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고향 나사렛을 출발한 버스는 도시지역을 벗어나자 다시 푸른 평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잘 가꾸어진 들녘은 올리브 농장과 파란 풀밭이 아름답기 짝이 없는 풍경이었다. 그 사이 하늘은 잔뜩 찌푸려 금방 비라도 쏟아 부을 것 같았지만 다행이 비는 내리지 않았다.
"저기 앞쪽을 보십시오, 산맥처럼 산줄기가 이어지다가 불쑥 솟아오른 곳이 보이지요? 저 산이 갈멜산입니다."
가이드가 가리키는 곳에는 푸른 벌판 뒤로 길게 들어 누운 산맥과 그 산맥의 끝에 약간 높게 솟아오른 산봉우리가 보였다. 도로에 차량들이 많지 않아 버스는 거침없이 달렸다. 곧 산길이 나타났고 버스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천천히 달린다. 도로주변은 울창한 삼림이 펼쳐져 있었다.
"아니 이스라엘에도 이런 삼림지대가 다 있었네."
정말 뜻밖의 풍경이었다. 중동지역에 들어온 이후 이런 삼림지대는 처음 보는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도로 옆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빈틈없이 들어찬 울창한 삼림이 이곳이 중동지역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어느 산간 지방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자 이곳에서 잠깐 쉬었다가 올라가겠습니다. 저기 마침 성경에 나오는 백합화가 많이 피어 있네요, 성경의 백합화 못 보셨지요?"
버스를 세운 곳은 숲 가운데 제법 넓은 공터가 있는 곳이었다. 공터에는 마른 풀밭과 함께 작고 붉은 꽃들이 피어 있을 뿐이었다.
"백합화가 어디 있지요? 전혀 보이지 않는데…."
모두들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백합화 비슷한 꽃 한 송이도 발견할 수 없었다.
"거기 그 작고 붉은 꽃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백합화입니다."
가이드가 가리키는 꽃은 공터에 드문드문 피어 있는 예의 작고 붉은 꽃이었다.
"아니 이건 백합화가 아니라 아네모네 꽃 같은데요?"
"우리나라에도 있는 개양귀비 꽃하고 똑같이 생겼는데요, 줄기가 좀 짧긴 하지만…."
한 사람은 아네모네 꽃이라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개양귀비 꽃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이드는 이 꽃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백합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꽃은 우리 일행들이 상상했던 꽃하고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어서 실망스럽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백합화와 너무나 다른 모습에 약간 실망스럽기도 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 작은 꽃을 살펴본 다음 다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완만하게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갔다.
이 갈멜산은 해발 523m로 이스라엘에서 3번째로 큰 도시가 있는 지중해의 끝자락 하이파 만으로부터 시작되어 남동쪽으로 23km 가량 길게 뻗은 산맥 중 가장 높이 솟은 봉우리다. 특이한 것은 이 산에는 석굴이 많고 수목이 울창하다는 것이었다.
이 산은 중동지역에서는 드물게 수량도 풍부하여 산 아래로 기손강이라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고, 주변의 이스르엘 평원 등 양대 평원과 지중해까지 내려다 볼 수 있는 경치가 특히 아름다운 산이다.
갈멜산이라는 이름은 제일 높은 한 봉우리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지중해 해안에서 내륙 쪽으로 23km 지점까지 폭 10여km로 뻗어 있는 높이 500여m 쯤의 산악지대 전체를 갈멜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산맥의 형태는 지중해와 접하고 있는 이스라엘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불쑥 튀어 오른 평야지대의 구릉보다 약간 높은 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기후와 토양이 메마른 중동지역에 자리 잡은 이스라엘에는 자연적으로 나무가 많은 산이 거의 없다. 그런데 유독 이 갈멜산에는 나무가 울창한 것이 아주 특이한 현상이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 갈멜산 지역은 천연적으로 지하수와 물이 많아 푸른 나무들이 수해(樹海)를 이룬 명산으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갈멜이라는 산 이름도 풍요를 뜻하는 '하나님의 포도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아가서에는 여인의 아름다운 머리를 이 갈멜산의 아름다움에 비유하여 묘사하기도 했다.
산 정상에 오르자 제법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공터 입구 한 쪽 편에는 칼을 치켜든 엘리야의 석상이 세워져 있었고 그 끝 쪽에 기념교회가 서 있었다. 이곳이 바로 구약성경(왕상 18:19~46)의 기록에 선지자 엘리야가 홀로 바알 종교의 선지자 450명과 대결하여 승리한 곳이다. 엘리야의 석상 받침대에는 아랍어, 라틴어, 히브리어 3개 언어로 엘리야에 관한 글이 새겨져 있었다.
이곳에는 또 갈멜산 줄기를 따라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지점에 갈멜 산 수도원이 있다. 엘리야 동굴이라고 전해지는 동굴을 중심으로 세워진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은 12세기 십자군 원정 때 이 동굴을 중심으로 갈멜수도회(Carmelite Order)가 결성되었고, 그 후 바로 그 자리에 갈멜수도원 건물이 세워진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 수도원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갈멜수도회의 중심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 갈멜산을 이스라엘에서는 거룩한 머리산(Holy Headland)이라고 불렀다. 기원 전 4세기 때의 그리스인들은 이 산을 '거룩한 제우스의 산'이라 불렀으며, 기원 후 1세기 때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도 했다. 그래서 고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이 산을 가리켜 "동상도 신전도 없이 오직 제단과 예배만 있는 산"이 있는 곳이라고 기록했다.
이렇듯 이 갈멜산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이슬람 그리고 고대 그리스인들의 공통된 성지로 인류의 역사가 교차한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특히 이곳의 석회암 동굴의 빈 벽에서는 크로마뇽인의 뼈가 발견되기도 했다.
또 고대의 유명한 철학자이며 수학자인 피타고라스도 이집트로 여행하는 도중에 이곳 언덕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고 전한다. 실제로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이곳만큼은 군사행동이 억제되었을 정도로 이곳 갈멜산은 신성시 된 곳이다.
이 산의 중심인물이며 구약성경의 선지자 엘리야 역시 이곳 갈멜산에 머물렀을 때 두 개의 동굴을 집으로 삼았다. 또 예수의 가족들도 이집트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한다.
역사가 한 참 흐른 후인 서기 1150년에 시작된 십자군의 정벌은 이 신성한 산을 기독교도들의 성지순례의 장으로 만들었고, 이슬람의 종교 지도자 드루즈도 16세기에 레바논에서 건너와 이곳에서 살았었다고 한다.
"여기 돌탑 좀 보세요?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모르지만 조금 조잡스러운 모습 아닌가요?"
일행이 가리키는 곳에는 몇 개의 돌탑 같은 것들이 세워져 있었는데 작은 돌들을 석회석으로 쌓아 올린 모습이 썩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도 산정에는 이곳저곳에 비슷한 모양의 작은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었고 가시가 날카로운 선인장들이 많이 심어져 있었다. 특히 기념교회 옥상의 평평한 바닥에는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지역을 표지하는 표지판이 그려져 있었다.
"이 표지판을 보면 저 쪽에 지중해가 있는데 보이지가 않네요?"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아득하게 들녘이 펼쳐져 있었지만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오늘 날씨가 좋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지중해까지 거리가 약 25km 정도 되거든요, 날씨가 좋을 때는 쪽빛 바다가 선명하게 바라다 보입니다."
잔뜩 찌푸린 날씨 때문이었다. 이 산정 위에서 바라보이는 지중해는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일까? 그러나 흐린 날씨 때문에 그 기대는 접을 수밖에 없었다.
"자! 곧 출발하겠습니다. 여기서 보지 못한 지중해를 보러 가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특별 서비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해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겠는데요."
우리 일행들은 본래의 여행 일정에 없던 지중해 바닷가의 고대유적지 가이샤라로 가기 위해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