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묵시록'은 신약성서의 제일 마지막 편이다. 예수의 12제자 중 한명인 사도 요한이 에게해의 밧모 섬에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한이 묵시록을 썼다는 동굴에는 지금 요한수도원이 세워져있고 많은 순례객들이 해마다 모이는 곳이다.
이 묵시록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배경으로 수많은 상징적인 숫자와 짐승이 등장하는 난해한 책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천 년의 기다림, 사탄의 등장,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전 예루살렘 등이 나온다.
여기서 천 년이 암시하는 시점은 언제일까. 예수가 탄생한 이후부터라면 서기 1000년, 예수가 죽은 이후부터라면 서기 1033년이 된다. 하지만 이 두 연도에는 묵시록에 언급된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극도로 종교적인 시대였던 중세 사람들은 이 시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로맹 사르두의 <13번째 마을>은 1284년 남프랑스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십자군 전쟁은 막바지에 다다랐고, 남프랑스에서 이단으로 몰린 카타르파가 괴멸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시점이다.
<13번째 마을>에 등장하는 한 수녀는 '천 년의 기다림'이 이제 곧 끝난다고 말한다. 그 시점은 바로 가톨릭교회가 승리한 때로부터 계산하면 된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가톨릭을 인정한 해는 서기 325년이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1325년이 된다. <13번째 마을>의 배경을 기준으로 한다면 약 40년 가량이 남은 셈이다. 40년 후에는 최후의 심판이 올까? 만일 오지 않는다면, 최후의 심판이 온 것처럼 연출하는 것은 어떨까?
작은 마을 드라강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상상만으로도 대담한 발상이다. 서커스나 마술처럼 객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평온하게 일상을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종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과 짐승 등의 물자가 기본적으로 동원되어야 한다. 거기에 더해서 종말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미리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종말이 다가오면 어떤 사람은 회개의 기도를 올릴 것이고, 다른 사람은 패닉 상태에 빠져서 인사불성이 될지 모른다. 또 어떤 사람은 재림한 예수에게 반쯤 미쳐서 무기를 들고 달려들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을 예측한다 하더라도, 가장 큰 문제가 남는다. '뒤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묵시록의 장면을 연출하고 나서 '이건 전부 쇼였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13번째 마을>이 시작되는 장소는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 드라강이다. 유난히도 추운 1284년의 겨울이다. 드라강 주교구의 사람들은 이 추위를 또 하나의 저주로 여긴다. 마을에 서있던 마리아 상은 추위와 눈보라에 꽁꽁 얼어 있다가 어느 날 산산조각이 난다.
조각난 마리아 상처럼 마을을 뒤흔드는 사건이 어느 날 발생한다. 이 성당의 아캥 주교에게 한 손님이 찾아온다. 아캥 주교는 이 손님과 단둘이 마주하지만 곧 그 손님은 사라지고 주교는 시체로 발견된다. 성당에 남은 보좌신부와 수사들은 혼란에 빠지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주교를 비난하며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캥 주교가 죽은 그날 밤, 드라강으로 에노 기 신부가 찾아온다. 그는 이 주교구의 잊혀진 마을, 저주받은 마을인 13번째 마을로 부임하기 위해서 온 인물이다. 그 13번째 마을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등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한술 더 떠서 그 마을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에노 기 신부와 그의 제자가 13번째 마을로 떠나가면서, 거의 동시에 드라강의 보좌신부도 주교의 시신을 끌고 파리로 향한다. 에노 기 신부는 13번째 마을에서, 보좌신부는 파리에서 각각 정체모를 이상한 일들을 연달아 접하게 된다. 어쩌면 이런 일들은 13번째 마을과 아캥 주교의 죽음을 둘러싼 바티칸의 음모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에 심취한 성직자들
중세의 가톨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라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장미의 이름>에서는 한 권의 책에 접근하는 사람들이 요한묵시록에 언급된 방법으로 차례차례 죽음을 맞는다. 그 책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편이다.
<13번째 마을>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문제의 인물로 등장한다. 이번에는 책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방법론이 문제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롭게 모든 것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만일 진리가 어떤 사물이나 존재 속에 감추어져 있다면, 인간에게는 그 안에 숨어 있는 비밀을 꿰뚫고 알아낼 힘과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지금으로서는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는 중세였다.
예를 들어서 생명이라는 신비한 대상을 연구하는 사람들, 또는 지구의 기원을 파헤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런 것들은 모두 창조주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이런 것들을 연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불경스러운 행위나 마찬가지다. 자연을 탐구하는 행위를 통해서 신의 전능함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역으로 창조주의 모순을 밝혀내는 방향으로 간다면?
<13번째 마을>에도 이런 인물들이 등장한다. 교황청에 속한 성직자들이지만 이들은 넘치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해서 조금씩 조금씩 금단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결국은 요한묵시록에 까지 접근해간다.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13번째 마을>의 원제목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이다. 주기도문의 한 구절이자, 작품에 등장하는 아캥 주교의 묘비명이기도 하다. 동시에 중세의 풍경을 짐작하게 하는 제목이기도 하다. 종교의 시대였던 중세에, 사람들은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온갖 일들을 행했다. 죄를 씻기 위해서 십자군에 자원하고, 면죄부를 사들이고, 성직자들과 어두운 거래를 하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묘사하는 중세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자식이 저지른 이단의 죄를 씻기 위해서 아버지는 교황청의 음모에 가담한다. 뱃사공은 싼 비용으로 배에 태워주는 조건으로 성직자에게 자신과 가족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요구한다. 장례 행렬을 이끄는 가족들은 거리에서 만난 수도사에게 망자에 대한 축성을 간곡히 부탁한다.
어쩌면 작품 속의 수녀가 말한 것처럼 '천 년의 기다림'이 끝나는 시점은 1325년이었는지도 모른다. 종말이 온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떨어진 것도 아니다. 다만 이때를 즈음해서 르네상스가 시작된다. 천 년에 걸친 교회의 억압이 끝나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가 터져 나온 시기이다. 천 년 동안의 어두움 속으로 한줄기 빛이 스며든 시기. 이제야말로 중세의 암흑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13번째 마을> 로맹 사르두 지음 / 이승재 옮김. 열린책들 펴냄.
로마 가톨릭을 둘러싼 역사미스터리 소설을 소개했던 [가톨릭 음모론]을 이번 편으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