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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국귀농운동본부(앞으로 '귀농본부'라 함)에서는 매년 너댓 차례 '살림강좌'를 하고 있다. 강좌는 계절에 따라 다른데 이른 봄에 '산나물 들나물 캐기'를 하면,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는 초여름이 되어 갈 때쯤에는 '내 손으로 벌 키우기' 등을 하는 식이다.
생활한복을 직접 만들어 입는 강좌도 인기 있는 생활강좌이고, 목공실습 강좌도 매년 계속하는 강좌다. 그동안 내가 참여했던 강좌는 전통 구들놓기 강좌와 생활목공강좌였다.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이다.
이번에는 생활강좌를 우리 집에서 내가 주관하게 되었다. 귀농본부 실무자가 올 초에 사업계획을 세우면서 제의를 해 왔을 때 별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그건 내가 집을 지었던 과정이 귀농본부의 기관지 <귀농통문>에 소상하게 연재되고 있는 터에 공개적으로 내 방식의 집짓기 강좌를 해도 괜찮다고 여겼던 것이다.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6월 16일 토요일.
모든 준비가 다 되었다. 날씨마저도 내가 주문한 대로 맑고 깨끗했다. 하늘님이 요즘 내 부탁을 잘 들어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600고지 산골마을의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렀다.
단 한 가지. 빔 프로젝트 스크린이 없었다. 빔 프로젝트는 내가 매주 두 차례 강의하러 가는 장수군 이주여성 지원센터에서 빌려놨는데 스크린은 너무 커서 가져오지 않았었다.
장계읍 포목점에 나가서 면으로 된 하얀 천을 네 마 사왔다. 포목 집 옆에 있는 세탁소에서 반을 잘라 두 마를 길이로 재봉질을 할까 하다가 어머니의 좋은 일거리를 세탁소에 넘길 수는 없었다. 집으로 가져와 어머니에게 손바느질을 맡겼더니 아주 좋아하셨다.
겨우 아홉 평 되는 방 두 개짜리 집에서 어른 수강생 열 세 명이 잘 수 없는 노릇. 더구나 방 하나는 나랑 어머니 차지다. 아랫집 할머니께 가서 빌린 방 하나를 다시 점검하고 마당에 칠 대형 텐트와 전기장판도 꺼내 놨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영상물이다. 내가 집을 지으면서 모든 과정을 스틸사진과 동영상으로 촬영을 해 놨는데 그것을 한 시간짜리 영상물로 만드는 작업이다. 벌써 여러 날 째 해 왔지만 시간 맞춰 완성하기가 힘들었다. 집짓기 분야별로 스틸사진만으로 영상물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나만 바쁜 게 아니었다. 바느질에 여념이 없던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한 20분 시간을 좀 내라는 것이었다. 그러마고 했더니 그 다음 말이 배꼽을 잡게 했다.
"얼렁 서울 좀 갔다 오너라. 니 누님네 가서 재봉틀에 이거 주루룩 박아가지고 오너라. 내가 차비 주꾸마. 오후 세 시까지 도저히 몬하것다."
손님들은 오후 세 시에 오지만 천을 사용하는 시간은 저녁 여덟 시쯤이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어머니가 안심하셨다.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였다. 나중에 소개 시간에 알게 되었지만 오시는 분들이 전국 여기저기에 사시는 분들이었다. 멀리는 부산과 구미, 거제가 있었고 서울, 의령, 용인, 경기도 광주, 수원, 과천, 울산 등지였다.
스스로 귀농과 생태 집에 마음을 두고 먼 곳에서 이틀 동안 시간을 내서 오신 분들이라 생활에 대한 자기 주관이 뚜렷할 뿐 아니라 삶의 모습이 엇비슷해 보였다. 이제 결혼 한 지 석 달 되는 신혼부부도 있었는데, 어디를 가나 같이 가고 손을 꼭 잡고 다녀서 우호적인 놀림을 받기도 했다. 거제에서 오신 분은 올해 예순이었다.
멀리서 아내가 왔다. 내 음식 솜씨도 이제 내 놓을 만하지만 이틀 동안은 내가 부엌 주방장 역할을 할 겨를이 없어서 특별히 모신 것이다. 음식 솜씨가 뛰어난 아내가 올 때 이미 웬만한 밑반찬을 만들어왔고 우리 텃밭에 있는 것들이 밥상에 올랐다.
막걸리 한 잔씩을 채워가며 자기소개를 하는데 이번 강좌에 참여하게 된 동기가 서로 달랐지만 지향하는 삶의 방향은 크게 보아 같았다. 현직에서 은퇴하신 50대 후반의 수원에서 오신 분은 곧 시골로 옮겨 살 준비 차 오셨다고 했고, 울산에서 오신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부는 경남 산청 간디학교가 있는 옆 마을에 빈집을 구해 놨고 농사 지을 땅도 얻어놔서 당장 집 고치는 작업에 착수하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또 몇 사람은 <귀농통문>에 연재되고 있는 내 글을 보고 꼭 오고 싶던 차에 살림강좌가 있어 신청했다고 했다.
반갑고 좋았던 것은 단 한 사람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술도 막걸리 한두 잔 하고는 잔을 놓았다. 생활에서부터 잘 정돈된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아내가 식단을 짤 때부터도 아예 고기는 단 한 점도 없었는데 내가 농사 지은 참기름과 들깨기름으로 맛을 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고기를 장만하지 않았다고 의례적인 양해를 구하자 다들 이구동성으로 고기 안 먹는다고 했다.
낮에 이미 뒷산 계곡을 산책하고 나서 우리 집 곳곳을 돌며 집을 새로 짓다시피한 과정을 설명을 했지만 밤에 빔 프로젝트를 통해 초기의 다 무너진 집 모습과 작업하는 과정을 보면서 활발하게 질문도 나오고 탄성도 나오고 하였다.
더구나 영상강의 중 '함께 한 사람들' 부문에서 우리 집 짓는 동안 다녀 간 사람들의 신분과 나와의 인연들을 소개할 때 작년에 내 생일이 다섯 번이나 되었다고 하자 사람들을 끌어 모은 발상이 재미있다고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