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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오는 사람들이 어른이건 애들이건 저마다 아궁이에 불을 때 보겠다고 다투어 나서지만 부엌을 연기통으로 만들고 눈물을 찔찔 짜곤 한다. 어머니 솜씨는 연기 한 줄기 안 내고 불길을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수준이었다.
큰 정지에 밥 앉혀 놓고 동시에 작은방 가마솥에 쇠죽 끓이던 이야기를 하셨다. 성냥 한 개비 아끼기 위해 불씨를 재로 묻어 두었다가 후후 불면서 불씨를 살려내는 이야기도 하셨다. 성냥을 한 통 사면 몇 년을 썼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어찌나 힘이 장산지 나무 한 짐 짊어지고 산에서 내려오면 발걸음 소리에 온 동네가 쿵쿵했고 나뭇짐이 커서 동네에 산 그림자가 생길 정도라고 했다. 한 짐 해다 부쳐놓으면 양 부엌에 한 달을 때고도 남았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뻥이 좀 들어간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어머니 표정이 저렇게 밝고 신명이 나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리 못 쓴다는 핑계에 어머니는 앉은 채로 물 떠 와라. 콩 삶겼는지 한 숟갈만 퍼 봐라. 안 눋게 주걱으로 휘휘 저어라. 빨래는 다 했느냐며 온갖 집안일을 챙기고 나섰다.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이 없었다. 내 계획에는 없던 일들이었다.
이것저것 잔소리가 많아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장작을 너무 잘게 패서 불땀이 없다고 야단을 쳤다. "내가 늙어각꼬 니 짐떵어리다"며 자조 섞인 한탄만 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저러다 또 한 건 하지 싶어서 분위기도 바꿀 겸 내가 한 마디 했다.
"어무이. 오줌 눌 때 안 됐어요? 오줌 좀 누러 가입시다."
"오줌? 여따 눠 삐리지 뭐."
"예?"
"불도 따끈따끈해서 싸도 잘 마르겠네 하하하하."
"안돼요. 여따 누면 안 돼요!"
"옷 빨드래도 내가 빠나 니가 빨지!"
우리 모자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예상에 없던 일이 또 생겼다. 삶긴 콩을 직접 봐야겠다며 솥뚜껑을 열고 당신을 일으켜 세우라는 것이었다. 불이 훨훨 타고 있는 아궁이 앞에서 어머니를 일으켜 세워 솥에 있는 콩을 직접 살피게 하느라 나는 진땀을 흘렸다.
네댓 시간동안 삶은 콩을 짚을 깐 대 소쿠리에 담아 아랫목에 묻은 지 5일 만에 꺼낼 때까지 어머니 세상이었다. 소쿠리를 다 덮지 말고 가운데에 숨구멍을 내서 김이 빠지게 하는 방식은 나도 새로 배우게 된 기술이었다.
바느질과 마당 텃밭에 물주기, 챙이질 하기, 가죽자반 만들기, 산 뽕 따다가 뽕차 만들기, 고추와 상추 모종에 물 뿌리기 등등 어머니에게 다양한 일거리를 제공하느라 내가 바빠졌다. 덕분에 어머니는 기분이 밝아지시고 밤에는 달게 잠을 주무셨다.(계속)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