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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토
가난한 부모들은 자기들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자 하는 경우라도 아이들이 손에 쥐게 되는 자격증이나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돈에 대해, 아이들이 무엇을 학습하는가보다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대해 중산계급의 부모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거리에서 배우는 것을 자기의 아이들에게는 배우지 않게 하기 위해 아이들을 교사의 보호에 위탁한다.

교육학 연구의 성과에 의하면 아이들은 교사가 가르치고자 하고 있는 대부분의 것을 친구집단, 만화, 우연히 관찰한 것, 그리고 그중에서도 다만 학교의 의식에 참가하는 것에서만 학습한다는 사실이 점점 더 많이 알려지고 있다. 대개의 경우 교사는 학교 안에서 진행하는 그런 학습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그 이전에 대학은 개인의 언론자유는 지켜왔으나 개인의 지식이 자동적으로 부로 전환되는 일은 없었다. 중세에 있어 학자가 된다는 일은 가난한 자, 아니면 심지어 거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그의 직업적 성격 때문에 중세의 학자는 라틴어를 배우고, 농민이나 귀족시민이나 목사로부터 존경과 더불어 경멸까지도 받던 사회에서 아웃사이더가 되었던 것이다. (중략)

일단 학교를 필요로 하게 되면 우리들은 모든 활동에 있어 다른 전문화된 제도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독학한 사람들을 불신하게 되면 모든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의 활동을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보게 된다. 학교교육의 가치 있는 학습은 학교에 출석한 결과 얻어지는 것이면, 학습의 가치는 배움을 받는 양이 늘어나는 데 따라 증가하고, 그 가치는 성적이나 증명서에 의해 측정되고 문서화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저자가 말하는 '학교 없는 사회'라는 것은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사라진 사회가 아니라 관료화되고 제도화된 학교가 없는 사회이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나 무료로 쉽게 배울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는 사회,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 학력이나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는 사회를 말한다.

대학입학을 고등학교 졸업이나 동등의 자격 소지자로 제한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급속히 학교 없는 사회로 나갈 수 있다. 대학은 졸업장이 아닌 학문의 즐거움을 위해 진학해야 한다.

예전에 졸업한 제자를 마트에서 만났다. 그 아이는 전문대학을 졸업했지만 계산대에서 물건값을 계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에게 학교에서 해 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학교 없는 사회 - 타율적 관리를 넘어 자율적 공생으로

이반 일리히 지음, 박홍규 옮김, 생각의나무(2009)


#학교 없는 사회#미토#이반 일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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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사람에겐 편안함을, 친구에게는 믿음을, 젊은이에겐 그리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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