는 미국의 뜻을 보고 북한과의 대화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하는 것은 코미디 수준이다.

결국 북한 입장에서 볼 때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결국 미국에게 달려있는 것이며, 미국과 문제만 풀리면 남한은 나중에 따라오게 되어있다"는 인식을 각인시켜줄 뿐이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는 지난 5월4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초청강연에서 "한국 정부는 미국에게 '남북 관계의 진전은 6자 회담보다 항상 반 발짝 뒤에 가야한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른바 반발짝론이다.

버시바우 대사가 공개적으로 언급한데다 정부의 반박도 없었으니 사실일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입장이 이렇다면 굳이 수억원씩의 비용을 써가며 남북 대화를 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다. 미국이 다 결정하고 난 뒤 따라만 가면 되지 않는가?

또 북한 입장에서도 남한은 대등한 대화상대로 인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미국과의 협상 진행 정도에 따라 수금하러 다닐 상대에 불과한 것 아닌가? (예를 들면 쌀 지원)

대북 정책은 보혁간에 치열한 다툼이 발생한다. 상황에 따라 국민의 뜻에 따라서만 갈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지도자가 장기적 안목으로 추진할 때 비로소 성과를 거두는 법이다.

DJ의 훈수정치를 놓고 논란이 많다.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은 차치하고 DJ가 훈수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무튼 정치적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적 힘은 바로 남북문제에 대한 그의 식견과 비전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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