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봄, 그들로 하여금 서울을 떠나 강원도 화천의 선이골로 삶의 터전을 옮기도록 한 것은 한 순간도 마음의 여유가 없이 늘 바쁘고 지치게 만드는 대도시에서의 고단한 삶이었다. 그러니 분명 선이골에서의 삶은 도피이며 은둔이었을 터인데, 그곳에서 몇 년을 살아가면서 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축복들이 우리를 위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화천 형제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축복은 나와 남편을 변화시켜 갔고, 해마다 우리의 '떠남'의 의미를 새롭게 해주었다. 우리는 왜 떠났는가? 우리는 왜 이곳에 있는가? 7년째 선이골 삶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만나기' 위해서 '떠났음'을 깨닫는다. 서울 삶에서 우리는 '하나되는 만남'에 배고프고 목말라 했음을 깨닫는다." (37~38쪽)
지은이는 이러한 삶을, 자신의 어머니 말씀을 빌어서 '하늘과 땅, 사람이 하나되는 삶'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셋 중에서 그들이 가장 먼저 만난 것은 하늘이었다. 선이골로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날마다 아침 일찍 갖가지 새소리에 잠을 깨 동틀 무렵에 유난히도 아름답게 노래 부르는 새들과 하루 중 그때 가장 맑고 선명하게 피어난 들풀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고 경건하게 아침을 맞이하는 자세야말로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들의 당연한 삶의 몸짓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후 선이골 일곱 식구들은 새날을 맞이하는 기쁨과 소망과 다짐을 노래와 기도와 말씀으로 서로 나누는 아침맞이 의식을 행함으로써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눈뜨자마자 출근 준비와 등교 준비로 정신없이 서두르느라 아침 시간이 마치 전쟁터 같은 우리의 삶과는 얼마나 다른 모습인가! 사춘기에 접어드는 딸아이를 가르칠 목적으로 주말마다 가족회의는 해봤어도 아침맞이 의식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우리의 희망이고 날마다 새로 시작되는 삶'이라는 선이골 일곱 식구의 아침맞이가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다.
하늘과 만나 하나되기 위한 이들의 소망은, 도시에서는 좀처럼 느끼지 못했던 계절을 선이골에서 들어와 살면서 생생하게 느끼게 되면서, 철맞이로까지 이어진다. 입춘과 입하 등 절기에 맞추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나름대로의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인간도 대자연의 일부이니, 우주의 춤이며 하늘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부르는 우주의 대합창인 계절의 운행에 맞추어 함께 춤추고 노래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하늘에 이어서 만난 땅과의 하나됨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 두 해 동안에는 선이골의 숲에서 온갖 산나물들을 따다가 먹었지만 그들의 입맛이 그 천연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선이골 3년째에 본격적으로 논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경험한 절망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 동안 머리로 일하는 것을 배웠고, 그들은 몸으로 일하는 것을 배웠다. 지금껏 살아온 환경과 전혀 다른 환경에 처하고 보니 내 몸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내 머리는 뒤죽박죽 전쟁을 치르느라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슬펐다. 논농사를 짓지 못하여 배고픈 것보다 내 이런 거품 인생이 너무 슬펐다. 내 몸에서 쌀 냄새가 아니라 돈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슬펐다. 나의 어머니가 먹는 밥과 내가 먹는 밥도 다른 것이었다. 어머니는 쌀을 알고 밥을 아는 몸으로 밥을 먹었고, 나는 쌀도 밥도 모르는 몸으로 단지 먹을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먹어댔던 것이다. 40년 넘도록 세상의 지식과 지혜를 얻고자 발버둥쳐 왔지만 이 가공할 무지 앞에 오히려 공포를 느꼈다." (80쪽)
이러한 절망감을 그들이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이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준 아랫마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험한 산골짜기에 포클레인을 가지고 올라와 논을 만들고 손수 모내기도 도와주고 벼농사 지식도 가르쳐주는 등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서울 생활을 하는 동안 저절로 몸에 밴 피해의식과 익명성, 오직 나만의 노력으로 이루는 삶의 방식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지은이는 이러한 이웃들의 도움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너무 신세를 진다는 생각, 도움을 받은 만큼 내 쪽에서도 줘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긴장감 등 때문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뭘 바라는 것이 있어서 그렇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들의 몸에 밴 삶의 방식이기에 그렇게 도와주는 것임을 깨닫게 되면서, 지은이는 마침내 자신의 집 문도 활짝 열어놓고 살게 된다. 서로서로 사돈에 팔촌으로, 동네로, 삶으로 맺어져 있는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생애 처음으로 실감하는 동포이고 겨레였던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특히 그들이 나들이 삼아 화천 5일장에 자주 다니면서 더욱 굳건해진다. 장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베풀어주는 아무 조건 없는 따스한 인정은, 그들 마음속에 아직도 남아 있는 물건에 대한 욕심과 이기심을 들여다보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경전 공부로 어찌어찌 하늘의 뜻을 알 것도 같았고, 유기농, 자연농의 농사짓기로 어찌어찌 땅과 하나될 것 같기도 했지만, 사람과 사람이 하나됨은 너무나 어렵고 막막했다. 그러던 내가 이곳 선이골에 살면서 알게 된 것은 하늘과 하나됨, 땅과 하나됨은 바로 이웃과 하나됨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226쪽)
지은이의 말을 빌리자면 '내 안으로의 길고 험한 순례'를 걸쳐 마침내 도달한 이러한 깨달음에는 과장이나 거짓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사건 발생 이후 이틀이나 늦게, 그것도 장터에서 우연히 신문을 보고 알게 된 9·11 사건으로 받은 충격을 토로한 다음의 글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우리의 이웃이 겪는 고통을 우리만 피해 보고자 선이골로 온 것은 아니었다. 하늘이 인간에게 정해 주신 길을 나 몰라라 하고 산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9·11 사건은 "너희는 어디에 있느냐? 무얼 하고 있느냐?"며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질문을 해대는 것 같았다. 전기도 전화도 자동차도 인터넷도 인가도 없는 선이골이지만, 서울에서 살 때보다 시대에 대해, 인류와 이웃에 대해, 자신에 대해 더욱 민감해진 우리에게 9·11 사건은 우리 내면의 적대감과 증오와 안일을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세계의 부와 지식과 권력의 상징이라는 무역센터의 삶과는 정반대인 선이골에 있지만, 우리의 잠재 의식 깊은 곳엔 110층 무역센터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73쪽)
이처럼 도시에 사는 우리들보다 더 투철한 역사의식을 보이고 있는 이들의 삶이 어찌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이며 자연으로의 은둔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인터넷도 전화도 안 되는 오지에 살고 있지만 어찌 세상과 고립되어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3.
안타깝게도 <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의 지은이 김용희씨는 지난해 1월 오래 앓던 병인 산후통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언론매체를 통하여 그녀의 사망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지만, 그녀가 자연주의자 흉내를 너무 무모하고 지나치게 내다가 그렇게 어이없는 죽음을 맞은 것이라고 비아냥거린 사람들도 일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의 태어남, 자라남, 질병, 그리고 죽음조차도 우리 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늘의 사랑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녀로서는, 병을 치료할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하늘의 부름을 받고 돌아갈 때가 되었기에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을 것이다.
또한 그녀의 죽음도 죽음이지만 이제 엄마를 잃고 살아갈 다섯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에 대해서도 참으로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과 다섯 아이들은 선이골에서 계속 살아가기로 결정을 했고 아마도 지금도 여전히 선이골 외딴집 '하늘맞이 배움터'에서 매일 아침맞이를 하고 그들을 둘러싼 자연 세계를 교과서 삼아 삶을 배우고 익히고 있을 것이다.
'바람 속에서 크는 나무가 뿌리가 깊어진다'고 쓴 그녀의 글처럼, 선목, 주목, 일목, 화목, 원목 이렇게 선이골의 다섯 그루 어린 나무들은 제도권 교육을 받고 자라난 아이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깊고 튼튼한 뿌리를 마음속에 품으며 어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평소 가르침처럼, '사고 팔리지 않는 사람, 삶'을 살아가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의 이러한 가르침은 "영혼에게 필요한 단 한 가지의 필수품을 사는 데는 돈이 필요없다"고 말한 바 있는 소로우의 사상과도 통한다. 그러고 보니, 이 두 사람의 삶은 자연 속에서 삶을 살아간 것뿐만 아니라 대단치 않은 병이 악화되어 죽은 것이나 죽었을 때 나이가 둘 다 45세의 젊은 나이였다는 것까지도 참 많이 닮았다.
고3 때 소로우의 <월든>을 읽고 감명을 받아 학교를 그만두고 독학으로 공부를 하기도 했던 그녀이고 보면, 소로우와 공유하고 있는 것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어쩌면 지극히 당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미국 월든 호숫가에 소로우가 있다면 한국에는 선이골의 김용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전혀 과장이 아니리라. <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는 한국인이 다시 쓴 우리 시대의 <월든>이다.
덧붙이는 글 | <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
ㅇ 김용희 지음
ㅇ 임종진 사진 찍음
ㅇ 도서출판 샨티 펴냄
ㅇ 2004년 9월 5일 초판 3쇄
ㅇ 값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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