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촛불문화제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부분 "주한미군의 범죄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줄어들지 않았음에도 효순·미선이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많이 줄어 아쉽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대학생 신엘라(25)씨는 효순·미선이의 참혹한 사고를 추모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당시의 기억을 회상했습니다. 신씨는 교복을 입고 온몸에 은색 스프레이를 뿌렸습니다. 이날 맡은 역할은 '미선'이었습니다. 신씨는 사고 당시 미선이의 신발이 벗겨지는 퍼포먼스를 연습한 뒤 "가슴이 떨리는 동시에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우람(남·25)씨는 "매주 수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함께 분노했다"고 회상하면서 "그 때나 지금이나 한·미간 불평등 관계가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효순·미선 사건을 점점 잊어가는 듯 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이씨와 대화를 나누던 중 "여러분은 촛불문화제가 아니라 불법집회를 하고 있다, 해산하라"는 경찰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울렸습니다. 5년 전 광화문 촛불 집회 초기에 흔히 들었던 얘기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경찰 버스는 이미 청계광장을 에워쌓더군요.
이에 이씨는 "대체 어느 나라 경찰인지 모르겠다"며 "5년 전에도 시민들을 때리고 행진을 막았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내뱉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당시 효순·미선 사건에 분노한 사람들이 뽑아준 대통령"이라면서도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에 국군을 파견하고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을 강행하는 등 지지세력을 우롱했다"고 성토했습니다.
"국민 함성 끌어내는 것이 산 자의 몫"
김승호(52)씨는 효순·미선의 사고에 대해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한창 배울 나이의 학생들이 하교길에 죽었다는 건 비극적인 사건"이라면서 "하루 빨리 남북이 화합·공존하는 시대를 여는 게 남은 자들의 몫"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배곤씨는 2002년 당시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으로 효순·미선 집회의 사회를 주로 맡았다고 합니다. 그가 기억하는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눈이 오는 날 두 아이를 데리고 광화문에 나선 한 어머니였다고 합니다.
"모든 국민들의 마음은 그 어머니처럼 효순·미선이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분들을 보며 용기와 지혜를 얻어 연간 집회 참석 인원 500만명이라는 엄청난 힘을 끌어낸 것이죠."
김씨의 회상입니다. 그는 또 "노 대통령은 불합리한 한·미 관계를 바로잡겠다 했지만 평택 미군기지 확장 문제에서 드러나듯 불행한 현실은 계속되고 있다"면서 "5년 전 국민들의 함성을 앞으로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가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참석한 시민은 700여명 정도. 5년 전에 비할 때 턱없이 적은 수이지만, 그 때 참석했던 수많은 시민들의 가슴 속에는 아마도 효순·미선 사건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함께 나누면서 기쁨으로 승화시킨 '광화문 촛불'의 기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