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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발전을 거듭하던 내 요리솜씨가 이제 또 하나의 영역을 개척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은 부추전과 감자전에 머물러 있었는데, 오늘은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시는 장떡 만들기에 나섰다.
어머니가 그동안 해 오시던 소일거리 수준의 가사노동에서 도끼질로 획기적인 비약을 보이신 데 따른 동반상승현상이랄까? 나도 한 단계 비약을 시도한 것이다.
어제부터 어머니는 부엌문 앞에 갖다 놓고 손을 못 보고 있는 대나무 쳐낸 다발들을 보고는 "손도끼 어데 없냐? 저걸 봄시로도 맨날 그냥 넘어다니고 있어. 츳츳." 그러면서 당신이 해 보시겠다는 거였다.
나는 농담하는 줄 알았다. 밭에 나가서 풀을 매주겠다는 말을 여러 번 해 왔듯이 이번에는 메뉴를 달리 한 꿈같은 농담을 하는 줄 알고 무심코 넘겼다. 그런데 오늘도 그러시지 않는가. 너무도 실감나게 손도끼를 찾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무리하시는 거 아닐까아? 정말 도치 바탕 만들어 드리면 도끼질 하시겠어요?"
"하모. 하지. 그까직꺼 앉아서 하는 긴데 어때. 내가 살살 쪼사 죽께. 그라믄 불 때기도 좋고 비 오기 전에 들여 놔야제."
하다 못하면 그만두면 되지, 뭔 걱정.
나는 창고에서 가빠를 꺼내 왔다. 섬돌에서부터 마당까지 쫙 깔았다. 적당한 나무토막을 큰 도끼로 반을 딱 쪼개서 도치바탕을 만들고 손도끼를 꺼내러 가는데 벌써 어머니가 마루에서 섬돌로 내려서고 있었다. 등 뒤로 두 손을 뻗어 마루를 짚은 채 몸무게를 버티며 엉덩이를 섬돌에 내려놓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어? 어?" 하면서 달려와 붙들어 드리려고 했지만 어머니는 나를 쳐다보고 씽긋 웃고는 제2단계 관문 앞에 서셨다. 이번에는 섬돌에서 마당으로 내려가시는 고난도 관문이었다. 눈이 뗑그레진 나를 어머니는 본체만체하고 아주 상큼하게 2단계 관문을 통과했다.
내가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지금까지 엄살 부렸단 말씀?
어쨌든 어머니가 도끼질을 손쉽게 하실 수 있도록 각종 편의를 다 봐 드렸다. 미숫가루도 걸쭉하게 타서 드리고 그 귀한 보이차도 끓여 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이기요. 나 일 부려 먹으려고 자꾸 멕이네?" 하시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어머니는 도끼질하고 나는 노끈으로 다발 다발 묶어서 나무 칸에 옮겼다.
마음을 놔도 될 정도가 된다 싶어 논에 물 좀 보고 온다고 인사를 드리고 논에 갔다가 마침 옆에 있는 묵은 밭에 오돌개가 새까맣게 익었기에 뽕잎 큰 놈을 여러 장 깔고 담을 수 있는 만큼 따 왔다. 그리고는 장떡 굽기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일을 다 끝내고는 산야초 효소를 담으려고 이른 아침에 산에서 뜯어 온 산야초들을 뒤적이며 검불을 가려내고 있었다. 좀 쉬시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이기 무슨 일이라고 쉬긴 머하로 쉬어. 내가 한 창 일할 때는 너 업고 하루에 베를 두 필이나 짰다."
집 뒤에 제피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향이 얼마나 진한지 곁에만 가도 코를 자극했다. 제피 잎 몇 장을 따고 텃밭에서 부추를 가위로 잘라 왔다. 부침가루를 반죽하여 된장을 몇 숟갈 퍼 넣고 구웠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장떡이 이렇게 내 손에서 탄생되었다.
오돌개를 뽕잎에 올리고 장떡을 접시에 담아 새참을 올리니 우리 집 상 일꾼 어머니는 당당하게 잡수셨다.
"오늘 나 밥값 했제?"
"밥값 정도가 아니라 품삯 드려야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