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에 태어나 열네살에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춤을 춰 본 적도 없었지만 끌려갈 때 무자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마이코라 불리었습니다. 1946년 끌려갔던 팔라우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딸의 제사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이름은 강순애였고 2005년에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습니다.
김선우 시인이 <열네 살 무자>라 제목을 달고 강순애 할머니의 삶을 시에 담은 뒤 경기도 퇴촌 원당리에 있는 나눔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할머니들 앞에서 읽기는 손정순 시인이 읽었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건 아주 오래된 오늘 얘기."
오래된 얘기라면 과거의 얘기일진데, 시인은 이 얘기가 아주 오래된 얘기인데도 오늘의 얘기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 얘기의 할머니들이 아직도 그때의 상흔을 그대로 안고 오늘을 살고 계십니다. 바로 그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정신대' 할머니들 몇 분이 함께 살고 있는 나눔의 집에 시인과 춤꾼들이 찾아왔습니다. 16일 토요일 한국문학평화포럼이 그 첫행사로 나눔의 집 문학축전을 연 것이었습니다.
사진으로 행사장의 풍경들을 둘러봅니다.
사람들이 북적이자 지돌이 할머니가 담너머 바깥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할머니는 정신을 놓았다 들었다 한 지 몇 해가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할머니가 겪었던 그 험악한 세월의 기억들을 맨정신으로 안고 산다는 게 어찌 가능하겠는지요. 아마도 할머니는 그 기억들을 모두 내려놓고 싶어 정신을 내려놓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박옥련 할머니가 오늘 찾아온 손님과 얘기를 나눕니다. 얘기가 오고가고 웃음이 오고 갑니다. 찾아온 손님은 자신의 어머니 얘기를 하고, 할머니는 자신의 자식들 얘기를 합니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가 되고, 우리는 할머니의 자식들이 됩니다. 아이들은 물론 할머니의 손자들이 되지요.
"민족의식 없는 정부의 저자세 부끄러워"
문학평론가이자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인 임헌영 선생님이 붕대를 한 김옥선 할머니의 팔을 보고 어쩌다 그리 되셨는지 걱정을 합니다. 할머니는 웃음으로 그 걱정을 덜어주십니다.
임헌영 선생님은 기조 연설에서 일본에 갔을 때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겪었던 얘기를 하나 소개했습니다. 난징 학살을 다루고 있는 중국의 한 박물관에서 전시된 증거품들을 없애버리자는 우익단체가 홍보물을 나누어주고 있었답니다. 임헌영 소장은 이러한 일본의 행태에 분노하면서 아직도 일본에 대해 정신대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공식 제기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정부의 민족 의식없는 저자세를 부끄러워 했습니다.
김군자 할머니가 오신 손님들에게 환영 인사 한마디 했습니다.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 할머니께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인사를 나누던 중 나중에 살풀이 춤을 공연한 장순향 교수가 춤추는 사람이란 얘기를 듣고 할머니들께서 그럼 어디 맛배기 춤사위 한번 보여보라고 말합니다. 장순향 교수가 팔을 뻗어 춤사위를 잡습니다. 이용녀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흥을 보탭니다.
오우열 시인이 이용녀 할머니께 자신은 창을 한다고 소개를 했습니다. 할머니가 그럼 어디 한대목 읊어보라고 말합니다. 오우열 시인이 목청을 뽑았습니다. 할머니가 말합니다. "아니, 그게 어디 창이야, 소리나 지르는 거지." 할머니가 몸소 시범을 보이셨습니다. 어디를 어떻게 꺾어야 한다고 훈수까지 두십니다. 오늘 할머니께 즐거움을 드리려고 왔는데 한수 배우고 갑니다.
"할머니들 곁에서 함께 일어서는 사람들 많아졌으면"
박옥련 할머니가 웃습니다. 웃으면 젊어진다는데 정말 자주 찾아 할머니께 웃음을 선물하면 그 옛날 일본에게 빼앗겼던 젊음을 할머니께 되돌려 드릴 수 있을까요. 그런데 할머니의 고운 웃음을 보니 그 곱던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도 듭니다.
가수 수니씨는 자신의 노래 <내 가슴에 달이 있다>를 부른 뒤, 할머니들이 이 노래를 좋아할 것 같아 준비했다며 <반달>을 불렀습니다. 수니씨가 반달을 띄우자 할머니들이 입을 모아 따라 부르며 함께 반달을 밀고 갔습니다. 나눔의 집 광장에 노래로 엮은 반달이 떠서 흘러갔습니다.
지리산에 살고 있는 박남준 시인이 이용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총각의 술 한잔 받으시라며 할머니께 막걸리 따라드렸습니다. 할머니가 사는 얘기 풀어놓습니다.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또 때로는 즐겁기도 했던 할머니의 삶이 흐릅니다.
이날 박남준 시인은 <그 곱던 얼레지꽃>이란 시에 어느 정신대 할머니의 삶을 담아갖고 왔습니다. 시인의 눈에 얼레지꽃은 차마 눈을 뜨고 그 수모의 삶을 감당할 수 없어 "꽃잎을 치마처럼 뒤집어쓰고 피어나는 꽃"입니다.
시인은 좀 다행스럽게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할머니께서 그 얼레지꽃의 슬픔을 스스로 걷고 씩씩한 모습으로 많은 웃음을 시인에게 선물했거든요. 할머니들의 삶은 슬프고 아프지만 할머니들은 그 슬픔과 아픔에서 일어서 계셨습니다. 할머니들이 일어설 때 그 곁에서 함께 일어서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나눔의 집 홈페이지: http://www.nan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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