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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후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열린 정책비전대회에 참석한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지난 8일 오후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열린 정책비전대회에 참석한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 사진공동취재단

언론의 분석은 똑같다. 경선후보 등록으로 "퇴로 없는 승부"는 현실이 됐으나 "아름다운 경선"이 될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상식적인 분석이다. 이명박-박근혜 두 대선주자 간에 전개되는 검증공방을 보면서 "아름다운 경선"을 전망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도 여지는 남아있다. 과정이 치열하더라도 결과가 깨끗하면 된다. 패배자가 경선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선거운동에 협조하면 "아름다운 경선"이 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예상할 수 없다. 똑같은 이유다. 검증이 문제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어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불평을 쏟아냈다. "우리는 본선에서 이기기 위해 경선을 하는 것이지, 경선만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다"고 했다.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의미한 말이다. 본선에 나가려면 예선을 통과해야 한다. 예선이 리그전이라면 체력을 비축하며 경기력의 완급을 조절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토너먼트다. 한번 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예선이 곧 본선이다.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건 당연하다. 검증공세는 필연이다.

'검증'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중앙일보>가 눈길을 끄는 여론조사결과를 내놨다. 한나라당 대의원 14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공략 가능한 대의원은 10% 정도 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나왔다.

지지후보를 묻는 질문에 '지지자 없음-무응답' 비율이 3월 16.8%에서 6월 10.3%로 줄었다. 8월 경선 때까지 현재의 지지후보를 계속 지지하겠다는 충성도가 이명박 88.7% 박근혜 89.9%였다.

당심은 '레드 오션'이다. 투자 대비 순이익률이 낮다. 부가가치가 높은 민심을 파고드는 건 최선이자 어쩔 수 없는 전략이다. '정권 탈환' 열망이 당심의 전략투표 성향을 부채질 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민심의 추이에 당심을 맞추는 투표다.

검증은 '블루 오션'인 민심을 파고들 수 있는 최고의 상품이다. 이걸 포기할 리가 없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검증할 게 있으면 검증위원회를 거치라고 호소하지만 약발이 먹힐 것 같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오션'에 내놔야 할 상품을 '쇼윈도'에 가둬둘 이유가 없다.

게다가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율은 하락 추세인 반면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은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돛에 순풍이 불고 있는데 닻을 내릴 수는 없다.

브레이크는 이미 풀렸다. 검증을 제어하기는 힘들다. 관심사는 하나다. 브레이크 없는 검증이 뭘 들이받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경선은 '퇴로 없는 승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는 11일 오후 염창동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경선 출마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모임인 'MB연대' 대표가 민생과 경제를 살리자는 뜻으로 화분을 선물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는 11일 오후 염창동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경선 출마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모임인 'MB연대' 대표가 민생과 경제를 살리자는 뜻으로 화분을 선물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목표물을 암시하는 장면이 연출된 바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의 핵심측근인 정두언 의원이 공천권을 거론한 바가 있다. 이른바 '이명박 X파일'을 거론한 곽성문·'성접대 의혹'에 해명을 요구한 이혜훈 의원을 향해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파문이 일자 뒤늦게 '피선거권 박탈'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고 한 발 물러섰지만 그건 공식 해명일 뿐이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들이 공식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까?

'본선 같은 예선'은 이명박-박근혜 두 대선주자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이 두 사람에게 정치적 생명을 신탁한 캠프 인사들에게도 경선은 "퇴로 없는 승부"다.

한나라당 안에서는 경선 패배자가 일정한 지분을 챙기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는 방안을 '당 통합'의 최고 대안으로 거론하고 있다지만 이는 말 그대로 가상의 최고치다.

지분 약속이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한국 정치사가 그걸 증명한다. 심지어 문서로 약속한 것까지 원천무효화한 전례도 있다. 설령 지분 약속이 지켜진다 해도 실익은 크지 않다. 경선 승자가 대통령이 되면 납작 엎드려야 한다. 지분을 챙겨 계파를 유지한다 해도 숨 쉴 공간은 넓지 않다.

'사보타지' 또는 '분가' 시나리오가 나오는 이유가 이것이다. 멀리 있는 적보다 가까이 있는 경쟁자가 더 무서운 법이다. 그럴 바에는 경쟁자의 힘을 빼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선거운동을 사보타지하는 것이다.

세대원이 아니라 세대주가 되면 주택청약예금이라도 들 수 있다. 서자 취급을 받느니 딴살림 차려 가족의 결속을 다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딴살림을 차리는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이 경선후보로 등록을 함으로써 퇴로가 없어진 건 맞다. 그렇다고 길이 모두 끊긴 건 아니다. 퇴로에도 두 종류가 있다. 철군로가 있고 도주로가 있다.

그래서일까? 검증공방을 지켜보는 범여권의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다. 오히려 한발 슬쩍 걸치고 공방의 열기를 끌어올리기도 한다.

한나라당 경선이 이전투구로 간다면...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는 11일 오전 염창동 한나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박근혜 후보가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당사에 들어서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는 11일 오전 염창동 한나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박근혜 후보가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당사에 들어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계산법은 뻔하다. 검증 대상은 이명박 전 시장이다. 2002년 대선 때의 '노무현 지지표' 상당수를 끌어간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검증대 위에 섰다. 범여권으로선 '과거의 지지표'를 되찾을 수 있는 전기다.

이명박 전 시장측이 검증 공세에 맞대응하기 위해 이른바 '박근혜 X파일'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한나라당 경선이 이전투구로 간다면 누가 본선에 오르든 만신창이 상태로 경기에 나서게 된다. 범여권으로선 점수를 미리 챙기고 경기에 나서는 셈이다.

마지막 펀치만 날리면 된다. 한나라당이 스스로 선거운동 모델로 검증을 정립했으니 그냥 따르는 게 효율적일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범여권이다. 검증자료가 많으면 많았지 모자랄 리는 없다.

하지만 분명히 해두자. 이것 또한 가상 상황이다. 예선에서 체력을 비축하고 본선에 오른 경우를 가정한 상황이다. 그래서 공허하다.

범여권의 상황은 한나라당보다 더 지리멸렬하다. 한나라당은 그래도 경기장을 만들고 주심까지 올렸다. 범여권은 아니다. 예선이 축구로 치러질지 권투로 치러질지조차 묘연한 상황이다.

지금은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이 미소가 될지 '썩소'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통합의 '판'과 '시기'에 따라 웃음의 종류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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