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민족통일대축전 행사가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이 주석단에 앉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인 끝에 17일 파행으로 끝났다.
6·15민족통일대축전 마지막 날인 17일 6·15공동선언실천 남·북·해외위원회 대표단은 평양 태권도전당에서 '민족단합대회'를 열고 '민족대단합선언'(선언문)을 채택했다.
원래는 15일 오전에 열려야 할 대회가 남측 참가자들이 인천공항으로 떠나기 직전에야 열린 것이다. 더구나 남·북·해외 공동위원장 4명과 연설자·사회자 등 11명만을 주석단에 앉히기로 하면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대회에 불참했다.
예상치 못한 파행으로 끝난 6·15 대회
이번 6·15 대회는 지난 14일부터 시작됐다. 마침 이날은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묶여있던 북한 자금의 이체가 시작되었음이 확인된 날이었다. 따라서 이번 행사는 지난 1일 21차 남북장관급회담이 결렬되고 6·15 행사에 남북 당국 대표단이 불참한 좋지않은 상황을 극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이번 민족통일대축전이 파행으로 끝난 것은 북한이 15일 오전 열릴 예정이었던 민족단합대회에서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을 주석단에 앉힐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일단 북한이 박계동 의원을 문제삼은 것은 올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대한 북한의 반감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6·15 행사 관계자는 "북측이 뜻깊은 6·15행사를 파행시킨 원인을 한나라당 탓으로 돌려 올해말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곤경에 빠뜨리겠다는 계산을 한 모양"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한나라당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현재 정세는 미국이 애국법을 피하기 위해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까지 동원해 BDA 문제를 풀어줬고 북한이 IAEA 실무대표단을 즉각 초청하는 등 북미 관계가 괜찮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북한과 계속 대립하는 것은 부담이 된다. 오늘 19일 대전에서는 한나라당 대선후보들간의 '통일·외교·안보 분야' 토론회가 열린다. 이번 박계동 의원 문제부터 당장 중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북한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남쪽 정치 현실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박계동 의원을 주석단에 앉히지 못하겠다는 북한의 방침에는 일단 4대 종단 대표들이 강력하게 반대했고,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반발했다.
북한으로서는 '반한나라당 전선 구축'을 생각했겠지만 되레 역풍을 맞은 꼴이 됐다.
이 때문에 북한은 박계동 의원을 다시 주석단에 앉히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우여골절 끝에 남·북·해외 공동위원장 4명과 연설자·사회자 등 11명만이 주석단에 앉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남한의 의사는 충분히 북한에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민족단합대회에서는 백낙청 남측위 대표, 안경호 북측 위원장, 곽동의 해외공동위원장 모두 이번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북한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남한 국내 정치에 대한 개입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박계동 의원을 주석단에 앉힐 수 없다고 나온 것은 단지 한나라당만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2005년 6·15 대회 때는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주석단에 앉았다. 또 이번 대회는 첫날인 지난 14일의 개막식에는 박계동 의원이 주석단에 앉았다.
'어정쩡하게 될 가능성 높은 남북 관계
6·15 남측위의 핵심관계자는 "원희룡 의원의 사례나 박계동 의원이 첫날 주석단에 앉은 것에 대해서는 북측도 명확하게 설명을 못했다"며 "박계동 의원이 개막식날 주석단에 앉은 것에 대해 북측은 '그 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행사전에 남북이 주석단의 명단을 서로 제출했기 때문에 북측의 설명은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또 북한이 한나라당을 문제삼을 것이었다면 아예 처음부터 그들에게 평양에 올 수 있는 초청장을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북한은 남한 정부와 사회가 남북 관계를 2·13 합의에 연계시키는 것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경고할 의도를 가졌을 것"이라며 "따라서 북한은 이번 6·15 행사를 축제 분위기로 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남한 정부는 2·13 합의 이행과 40만t의 쌀 차관 제공을 연계시켜놓은 상태다.
그는 "6·15 남측위는 대북 쌀 지원을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니 북한이 이 단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며 "결국 한나라당을 문제삼으면서 이번 6·15 행사를 파행으로 몰고간 것이며 이는 고위급 차원에서 결정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북한은 이번 6·15 행사를 순조롭게 진행하지 않을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마침 마침 박계동 의원이 주석단에 앉는 것을 발견해 문제를 삼았다는 것이다.
사실 북한은 첫날부터 시빗거리를 만들려는 모습을 보였다. 예를들어 지난 14일 저녁 만찬 때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2차 남북정상회담이 빨리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북한은 사전 예정에 없던 발언이라며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정 장관은 기사화하지 않기로 하는데 동의했다.
그런데 정 전 장관의 발언을 담은 방송 테이프를 위성을 통해 남쪽에 보낼 때 북측 관계자가 송출을 방해해 문제가 됐다.
2차 남북정상회담 촉구는 정 전 장관은 평소 지론인데다, 북한도 김정일 위원장이 답방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그런데도 이런 발언에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알 수 없는 북한의 속셈
또 15일 북한은 남측의 공동취재단에게 차량 지원을 하지 않아 7시간동안 기사 송고도 못하게 하고 서울과의 통신도 두절되게 만들었다. 민간행사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전문가는 "BDA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남북관계가 잘 풀릴 것으로 보는 것은 오산"이라며 "북한은 '미국도 북미 관계를 잘 풀려고 하는데 대범하게 나오지 못하고 2·13 합의와 남북관계를 연계시키는 남한에 대해 그들 말대로 '뽄때'를 보여줄 생각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결국 북한이 과거 김영삼 정부 때와 같은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만 대화하고 남한은 배제하는 것) 수준은 아니어도, 남한과 순조롭게 대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판을 깨지도 않으면서, 계속 남한에 대해 시비를 거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
대신 북한은 BDA에 묶여있던 자금의 송금이 최종 완료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IAEA 실무 대표단을 신속하게 초청했다. 그만큼 미국과의 관계는 최대한 잘 풀어가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