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이한열이 우리 곁을 떠난 오늘, '민주'와 '통일'이 임진각에서 다시 만났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6월민주항쟁20년사업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YMCA전국연맹이 주관하는 '대한민국 하나로 잇기' 행사 중 '임진각-서울 하나로 잇기' 출정식이 녹색자전거봉사단 등 행사 참석자 천 여명이 모인 가운데 9일 오전 10시에 임진각에서 열렸다.
"6월항쟁 무임승차 언론이 우리 머리를 썩게 하고 있다"
6월민주항쟁20년사업위원회 오충일 공동대표는 기념사를 통해 "우리는 화창한 날씨에 축제 분위기에서 오늘을 맞았지만, 동시에 이 날은 민주항쟁 한복판에서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 직격탄에 절명한 비극적인 날"이라며 "쿠데타를 통해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반통일·반민주·반민족 정권에 의해 고문 당하고 희생당한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오 공동대표는 "이곳은 분단의 상징이자 통일의 염원이 담긴 장소로 오늘은 비록 서울로 가지만 다음 행사에서는 여기서 평양으로, 그리고 다시 평양에서 서울로, 그래서 조국 한반도가 하나로 되는 민족축제로 이어지길 바란다"면서 "지금 여기서 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얼굴들이 많은 만큼, 그들의 피와 눈물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민주주의와 통일의 내일을 힘차게 여는 대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무대에 오른 함세웅 신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는 "오늘 행사는 민주주의를 심화하자는 의미와 함께 바로 이 곳에서 납북 일체와 화해를 바란다는 뜻이 있다"면서 "젊은 세대가 6월 혁명 정신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의 체험을 함께 나눈다면 앞 세대보다 더 큰 것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전날(8일)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소위 보수 신문들의 정보 왜곡 때문"이란 주장을 펼친 바 있는 함 신부는 이 날도 언론에 대한 비판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함 신부는 "박정희·전두환 독재 정권의 앞잡이이자 꼭두각시였던 언론은 6월 항쟁에 무임승차했다"면서 "그런 언론이 오늘날 삶의 가치를 흐리고, 우리의 머리를 썩게 하고 있다. 우리 모두 언론의 감시자가 되어 민주화를 심화시키자"고 주장했다.
"6월이다, 다시 날자! 민족 통일 이룩하자"는 함 신부의 구호 제창에 이어 한국YMCA전국연맹 이학영 사무총장은 출발 선언을 통해 "그 때 태어난 아이가 대학생이 됐고, 그 때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년층이 됐다"며 "우리 젊음을 바쳤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고 좀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한 행진이 머뭇거리고 있다. 다시 한 번 새로운 나라,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자"고 외쳤다.
"새로운 민주주의! 새로운 조국으로!"는 구호 제창과 함께 출정식을 마친 참석자들 중 녹색자전거봉사단 5백여명은 서울 시청 앞 광장으로 출발했으며, 시민대표단으로 참석한 500여명은 고양시민 걷기 대회 참가를 위해 고양종합운동장으로 이동했다.
이 날 행사에는 고 이한열 어머니 배은심씨, 고 박종철 아버지 박정기씨, 김병오 6월 민주항쟁 20년 사업추진위 상임공동대표, 6월항쟁 당시 넥타이부대로 참여했던 전 대한보증보험 노조위원장 김국진씨등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참석했고, 정치인으로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추미애 전 국회의원, 유선호·이인영·최규성 의원 등이 모습을 나타냈다.
추미애 "앞으로는 민주세력 결집에 적극 나서겠다"
특히 최근 정치적 활동을 재개한 추미애 전 의원은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민주화 세력이 오늘날 조금 위축됐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나 비전이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래 시대를 책임질 역량과 능력은 민주세력에게 있다고 본다"면서 "정의 넘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책임 의식을 갖고 민주 세력이 결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행사 참석 소감을 밝혔다.
또 추 전 의원은 "민주주의는 완성 개념이 아닌 만큼, 새로운 과제를 찾기 위해서는 내부 성찰이 필요하다"면서 "'지금 '이대로 좋다'고 말하거나 잘했다고 하는 것보다는 민주 세력의 결집과 결단을 통한 내부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여권 판세와 관련한 질문에 추 의원은 "오늘만은 정치 이야기 하지 맙시다"고 답했으나 재차 '앞으로 민주 세력 결집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냐'고 묻자 "당연하다, 시대의 사명감을 갖고 계속 호소할 생각"이라고 말해 향후 적극적인 행보를 암시했다.
또한 최근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이인영 의원은 "당연히 와야 한다는 생각에 행사에 참석했다"며 "경제적 민주주의 정착이나 사회 복지 문제에 대해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민주주의 기반을 닦아 평화 통일의 물꼬는 틀 수 있을 만큼은 왔다"고 말했다.
이어 탈당과 관련하여 '요즘 마음이 복잡할 것 같다'고 말하자, 이 의원은 "앞으로 한 번만 더 잡으면 (위 문제들을) 확고하게 해결할 수 있을 텐데"라며 웃고 "정권도 정권이지만, 대중의 바다에 자신을 던져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기념할 때가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행동할 때"
이와 함께 행사 참석자들로부터는 6월 항쟁에 대한 소회도 들을 수 있었다. 송파구 자전거여행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상운씨(56·남)는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6월 항쟁 당시 직원들과 함께 돈을 모아 명동성당에 전달한 적이 있다"면서 "민주화를 위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넋을 기리고 통일을 염원하는 아주 뜻깊은 행사라는 생각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녹색자전거봉사단 한만정 단장(58·남)도 "민주화를 위해 희생당하신 분들도 통일을 염원했었고,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르지만 6월 정신은 당연히 남북통일에 대한 희망을 포함하고 있다"며 "6월 정신이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일단 통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동료 학우들과 함께 행사장에 온 한신대 국사학과 학생회장 김인혜씨(21·여)는 "교과서로만 배웠던 6월항쟁을 보다 가까이 접하기 위해 행사에 참석했다"면서 "예전처럼 운동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는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김인혜씨는 "최근 언론에서 젊은 층의 보수화를 자주 이야기하는데, 그에 대한 책임이 우리 세대에게만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면서 "현재 취업 문제는 분명히 개인 문제만은 아닌 만큼, 정치나 언론이 이에 대한 관심을 보여줘야 학생들도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행사 협조를 위해 임진각을 찾았다는 우문명씨(45·남)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것도 많고, 아직 관철되지 않은 문제도 많은데 자꾸 이런 식으로 기념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며 "6월에 함께 따라다니며 민주화를 외쳤던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고통받고 있지 않느냐"고 행사 의미에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로 이 날 행사 참석자 중에는 행사 취지를 잘 모르고 온 사람도 있었으며, "잘 모른다"면서 인터뷰 요청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대한민국 하나로 잇기' 행사 출정식에 오후 3시 현재 전국적으로 50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