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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창태 사장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운영진이 서울 용산 서울문화사 앞에서 "시사저널을 독자 품으로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금창태 사장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운영진이 서울 용산 서울문화사 앞에서 "시사저널을 독자 품으로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 다음해, 다시 <시사저널>을 읽는다. '고재열'이란 이름을 머리에 입력시킨다. 여러 언론들이 대학가의 '과격시위'를 비판할 때, 그는 이색적이고 기발한 여러 대학생들의 시위방법을 소개하며 '희망의 증거'라고 규정한다. 대학 학보사의 수습기자인 나는 <시사저널>의 이 기사를 보고 기성언론들에도 '희망'이 있다는 '증거'를 발견한다.

젊음이 끓어오르는 시기, <시사저널>은 종종 내 치기 어린 행동의 원인이 된다. '4·10 부평사태'를 크게 보도한 <시사저널>을 보고 분노해 소소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채팅방에서 대우차 노조원들의 피투성이 사진을 올리며 열변을 토하다가 결국 '강퇴' 당하는 내가 '조중동'에게 날선 비판을 가하는 <시사저널>을 외우다시피 했지만 '안티조선' 1인 시위 중 한 할아버지의 비판을 받고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던 내가, 거기 있다.

또다시 <시사저널>을 읽는다. 이문재 기자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인터뷰도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느낀다. 2002년, 수강하고 있는 한 수업에서 강사가 '시월'이란 시를 추천해준다. 시인 이름이 낯설지 않다. 역시 '그 이문재'다. 그 후로 10월이 되면 난 항상 '시월'을 읽는다.

2002년의 <시사저널>에서는 내게 낯익은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청소년 투표권 운동을 벌이던 준표형(한국외대 박준표)도, 대학생 선거참여 홍보 포스터의 모델이 된 동기 혜진이(홍익대 전혜진)도 <시사저널>에 실린다. 알량한 나는, 입을 쭉 빼고 나도 <시사저널>에 실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대책 없는 명예욕을 부리는 나는 하지만 <시사저널>이 2002년 올해의 인물로 '행동하는 네티즌'을 선정했을 때 다시 고마워진다. 그래, 이 속에 나도 있었지. 같이 촛불을 들고 있었잖아. 기사를 읽으며 그 순간을 다시 기억하는 내가, 거기 있다.

그리고 <시사저널>을 읽는다. '해운대 24시' 기사를 보고 그 발랄한 형식에 놀라워한다. 이 형식을 따라서 기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고즈넉해진다. '사정상' 휴학한 2003년의 나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일부러 문화면을 자주 본다. <시사저널>이 '선택한' 영화들을 따라서 본다. <붉은 돼지>와 <올드보이>의 영화평을 읽은 후에 그 치밀한 분석을 질투한다. 크레딧에는 '노순동'이라는 이름이 적혀져 있다. 이 아저씨(!)처럼만 영화를 보는 눈을 가지기를 소망하는 내가, 거기 있다.

그래서 <시사저널>을 읽는다. 서울 생활을 접고 내려온 집에서 고맙게도 <시사저널>을 정기구독하고 있다. 2004년 총선, 고종석의 칼럼을 읽은 후 민노당을 찍은 나는 집에서 <시사저널> 지난 호를 뒤적인다. 다음날이 입대일이다. 한숨을 쉬며 지난 잡지들을 뒤적이다 서명숙의 마지막 편집장 칼럼을 발견한다. '기자가 되고 싶다는 후배에게'. 읽고 또 읽고 또 읽는다. 당신과 같이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는 내가, 거기 있다.

몰아서 <시사저널>을 읽는다. 군대는 <시사저널>을 볼 여유를 허락해주지 않는다. 길지 않은 휴가 동안 적어도 하루는 집에 쌓여 있는 <시사저널>을 탐독한다. 문정우 편집장의 다분히 자기고백적인 칼럼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조갑제의 이적행위'를 비꼬는 칼럼을 읽고는 혼자 깔깔대는 내가, 거기 있다.

2006년의 나는 <시사저널>을 읽기보다 <시사저널>에 관한 기사를 더 많이 찾는다. '삼성기사 삭제사건'이 일어난 사실을 <한겨레21>과 <미디어오늘>을 통해 전해들은 후부터다. 고종석의 말처럼, 나도 이윤삼 편집장의 편지를 다시 보기를 바란다. 여러 인터넷 언론을 돌아다니며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뉴스를 구한다.

기자들에게 무더기로 징계가 가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 와중에 <시사저널> 경영진이 <중앙일보> 계열사와 콘텐츠 제휴를 체결했다는 뉴스도 보인다. 그나마 몇 되지 않는 '진짜 언론'인데, 어쩌려고 저러지? <시사저널>이 흔들리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불안해하는 내가, 거기 있다.

시사저널 사장 주도로 일명 '짝퉁 시사저널'이 비상근 편집위원들에 의해 발행되고 있는 가운데 '시사저널 불법 제작 중단 촉구 기자회견'장에서 고재열 기자가 '짝퉁 시사저널'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시사저널 사장 주도로 일명 '짝퉁 시사저널'이 비상근 편집위원들에 의해 발행되고 있는 가운데 '시사저널 불법 제작 중단 촉구 기자회견'장에서 고재열 기자가 '짝퉁 시사저널' 피켓을 들고 서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2007년의 나는 <시사저널>을 읽지 않는다. 읽을 수가 없다. '삼성기사 삭제사건'은 어제부로 1년이 지나버렸고, <시사저널> 기자들은 아직도 파업 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이신문들은 일언반구도 없다.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도 입을 굳게 닫는다. 그 기묘한 침묵이 고종석과 몇몇 언론들을 더 빛나게 만들지만, '주류'가 침묵하므로 그 '주류'의 영향을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사저널 사태'를 알지 못한다.

<시사저널>을 읽을 수 없는 나는 답답하다. 자취하는 집 앞에 있는 동국대 도서관을 찾는다. 편철돼있는 <시사저널>을 창간호부터 보기 시작한다. 91년도에 실린 많은 분신사진을 보고,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던 '정원식 국무총리 폭행사건' 기사를 읽는다.

가끔씩 최근 나오는 '짝퉁' <시사저널>을 펼친다. 소설가, 언론인, 편집위원, 그리고 'JES' 라는 크레딧이 넘쳐난다. 맨 뒤로 넘기자 "FTA는 우리의 운명이다"라는 시론 제목이 보인다. 순간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는다. 애써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하는 내가, 거기 있다.

<시사저널>을 읽으며 <시사저널>과 쌓아온 지난 7년의 세월은, 짧아 보일지 몰라도 내게는 큰 의미가 담긴 '작은 역사'다. 계속 이어가고 싶은 나의 이 '작은 역사'를 도대체 누가, 어떤 권리로 망가뜨리고 있는가. 도대체 왜 이 역사를 일그러뜨리고 있는가.

"우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무 쉬운 방법으로 슬픔에 대처했던 셈이다"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시사저널>을 다시 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살아 숨 쉬는 <시사저널>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은, 펜을 놓은 채 싸우고 있는 그들을 찾아가는 일일 터이다. 그렇게 나의 작지만 소중한 역사를 이어가기를 원하는, 다짐하는 내가, 그리하여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미디어다음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시사저널#한겨레21#시사저널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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