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10월, 졸업을 1년 앞둔 최용신은 학업을 중단하고 농촌운동에 전념할 것을 결정하고 경기도 수원 근교의 천곡(泉谷, 일명 샘골)으로 내려갔다.…찾아다닌 결과 한명의 지주(염석주)를 만났다. 그는 정미업과 목축업을 하는 이로서 단순한 시골의 지주가 아니라 삼일남학교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인 1925년부터 매년 100원씩을 기부한 자선사업가이기도 했다.
최용신은 인사를 나눈 다음 '염 선생님, 짐승을 기르는 것도 좋습니다만 그보다 사람을 기르는 사업을 해보지 않으시렵니까?'하고 물으니 그는 한참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예,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하고 대답을 하였다. 그 후 몇 번을 더 만나서 설득을 시켜 천곡학원의 이사장이 되어 많은 공헌을 하게 되었다."
-최홍규 '염석주가 활동한 수원지방의 신간회' 중에서
이 글에서 나온 천곡은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샘골마을. 최용신과 염석주는 둘 다 안산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그러나 <상록수>의 주인공은 최용신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를 후원하고 여운형과 함께 신간회 활동을 한 염석주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안산시사 상권 421쪽에 1페이지 가량의 소개가 간단하게 나와 있을 뿐 그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안산시 본오동에 소재한 노인정보화교육원 '은빛둥지'가 최근 염석주의 흔적을 찾아 나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은빛둥지'는 최근 여성가족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할머니도 할 수 있다'라는 사업 동영상반을 만들었고, '은빛 미디어'라는 예쁜 이름을 붙였다. 60~70대 할머니 15명은 모두 카메라맨이고 모두 사장이 되는 노인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8개월간 카메라 교육 받은 '할머니 군단'
'은빛 미디어' 예비사장 할머니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분주하다. 갈 곳이 없어 경로당에서 하루를 무료하게 화투로 보내는 다른 노인들과는 달리 그날의 계획이 시나리오처럼 정확히 기재된 계획표에 따라서 하루를 보낸다.
노인들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노인들의 손으로 만들어 모든 이들에게 알리고자 '은빛 미디어'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 첫번째 사업으로 할머니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모든 것을 불사른 잊혀진 영웅 염석주를 재조명하기로 했다. 독립운동을 했던 그의 행적을 재정리해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당찬 사업이다.
염석주는 1895년 수원군 일형면 율전리 366(현재 성균관대학 근처)의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을 수학한 인텔리로, 고향과 다름없는 안산 '막고지'(현재 사동)에서 거처하면서 상록수 최용신 선생의 농촌 사업을 후원했다.
그는 만주 길림성에 60만평의 농장을 마련하여 독립군 제2지대(김창환 장군)에 군량미를 조달하며, 상해임시정부로 경비를 보내는 해외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또한 염석주는 신간회 수원지역 책임자로 활동하고 여운형 등 동지들과 협력하며 국내활동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이러한 행적들은 현지에서 은밀히 내사를 해온 '오야마'란 고등계 형사에게 꼬리가 밟히고 1944년 4월 동대문경찰서에 검거되어 18일간의 모진 고문 끝에 통한의 생을 마감하고 만다.
해방 후 이승만 정권 하에서 신간회에 참여한 인사들은 좌경으로 낙인 찍혀, 당시 생존한 분들은 공식 활동을 제약당하고, 순국한 애국지사들은 독립운동가의 반열에서 제외되는 불운을 겪었다.
사회 소외계층으로 남아있던 이 분들의 2세와 가족들은 사회의 냉대와 가난 속에 살았다. 고인을 독립운동가로 인정받도록 하기 위한 투쟁을 하기는커녕 숨어살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생존한 것으로 알려진 염석주의 차남은 현재 종적을 감추어 만날 수조차 없는 실정이다.
'은빛미디어' 할머니들...최용신 선생 제자도 찾아 나서
'은빛미디어' 할머니들 대부분은 안산이 고향이라 어려서부터 듣고 보아온 '염석주'에 대한 자신들의 기억을 되살려 작년부터 내용들을 정리하기 시작하였으며, 좀더 확실한 증언을 할 지방 노인들과 단체를 찾아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파주염씨 종친회장이며 염씨수원종친회 회장인 염규태(91)씨는 염석주의 15촌 생질이다. 염석주가 만주에 설립하고 운영한 추공농장(秋公農場)에서 12~16세까지 4년간 머무른 경험이 있는 분으로 당시 농장 상황을 증언할 유일한 국내증인이다. 염 회장과의 인터뷰는 2차례에 걸쳐 카메라에 담았다.
직접 증언 외에도 상록수 최용신 선생님 제자들의 증언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다. 최용신 선생의 제자 송창건(현재 안산 일동, 84) 선생과의 인터뷰 등 염석주와 관련된 생존인 또는 자료라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용을 담기 위해 '은빛미디어' 할머니들은 카메라를 메고 나선다.
할머니들은 염석주에 대한 기록 자료를 찾기 위하여 국가보훈처, 정부기록보존소, 국립도서관 및 국회도서관에 각종 자료를 뒤지고 고등경찰요사, 신문자료 등도 샅샅이 훑었다. 여기에 온라인 자료까지 검색하는 데 15명의 예비사장 할머니들은 눈코 뜰 사이가 없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염석주를 찾아서>는 현재 20시간 정도 분량으로 기록을 모았으며, 오는 8월 염석주의 추공농장이 있었던 중국 길림성 오가자현으로 현지 촬영을 떠날 예정이다.
추공농장에 근무하다가 길림성에 머물러 살고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하여 인터뷰를 할 것이며, 독립군 제2지대와의 관계 등을 좀더 생생한 증언으로 밝혀낼 것이다. 또한 농장이 있었던 곳의 법적 소유 문제를 따져보고, 중국정부에 기념비 제작을 건의할 예정이다. 오는 10월까지 모든 자료는 재검증을 거쳐 편집을 하며 연말에는 염석주에 관한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탄생될 예정이다.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는 우선 안산시민을 위한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다.
'은빛미디어'를 이끄는 강희정(77) 단장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염석주의 행적을 밝히지 못하면 이젠 누구도 모르고 영원히 잊혀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영웅을 우리는 그냥 두고 지나칠 수 없습니다, 동영상이 세인들에게 가장 호소력이 있는만큼 우리가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설명을 하며 자신들이 결정한 사업에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
좌다 우다 하여 기회주의자들에게 의하여 얼마나 많은 애국지사들이 잊혀지고 지나쳐 버렸는가? 그런 상황에서 '은빛미디어' 할머니들의 작업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은빛미디어'가 1년 넘게 제작해온 다큐멘터리 <염석주를 찾아서>가 세간에 화제를 뿌릴 그날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나영수(68) 기자는 현재 노인컴퓨터중앙교육원(일명 은빛둥지) 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