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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노무현 정부는 폐쇄적 기자실 운영의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며 개방형 브리핑제도를 도입했다. 그 뒤로 4년. 임기 말의 노무현 정부는 또 다시 정부 부처 기자실 통폐합을 골자로 한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들고 나왔다. 이에 대해 언론사들은 '언론자유 침해'라고 맞서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4년 전 정부가 실시한 개방형 브리핑제 이후에도 여전한 기자실의 폐쇄적 운영과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언론개혁 정책의 허와 실 등에 대해 몇 차례로 나눠 보도한다. <편집자주>
취재: 장윤선 안윤학 이경태 기자

고경빈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이 지난 5월 30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 전체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고경빈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이 지난 5월 30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 전체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권우성
# 사례1. 통일부

"북측이 개발한 IT기술이 대체 뭡니까?"

지난 5월 22일 A기자가 통일부 관계자에게 물었다. 개성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에서 개최된 전기·전자분야 교역설명회와 관련된 보도자료를 받아든 뒤였다.

보도자료에는 '북측이 IT분야 협력방안을 설명했다, 동시에 북측이 개발한 IT기술을 선보였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IT기술과 IT분야 협력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통일부로부터 변변한 답을 듣지 못한 A기자는 남북경협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추가 확인취재를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A기자는 또 다시 남북경협사무소로부터 "통일부에 전화하라"는 답을 들어야했다.

서로 담당을 미루는 이른바 '기자 뺑뺑이'를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통일부 정책홍보본부 관계자들은 관련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A기자는 남북경협사무소가 자료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남북경협 사업의 성과를 자랑하기 위해 서둘러 보도자료를 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같은 문제제기에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의 한 관계자는 "보도자료를 배포할 때 시간에 쫓겨 내용이 불충분했던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관련내용을 파악해서 기자들의 문의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고 해명했다.

# 사례 2. 건설교통부

지난해 11월 24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낙후지역 투자촉진 정책'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는 건설교통부·산업자원부·행정자치부 등 관계부처 장관들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서남권 종합발전구상'을 보고했다.

B기자는 건설교통부 홍보관리관실로부터 이 구상안에 대한 보도자료를 받았다. 전남 무안·목포·신안에 신산업 거점을 육성한다는 게 구상안의 골자였다. 그런데 예산문제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선뜻 납득되지 않는 대목이 있었다.

B기자는 도저히 보도자료에 의존해 기사를 쓸 수 없었다. 추가 취재가 반드시 필요했다. 취재를 해보니 구상안에 대한 재원조달 계획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부처간 협의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 구상안에 따르면 2007년부터 3년 동안 6000억원을 투입하기로 돼 있었지만, 관련 예산이 2007년 예산안에 반영돼 있지도 않았다.

B기자는 이 경우를 대표적인 정부부처의 부실 브리핑 사례로 들고 있다.

지난 1일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 동탄 신도시 발표. 이 기자회견은 과천 정부종합청사 합동브리핑룸에서 이루어졌다.
지난 1일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 동탄 신도시 발표. 이 기자회견은 과천 정부종합청사 합동브리핑룸에서 이루어졌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공무원과 만나려면 반드시 공보관실을 통하라?

2003년 참여정부가 폐쇄적인 기자실 운영의 대안으로 개방형 브리핑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실제 기자들은 취재현장에서 '부실 브리핑'에 애를 먹고 있다. 개방형 브리핑제도가 실시되고 있지만 실제 바뀐 게 무엇이냐는 볼멘 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브리핑의 내용은 부실하고, 추가취재가 필요한 대목에서는 공무원들의 비협조적 태도로 여간 취재가 힘겨운 게 아니라는 성토다. 심지어 대변인격인 홍보관리관조차 관련내용을 몰라 답변 못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때론 브리핑이 일방적인 홍보의 장으로 변질돼 정부정책의 맹점을 감추려 할 때도 있다고 푸념했다.

최근 정부는 '개방형 브리핑제도의 보완 및 완성'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내놓았다. 이 방안이 시행되면 기사송고실·브리핑룸이 통폐합되고, 공무원과 만날 땐 반드시 공보관을 거쳐야 한다.

이에 대해 정부부처 출입 기자들은 "브리핑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무원 접촉 기회마저 줄어들면 취재가 사실상 봉쇄될 것"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출하고 있다. 특히 한 기자는 "어느 공무원이 용기를 내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겠느냐"고 따졌다.

[장벽 ① 부실 브리핑] 보도자료 외에는 "내 소관이 아니다"

"보도자료와 관련된 질문은 응답을 잘 해준다. 그러나 더 깊숙한 질문, 보도자료 외의 궁금한 점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다', '더 알아봐야 한다', '내 소관이 아니다'며 대답을 피한다."

정부과천청사를 출입하고 있는 한 기자가 취재현장에서 느낀 답답증이다. 정부가 알려주고 싶은 정보만 발표하고 그외 정보는 나 몰라라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어 현장취재에 어려움이 많다고 기자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과천청사에 출입하고 있는 C기자는 "개방형 브리핑제도를 내실있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대변인이 소속 부처의 제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보도자료를 읽는 수준에서 브리핑이 이뤄져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기자들의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도 충분히 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외교통상부에 출입 중인 D기자는 "브리핑 횟수는 늘었지만 정부 발표 내용과 기자가 알고 싶은 정보 사이의 격차는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통일부에 출입하는 E기자는 이른바 '비주류 매체' 기자로서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는 "군소매체 기자가 출입처에 상주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 브리핑조차 알맹이가 없다"면서 "정부는 '개방'을 표방하고 있지만 취재환경은 개방형 브리핑제도가 없었던 2003년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강조했다.

또다른 기자는 "정부는 잘 추진되는 상황, 공개하고 싶은 정보를 중심으로 브리핑을 한다"면서 "공무원들이 정부 잘못을 스스로 고백하고 반성을 하겠냐"고 반문했다.

일부 기자들은 각 부처가 정부 지침에 따라 마지못해 브리핑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브리핑이 없을 때는 '학습자료'를 내놓고 이 분야에 대해 같이 알아보자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브리핑룸이 기사 송고실(상주기자단의 공간)에 들어가지 못하는 기자들의 '마이너리그'로 전락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했다. 사실상 브리핑룸이 '2등 기자석'이 됐다는 지적이다.

정부부처의 브리핑이 부실하다는 지적에 대해 재정경제부 홍보관리팀의 한 관계자는 "KTV 등을 통해 생중계되는 만큼 전체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기자들이 보기에 브리핑이 부실하게 보일 수도 있다"면서도 "주요 정책, 경제동향 등에 대해서는 충분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고 반론했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지난달 22일 오후 세종로 정부합동청사 브리핑실에서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설명하는 가운데 수십 명의 기자들이 국정홍보처의 발표를 기록하고 있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지난달 22일 오후 세종로 정부합동청사 브리핑실에서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설명하는 가운데 수십 명의 기자들이 국정홍보처의 발표를 기록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장벽 ② 비협조적인 취재태도] 간부급 취재, 5번 전화걸면 1번 통화

"재정경제부 간부급과의 통화 성공률은 2할대다. 5번 시도해야 1번 연락이 닿을까 말까다. 부국장급 이상은 연락 닿기가 어렵다. 부국장급 이하 직원과는 통화하기는 쉽지만 책임 있는 답변을 얻기가 어렵다."

재정경제부를 출입하고 있는 한 기자의 볼멘 성토다. 기자들은 정부 브리핑 내용에 의문이 있거나 의심이 생기면 취재원(공무원)을 찾는다. 약속을 해서 만나거나 전화를 걸어 추가 취재를 한다. 그러나 시원한 답변을 얻기는 쉽지 않다. 기자들은 "공무원들이 취재에 비협조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F기자는 "공무원 입장에서 보자면 브리핑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만 정리한 것"이라면서 "추가 취재에 응하지 않아도 자신들에게 해가 될 게 없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기자는 "국장·과장급 일부는 통합 브리핑제도를 거론하며 '공보관을 통해 질의하라'고 말한다"고 출입처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이 마치 이미 시행된 듯한 태도로 기자들을 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보관을 통해 나오는 정보는 중요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며 "기존 정보가 맞나, 틀리나를 확인하는 수준에 그친다"고 전했다.

출입처 내 '양극화'도 문제다. 관료사회에서도 이른바 주류 매체 기자들이 취재하기 쉬운 풍토라는 것이다. G기자는 "정부가 대형 언론사에만 고급 정보를 주는 경향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한 정부부처 관계자는 "공평한 취재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군소 매체라고 차별하는 경우는 없다"고 못 박았다. 이어서 "다만 기자 8명이 출입하는 언론사와 1명만 출입하는 언론사 간에 정보입수 능력에 차이가 있는 게 아니냐"면서 "이것이 자칫 '대형 매체에만 정보가 간다'고 비춰질 수 있겠다"고 말했다.

[장벽 ③ 비공개 투성이인 정보공개] 10일을 기다려도 정보공개는 하늘의 별따기

"정부에 문제가 될 만한 정보를 요청하면 '공개하기 어렵다', '그런 정보 없다'면서 어물쩍 넘길 때가 많다. 정 알고 싶으면 '국회를 통해 알아보라'고도 한다."

한 기자의 고급 정보 취재 실패기다. 취재원과의 만남이 어려울 경우, 기자들은 공공기관에 정보공개를 요청한다. 그런데 기자들은 이 과정에서 또 한번 취재장벽에 맞닥트린다. 정부 측이 '보안' '기밀' 등을 이유로 정보공개를 꺼리기 때문이다.

건설교통부에 출입하고 있는 B기자는 "정부가 민간자본사업을 추진할 경우, 사업자와의 계약내용 등에 대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가령 정부는 민간자본사업 추진에 있어'예상 교통량 및 수익이 일정량에 도달하지 못하면 부족 재원을 정부가 지원한다'는 등 국민세금과 밀접히 관련된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건교부에 '왜 공개를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민간 사업자와의 계약에 따라 비공개한다"는 원칙론만 앞세운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같은 원칙론과 달리 기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민자사업에는 수백, 수천억원의 혈세가 들어간다. 따라서 기자들은 국민의 입장에서 정부가 민간자본 사업자에게 얼마를 지원하는지, 얼마만큼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 손해는 없는 것인지 등등을 알려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비공개' 등을 내세워 국민들을 눈가림하려고 한다는 게 B기자의 지적이다.

정보가 공개되기까지의 시간도 걸림돌이다. 정보공개법(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정보공개 청구를 받은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공개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현직 기자들은 "정보공개 여부 결정에 오랜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10일을 기다린다 해도 요청한 자료를 얻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정보공개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B기자는 "국가기밀로 분류되는 최소한의 정보 이외엔 모두 홈페이지·관보 등을 통해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천정부종합청사내 제1청사에 정보공개민원접수처가 마련되어 있다.
과천정부종합청사내 제1청사에 정보공개민원접수처가 마련되어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부, 엄청난 비밀덩어리 정보를 내놓을 준비가 됐나"

이같은 상황에 대해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의 핵심은 누가 얼마나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를 국민의 식탁 앞에 배달되느냐 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정보 비밀주의를 유지하겠다는 욕망을 끊임없이 갖는다면 결과적으로 기자들의 주장이 승기를 잡는 것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행 정보공개시스템이 지나치게 밀폐돼 있고 비밀주의가 많은 상황에서 기자들에게 공무원 접근권까지 차단한다고 나서니 기자들이 발끈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진단이다. 결과적으로 기자들을 '파리떼' 취급해서 감정싸움이 났다는 것이다.

기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별 것도 아닌 정보를 얻지도 못하는 데다가 정보의 질도 안좋아 사실상 정보시스템의 교착상태에 빠진 것이고, 정부 입장에서 보자면 폐쇄적인 기자실 시스템에서 안주하려는 기자들의 취재관행을 바꾸겠다는 것인데, 학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둘다 양비라는 것이다. 언론과 정부 모두 잘한 게 없다는 주장이다.

김승수 교수는 "정부가 갖고 있는 엄청난 비밀덩어리 정보를 언론이 조작하거나 추측하지 않고 정확하게 보도함으로써 국가적 낭비를 없앨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논쟁의 핵심이어야 한다"며 "정부가 먼저 정보개방의 안을 내놓고 기자실을 없앤다고 했다면 많은 국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을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김 교수는 "정부가 대통령의 월급 등 무제한적으로 국민들에게 정보개방을 해야 한다"며 "국민이 정세를 정확히 판단할 정보가 없기 때문에 각종 예단이나 추측 등의 사회적 낭비가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자실#개방형 브리핑#통일부#외교통상부#건설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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