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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을 재현하며 김순호 신부, 최병욱 교수, 최교진 선생이 시위대를 앞장서고 있다.
6월항쟁을 재현하며 김순호 신부, 최병욱 교수, 최교진 선생이 시위대를 앞장서고 있다. ⓒ 장승현

"독재타도 호헌철폐!"

87년 유난히도 더웠던 그해 6월항쟁을 기리는 민주화운동 20주년 기념행사가 9일 대전역과 서대전시민공원에서 열렸다.

봉고차 위에서 선동을 하고 있는 시위대들
봉고차 위에서 선동을 하고 있는 시위대들 ⓒ 장승현

1부행사는 '6월의 거리를 다시 걷다!'라는 주제로 대전역에서 오후 3시에 출정식을 하고 20년 전 1만여명이 행진했던 대전역 중앙로 거리에서 대전충남시도민대행진이 d이어졌다.

이날 학생, 시민단체, 일반 시민들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민국 하나로 잇기 자전거 순례단' 100여명까지 합세해 그때의 집회를 재현했다.

그때 지도부를 구성했던 최교진, 최병욱, 김순호 신부 등이 행렬의 앞에 선채, 그때 외쳤던 "독재타도, 호헌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행진했다.

시위대들이 빌딩 건물에서 유인물을 뿌리고 있다
시위대들이 빌딩 건물에서 유인물을 뿌리고 있다 ⓒ 장승현

도중에 대전역 중앙로 건물에서 학생들이 유인물을 뿌리는 장면을 재현하기도 했다.

한편, 서대전 시민공원에서는 2시부터 인간 동상 따라 하기, 만장 써서 달기, 북측 책 전시회, 마술공연, 북한음식 체험하기 등 일반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이날 프로그램은 희망마당, 평화마당, 생명마당, 민주마당, 통일마당 등 다섯 가지 주제로 기획되어 풍성한 볼거리를 만들었다. 6월항쟁 20주년 기념식은 6시부터 대전충남 6월항쟁 20년 사업연대 정완숙 상임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그때 모였던 시민들이 20년만에 광장에 다시 모였다.
그때 모였던 시민들이 20년만에 광장에 다시 모였다. ⓒ 장승현

식전행사로 비보이 공연, 재미모리 유아풍물단 130여 명의 풍물단 공연, 합창공연이 열렸고 시도민과 함께 부르는 '아침이슬 함께 부르기' 전국동시 합창을 연출하기도 했다.

6월항쟁의 지도부들(김순호 신부, 최교진 선생, 최병욱 교수)
6월항쟁의 지도부들(김순호 신부, 최교진 선생, 최병욱 교수) ⓒ 장승현

이날 축사에서 최병욱 대전충남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은 "지구가 존재하는 한 민주화운동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든 자랑스런 민주주의를 지켜나갑시다"라고 말했다.

이어 축사에 나선 열린우리당 선병렬 국회의원은 "20년 전 6월은 무척 더웠습니다. 자욱한 최루탄 속에 뜨거웠던 6월항쟁을 계승하여 남북화해 통일시대로 가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권선택 국민중심당 국회의원은 "민주화 세력을 폄하하는 세력이 있다. 민주화 운동 세력은 무능한 게 아니다"고 주장했고 민주노동당 천영세 원내대표도 "6월항쟁 20년입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뀌고 직선제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6월항쟁은 완성되지 않고 진행중입니다. 통일된 7000만이 6월항쟁의 노래를 부르는 날이 와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6월항쟁의 주역들 충남민청 김홍영 의장과 박영기, 박병대씨
6월항쟁의 주역들 충남민청 김홍영 의장과 박영기, 박병대씨 ⓒ 장승현

이날 만난 6월항쟁의 주역들은 현재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선 그때 일반 시민으로 참여해 시위를 주도했던 박병대(50세)씨를 오래간만에 만났다.

항상 짧은 스포츠 머리에 시위 때마다 앞장서서 전경들과 몸싸움을 한 분으로 그때 이후 시위현장에서 낯익게 보는 얼굴이었다.

"그때 전경한테 맞고 머리가 깨져 민청 유덕준씨가 병원에 데려가는 바람에 충남민청에 가끔 나오게 되었지요. 그때는 항상 전경들이 저기 머리 짧은 놈 잡으라고 난리를 쳤었지"라고 말하며 그때를 회상했다.

박병대씨는 "근데 그때 전경버스를 탈취해 밀어붙인 허정길씨는 15년 동안 감옥갔다 와서 이름없이 살고 있다는데 사실 우리가 할일은 그런 사람들을 돌봐줘야 하는데. 그 사람은 가슴에 한이 맺혔을 거여. 정권이 몇 번 바뀌었는데 쓰잘데기 없는 놈들은 다 나왔는데"라며 허탈해 했다.

그때 충남대 학생이었던 6월항쟁 주역들, 문용욱, 김명경, 조승래씨 등
그때 충남대 학생이었던 6월항쟁 주역들, 문용욱, 김명경, 조승래씨 등 ⓒ 장승현

층남대 85학번 문용욱씨는 6월항쟁 때 충남대에서 시위를 주도적으로 했는데 "6월 한달동안 목욕도 못하고 옷 한번 갈아입지 못했다"고 했다. 고인이 된 윤재영(충남대 총학생장)씨가 여장을 해 빠져나가던 일 등을 회고하며 그날을 되새겼다.

그때는 대전지역 84학번 총학생장 중심으로 지역에서 시위를 주도했다. 충남대 윤재영, 김승일, 배재대 강연석, 한남대 오재록 등이었는데 현재 윤재영, 강연석은 고인이 되어 20년된 기념식에 참여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시위에 앞장서 주도했던 시민 김정화씨
시위에 앞장서 주도했던 시민 김정화씨 ⓒ 장승현

그때 욕쟁이 아저씨로 야당생활을 했던 김정화 아저씨를 만났다. 항상 집회 때마다 앞에 나서 전경들한테 욕을 하고 학생들을 두둔하며 시위를 주도하던 일반시민이었다.

그때 활동하던 대전민청 회원들
그때 활동하던 대전민청 회원들 ⓒ 장승현

또한 화염병이나 폭력시위 때마다 중심에 서서 있던 고충환(45세)씨도 지금은 시골에서 아들 셋을 낳고 잘 살고 있다. 그때는 처음에는 어떨결에 학교 수위 아저씨의 짐자전거를 빌려 책가방에 신너와 휘발류를 사다 나르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 한남대 충학생장이며 충남애국학생청년연합 공동의장이었던 오재록씨(44세)는 대전의 6월항쟁이 전국을 주도하게 된 게 충남대생 7000여명이 유성을 뚫고 대전역까지 가두행진을 한 저력 때문이었다고 했다.

6월항쟁의 후예들
6월항쟁의 후예들 ⓒ 장승현

그 이후 서울에서 학생들이 시위가 시들해지자 서울에 있던 학생 지도부들이 대거 대전으로 내려와 시위를 하는 일도 벌여졌다고 했다.

"뒤에서 모르던 학생들이 제헌의회를 주장하고 그랬는데 그땐 참 생소했지요. 국민들은 오로지 독재타도, 호헌철폐라는 구호였는데 서울학생들이 참 생소했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종뉴스(www.sje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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