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가나에 있는 첫 번째 기적 기념교회를 둘러본 우리 일행들이 다음에 찾아간 곳은 나사렛에 있는 마리아 수태고지 기념교회였다. 나사렛(Nazerat)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91km, 갈릴리호수에서 남서쪽으로 19km, 첫 번째 기적 기념교회가 있는 가나에서는 남쪽으로 13km 지점에 있는 인구 5만여 명의 작은 도시였다.
가나를 출발한 버스는 잠깐 달려 나사렛 시내에 들어섰다. 나사렛 시내는 가나와는 달리 교통이 상당히 복잡했다. 인구 5만의 작은 도시답지 않게 거리는 많은 차량과 사람들로 붐볐다.
"저 앞의 언덕 위를 보십시오. 돔형 지붕위에 높은 탑이 보이지요, 저 곳이 바로 수태고지 기념교회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잠깐 걷다가 가이드 서 선생이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언덕을 가리킨다. 그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돔형 지붕과 뾰족한 탑이 눈길을 끌었다.
수태고지 기념교회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고 가르쳐준 곳에 세운 교회였다.
"우선 점심을 들고 교회로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전화번호를 잊어버려 예약을 하지 못했는데 점심을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예약을 하지 않았다니. 그럼 점심도 제대로 먹을 수 없단 말인가? 그러나 교회로 가는 언덕길을 잠깐 걸어 올라간 골목길 안쪽에 있는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아랍인 주인이 반색을 한다. 20여명의 손님은 그들이 결코 소홀히 생각할 수 없는 인원이었던 모양이다.
정말 예약을 하지 않았던 듯, 음식주문을 받으며 약간 곤혹스런 표정으로 망설이던 주인은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미안한 기색을 보이고는 곧 주방에 지시를 하는 것이었다. 식당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상당히 붐비고 있었지만 곧 우리들에게도 넉넉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식당이름은 홀리랜드 레스토랑이었다. 4층 건물의 1층에 자리 잡은 식당의 내부는 마치 동굴처럼 꾸며져 있었다. 창문이 한쪽에만 설치되어 있어서 한낮인데도 어두워 전등불을 밝히고 있었는데 벽에는 그들의 조상들이 사용했음직한 농기구와 생활도구들이 걸려 있었다. 우리나라의 여느 식당 안 장식을 떠올리게 했다.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음식은 상당히 빨리 나왔다. 역시 현지 음식이다. 우리 입맛에 맞지 않은 향료 때문에 몇 사람은 고개를 모로 돌리고 먹지 못한다. 그들은 준비해간 누룽지를 뜨거운 물에 불려 점심 대신 먹었다. 식성이 까다로운 사람들은 해외여행에서 음식 때문에 고생을 한다.
"이건 괜찮을 것입니다. 곧 스파게티가 나올 텐데 이 식당의 스파게티 맛은 이 도시에서 최고라고 소문난 음식입니다."
가이드의 말대로 곧 스파게티가 나왔다. 그러나 맛은 그의 말과는 달리 대단할 것이 전혀 없는 평범한, 아니 그 이하의 맛이어서 실망스러웠을 뿐이었다.
점심을 대충 먹고 밖으로 나왔다. 그 때 한 때의 어린이들이 골목 안쪽에서 쏟아져 나왔다. 골목 안쪽에 학교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어린이들이 여간 맹랑한 모습이 아니었다. 저희들끼리 장난을 치며 뛰어 나온 녀석들은 우리 일행들에게 거침없이 말을 걸었다.
"헬로우(Hello)!"
"하우두유두(How do you do)?"
"웨어아유프럼(Where are you from)?"
소년들이 짧은 영어로 장난스럽게 인사를 한다. 녀석들은 외국인인 우리 일행들에게 전혀 낯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랍인 소년들이었다. 소년들이 재롱이라도 부리듯 장난을 치는 게 여간 천진스런 모습이 아니었다.
"위아코리언(We are Korean)."
여성 일행 한명이 녀석들이 귀여운 듯 웃으며 말을 받아주자 이번에는 아예 일행들의 팔짱을 끼며 사진을 찍으라고 손짓을 한다. 그렇게 몇 컷의 사진을 찍은 녀석들은 또 그렇게 장난을 치며 순식간에 골목 밖으로 사라졌다.
"허! 그 녀석들 참 맹랑하고 귀여운 녀석들이네."
남성 일행들도 녀석들에게 감탄을 한다. 그 사이 일행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식당은 주택가 좁은 골목 안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우리들의 입맛과는 달리 상당히 유명한 식당인 듯 현지인 손님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거리에도 역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수태고지교회는 조용한 모습이다. 언덕에는 수태고지교회와 함께 성 요셉교회도 있었다. 성 요셉교회는 예수의 아버지인 목수 요셉의 작업장이 있던 곳에 세워진 교회다.
이들 교회에서는 현재 200여 명의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유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교회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었다. 교회 안은 상당히 넓고 모자이크 장식도 있었는데 특히 천정의 둥근 탑의 안쪽모습이 아주 이색적이었다.
특별히 눈길을 끈 것은 교회입구 긴 회랑의 벽에 결려 있는 그림과 글들이었다. 회랑의 벽에는 세계 각국 가톨릭 교회들이 만들어 부착한 아기예수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경의를 표하는 그림과 글들이 즐비하게 부착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한국 가톨릭교회가 만들어 붙여놓은 한복을 입은 어머니와 색동옷을 입은 아기도 있었다.
"우와!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기예수가 참 예쁘네요."
가르마가 반듯하게 쪽진 머리에 한복을 입은 마리아가 고운 색동저고리를 입고 있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그림 밑에는 '평화의 모후여 하례하나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 그림과 글은 안마당의 회랑에도 이어지고 있었는데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만든 그림에는 검은 얼굴의 어머니와 아기예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림은 백인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교회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자 교회와 교회 사이 넓은 계단 옆 화단 앞에 가브리엘 천사와 마리아상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는데 그리 어울리지 않았다. 이곳에는 서기 365년부터 5개의 교회가 연속적으로 세워졌다.
첫 번째 교회는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가 세웠다. 이곳은 기독교의 예배가 행해지던 갈릴리지역에서 첫 번째 장소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4세기 말에는 비잔틴문화에 의한 새로운 교회가 세워졌으며, 12세기에는 십자군에 의하여 다른 교회들과 함께 철거되었고, 또 다른 모습으로 세워져 15세기에 이르렀다.
그 후 17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성 프란체스코회의 차례가 되었다. 그 프란체스코회는 15세기 중반에 무너져버린 교회를 다시 세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55년에 그 교회를 철거하고 역시 프란체스코회가 현재의 교회를 세운 것이다.
이 교회와 나사렛은 예수의 생애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나사렛은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예수가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에 갔다가 돌아와 30년 동안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 나사렛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역사를 갖고 있다.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의 각축장이었고 후에는 로마에 의하여 점령당한 식민지였다. 그 후에도 아랍인들이 터를 잡고 살았으며 11세기말에는 십자군이 점령해 갈릴리 행정의 중심부이자 가톨릭대주교가 있는 곳으로 찬란한 기독교문화를 꽃피우기도 했다.
그러나 13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다시 아랍에 의하여 철저히 파괴되었다. 지금의 나사렛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다양한 건축물이 지어져 있다.
마리아 수태고지교회와 성 요셉교회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언덕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도 다양했다. 저들도 아마 대부분 유대교와 이슬람교도들일 것이다, 그들 중에 소수의 기독교인들도 섞여 있을 것이고. 2월은 이곳도 겨울이다. 그러나 모처럼 따뜻한 햇살 때문이었을까? 만나는 사람들의 복장도 얼굴표정도 평화롭고 포근한 모습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