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6일, 자전거로 의성 사촌마을과 고운사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안동 일직면'이란 알림판을 보고 뜻밖에 권정생 선생님 댁까지 다녀왔어요. 온종일 한여름 같은 더운 날씨에 따가운 햇볕과 씨름하며 자전거 발판을 밟은 하루였어요. 이제 그 하루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네요.권 선생님 댁에서 머무른 시간이 한 시간쯤 되었을까? 벌써 오후 6시가 훌쩍 넘었어요.
다시 의성으로 돌아갈 일이 걱정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기 때문에 날이 어두워지면 굉장히 위험해요. 더구나 차가 많고 쌩쌩 달리는 5번 국도는 해가 있을 때 가야만 했어요. 일직에 잠잘만한 곳이 한군데 있기는 했지만, 어차피 다음날은 의성읍 둘레에 다녀볼 생각이라 거기까지 가야했지요.
서둘러 일직을 빠져나와 5번 국도에 올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차가 많아요. 또 어찌나 빨리 달리든지 갓길에 한 줄로 서서 가는데 진땀이 났어요. 하루 동안 거의 100km쯤 자전거에서 살았으니 몸도 지칠 대로 지쳤지요. '이제는 덮어놓고 달리는 길밖에 없다!' 생각하고 부지런히 발판을 밟았답니다.어느새 둘레가 어둑해지네요. 자전거에 달아 둔 앞뒤 등, 가방에 매단 등까지 죄다 켰어요. 지나가는 차에 우리가 잘 보이기를 바라면서….
애고, 또 오르막이다!
자전거 타기에는 길이 조금 위험하기는 해도 곧게 뻗어있고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좋았는데, 한참 가다 보니 또 오르막이 보여요."아! 여기가 '재랫재'구나!"해는 넘어가고 날은 차츰 어두워지는데 힘든 고갯길을 보니, '아이고!' 소리가 저절로 나요.
"아자, 아자!"
"힘내! 고개만 넘으면 금방이라!""아이고 그래야지, 그나저나 옛날 사람들은 어땠을까? 해질 때 이 재랫재를 넘자면 고생 좀 했겠다. 지금이야 길이라도 좋지. 옛날에는 험한 산길을 넘었을 거 아냐."
"거 왜 있지. ‘전설의 고향’ 보면 과거보러 가는 선비가 한밤중에도 재를 넘어가다가 다 털리고 하는 거 많이 봤잖아."
"그러네. 그럼 우린 참 다행이네. 하하하!"
"자, 밟어, 밟어!""아자! 아자!"
재랫재를 넘어 한참 달리다 보니 낮에 보았던 낯익은 집들이 보이고 불빛이 밝아요.
"드디어 왔다!"
"저기다! 다 왔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소리를 치며 신이 났어요.
"애썼어!"
"자기도 애썼어!"
우리는 서로 손바닥을 맞부딪히며 기뻐했어요. 저녁 무렵에 자전거 타기에는 길이 위험하지만 아무 탈 없이 온 게 스스로 고마웠지요.
의성역 앞에 다다르니 저녁 8시가 다 되었어요. 어둑한 길을 바짝 긴장하며 온 탓인지 몸은 지치고 배도 몹시 고팠지만 먼저 잠 잘 곳을 찾아야 해요. 의성역 앞에서 두리번거리니, 길 건너편엔 모텔이 있고, 역 쪽으로는 여관이 하나 있어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물기로 했지요. 먼저 자전거를 놔둘 곳이 있어야 해서 물었더니,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곁에 두래요.
아주머니한테 자전거는 우리 전 재산이니까 잘 봐달라고 몇 번이고 부탁하고는 셈을 치르는데, 2만 5천원이래요. 주머니 사정도 그리 넉넉하지 않은데 값싸다고 좋아했지요. 방에 짐만 풀어놓고 다시 밖으로 나와 밥부터 먹었어요.
"힘도 쓰고 땀도 뺐으니 우리 갈비 먹자!"
"갈비 좋지!"
배는 고픈데 오늘따라 이놈의 갈빗집에 웬 손님이 그리 많은지 한참을 기다렸어요. 얼마를 기다리고서야 맛난 갈비를 둘이서 여섯 사람 몫을 모조리 먹어치웠습니다.
"이런데서 분위기 잡겠어?"
여관방에 돌아와 온종일 땀에 찌든 몸을 씻는데,"아니 이거 물이 왜 이래?""응? 왜?""물이 쫄쫄 나와서 답답해 죽겠네."
남편이 목욕탕에서 씻다가 말고 투덜거려요.좁은 목욕탕 물통에는 묵은 때가 앉아서 때가 꼬질꼬질하고, 수압이 너무 낮아서 쫄쫄거리며 나와요.
"으악! 저거 뭐야!"
"바퀴벌레잖아…. 죽었네."
얼굴을 씻으려고 숙이다가 물통 밑으로 뭔가 시커먼 걸 봤는데 글쎄 죽은 바퀴벌레였어요. 그것도 어찌나 큰지 내 손가락 두 마디쯤 되어요.
"에잇, 이거 뭐이래?"
"애고 값싼 게 다 까닭이 있었네."
"아무리 싸도 그렇지. 이래놓고 손님을 받나!"
"역 앞이라고 손님이 거저 들어오니까 이런 가 보다."
그러고 보니, 지저분한 건 목욕탕만이 아니었어요. 방에도 침대 밑으로 긴 머리카락이 헤아릴 수 없이 빠져있고, 화장대 위에는 먼지가 수북해요. 텔레비전도 고장이 나서 채널이 제 맘대로 돌아가고….지저분한 걸 꾹 참으며 가까스로 땀을 씻고는 밥 먹고 오면서 사 가지고 온 깡통 맥주를 따서 마셨어요. 그제야 하루 동안 긴장했던 몸이 풀리는 듯해요.
"우리 분위기 한 번 잡아볼까?"
"엥? 분위기?"
"그래 집 떠나서 여관방에서 자는 게 얼마만이야."
"애고, 이런데서 분위기 잡겠어?"
손가락만 한 죽은 바퀴벌레가 나뒹굴고, 머리카락은 온통 흩어져있고, 그렇다고 여관 임자한테 방을 바꿔달랄 수도 없고….
분위기는커녕 어서 여길 벗어나고 싶었어요. 둘이서 그렇게 투덜거리다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몰라요.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서둘러 여관방을 빠져나왔어요.이날 하루를 마치면서 속도계를 보니, 자전거를 탄 거리만 126km나 되더군요. 온종일 햇볕에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 다리는 익을 대로 익어서 따끔거렸어요.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전거를 참 많이도 탔지요? 이렇게 오랫동안 타본 적이 없어 몸은 많이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꽤 즐겁게 보낸 하루였답니다. 마지막에 지저분한 여관방만 아니었다면….
자, 이제 다음에는 의성 네 번째 이야기로, 삼한시대 부족국가였던 '조문국'의 '경덕왕릉' 이야기와 '산운마을', '빙계골짜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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