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날 근무 중 어깨와 목이 굳어 병원엘 갔다. 적외선 촬영 결과 좌측 목부터 다리까지 부분적으로 혈액순환이 안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뇌졸증 비슷한 증세였으나 뇌에는 전혀 이상이 없고 그래서 의사들은 고심을 했고 그렇게 고민 끝에 만들어진 병명은 디스크의증이라나. 그 병원에서 8주를 입원했다. 나의 병과의 투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병에서 수반되는 우울증, 무력감 등은 사람을 퇴화시키기 십상이었고 그런 수렁에서 벗어 나오려 무던히도 애썼다. 기공, 택경, 지압, 수영, 꼽을 수 없이 두루 섭렵을 하였으나 그때뿐이었다. <중략>
96년 9월. 날은 더없이 화창했고 축제 분위기가 한창이던 토요일 오후의 마로니에 공원, 우리는 꿈길을 걷듯 하얀 옷을 입고 길을 걸었다. 마이크를 잡고 단상에서 절규하던 동료 산재환자의 울부짖음을 귓가에 감고... <1996년 12월 <평등>2호, 한국통신 경견완장애 환자의 글 중에서>
'96년 하얀 소복을 입고 수백 명의 한국통신 여성노동자들이 마로니에 공원에 모였다. 당시로선 생소한 직업병인 '경견완장애'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한국통신 교환원들의 시위였다. 소복은 원래 누가 죽었을 때 유족이 입는 옷이다. 그것은 자신과 동료들이 죽도록 아프다는 절박한 표현이었다.
'90년대 초 전화가입자는 백만 명 이상이 늘었으나 교환원 수는 오히려 줄어든 가운데 매달 실적에 따라 1위는 '114여왕', 하위 3%는 교육대상 등 각종 성과 경쟁에 내몰렸던 결과였다. 교환원들은 114로 걸려오는 시간당 평균 131건의 문의전화를 받아 키보드로 업체명 등을 입력하고 전화번호를 검색하여 결과를 알려주는 작업에 종사하였다. 몇 년 이상 이렇게 일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어깨위로 손을 올리기 힘들어지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의 통증에 시달렸다.
결국 '96년 8월까지 한국통신에서는 총 265명의 한국통신 교환원들이 경견완장애로 산업재해 판정을 받았고 우리나라 직업병의 역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광산 진폐증이나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중독증과 같이 먼지나 화학물질에 의한 질병만 직업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사무직은 직업병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알고 있었다.
경견완장애라는 병명은 당시 적절한 용어가 없어 일본의 병명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었다. 새롭게 제기된 문제였던 만큼 용어에서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 동안 'VDT 증후군 (Video Display Terminal Syndrome)'이란 표현도 사용하였는데 컴퓨터단말기 작업에 의한 질환만을 지칭하는 한계가 있어 나중에 근골격계질환으로 조정되었다.
이외에도 누적외상성질환(CTD, cumulative trauma disorder)이란 표현도 쓰는데 무리한 반복작업, 부적절한 작업자세가 쌓이면서 근육 등이 '외상(trauma)'을 입는다는 것이다.
2003년 7월에는 '근골격계부담작업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이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 사업주의 의무로 명시되었다. 특히 법에서는 사업주가 근로자를 근골격계부담작업에 종사하게 할 때는 3년에 한 번씩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해요인조사란 근골격계질환 예방을 위해 관련 증상에 관한 면담과 설문조사, 인간공학적 평가 등을 실시하고 작업환경개선계획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근골격계질환 산재환자의 25.7%가 장애등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일반적인 사고성 산재의 경우 13.3% 만이 장애가 남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비율이다. 예방의 중요성은 여기서 제기되는데 노동자들이 너무 참으면서 일하지 않도록 면담과 설문조사 등을 통해서 미리 문제를 발견하고 예방하는 것이 바로 유해요인조사의 목적이다.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해야 하는 기한이 이 달 말일로 다가왔다. 2004년 6월 30일 이전 1차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한 사업장은 이제 2차 조사를 이번 달까지 실시해야 한다. 소규모사업장의 경우 유해요인조사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은데 증상에 관한 면담을 위주로 하는 조사를 실시할 것을 권한다.
작업환경개선에 관한 부분은 산업안전공단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개선사례를 참고하면 좋다. 작업대의 높이 조절, 간단한 공구 개선 등을 통해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혹시 오십견이 의심스럽다면 나이를 탓하기에 앞서 하는 일이 근골격계부담작업인지를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말해보자. 우리 회사는 유해요인조사 안해요?
덧붙이는 글 | 강태선 기자는 노동부 성남지청 산업안전근로감독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