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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정문.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오늘(20일) <중앙일보>는 미국의 교사성과급제에 관한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학생들의 성적을 끌어올린 교사들에게 장려금을 주는 성과급제가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에 이어 한국의 교원평가 관련 기사를 바로 아래 배치했다.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원평가제가 교직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그 입법화가 마냥 미뤄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미국에서는 교사성과급제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교원평가'조차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중앙일보>의 이 같은 '의제설정'의 타당성 여부는 일단 제쳐두자. 미국의 교원성과급제가 시사하는, 보다 시급한 쟁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교육부와 서울대를 비롯한 유명대학들이 벌이고 있는 내신 반영을 둘러싼 '대립' 문제다.

교육부-일부대학 다툼, 교육부 탓이 커

교육부는 서울대가 내신 1·2등급을 모두 만점 처리하려는 데 대해 행정적 제재까지 들고 나왔다. 국립대학들이 내신 반영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교수 증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재정 지원상의 불이익에 더해 교육부로서는 당장 대학의 목을 죌 수 있는 초강수를 꺼내든 것이다.

그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알 수 없다. 서울대가 굽힘없이 '마이웨이'를 부를지, 아니면 그 고집을 꺾을지는 '여론의 향배'에 달렸다. 신문들은 일단 조심스럽다. 의외로 조·중·동도 변죽만 울릴 뿐 논란의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 청와대의 개입과 교육부의 뒤늦은 '서울대 규제' 방침을 탓할 뿐 내신 실질 반영 비율에 대한 논의는 피하고 있다. 이 문제가 갖는 '휘발성' 을 고려한 것인지 모른다.

어쨌든 상당수 언론이 지적한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교육부와 '일부 대학'들과의 이런 다툼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교육부의 탓이 크다. 임시방편식 대응으로 '일부 대학'의 발언권만 키워준 게 사실이다. <중앙일보>의 기사는 그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교육이 물건 사고팔면서 벌이는 '흥정'인가

▲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2004년 11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 정문에서 한 학원 관계자들이 전자기타로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하며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2004년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 정문에서 자녀를 위해 기도를 하던 한 학부모가 얼굴을 감싸고 있다.
ⓒ 권우성
수험생을 인질로 삼고 벌이는 교육부와 '일부 대학'간의 지루한 다툼에 종지부를 찍자면 정부는 이제라도 내신 반영 등 입시 정책을 대학 지원과 분명하게, 체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연계시킬 필요가 있다. 교육의 질을 높이고,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는 방법으로 '합의'된 방침을 수용하는 대학에게는 과감하게 재정지원 등을 확대하되, 그렇지 않은 대학에 대해서는 재정지원 등을 대폭 삭감하는 가이드라인을 차제에 확정해 발표하라.

그 가이드라인은 구체적일 수록 좋을 것이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지금처럼 말 안 들으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압박하면, '주요대학'들이 못이긴 채 물러섰다가 또 '도발'하곤 하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이게 무슨 물건 사고팔면서 "값 좀 깎자", "못 깎아준다"는 식으로 벌일 '흥정'인가?

조심스럽지만 논의를 조금 더 넓혀보자. <중앙일보>의 미국 교원 성과급제 기사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학교 현장에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하는 데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한국의 교원단체들이 반대하는 것처럼 교육의 성과를 '성적'만으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논란에서부터 누가, 어떻게 '공정하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쟁점이 있을 수 있다.

과연 그런 인센티브제가 전반적으로 학교 교육의 질을 높이고, 미래세대를 제대로 키워내는 데 효과적일지, 또 부정적인 측면은 없을지도 두루 살펴볼 일이다. 우리 사회의 연고주의 문화와 사회 체제의 변화 없이는 '백약이 무효'라는 근원적인 문제 제기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학교 교육 체제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크다면 가능한 대목부터라도 '작은 변화'라도 모색해보는 것이 현실적인 처방일 수 있다. 큰 문제는 큰 문제대로, 학교 현장의 변화는 또 학교 현장의 변화대로 모색하는 전방위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승자독식'의 교육 고리를 끊자

<중앙일보>가 전한 미국의 인센티브 제도는 그런 점에서 우리도 과감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 인센티브의 방점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찍혀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는 지금까지 '1등'에 초점을 맞춰왔다. 좋은 대학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보내느냐에 따라 성적을 매겨왔다. 수준별 반편성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을 집중 육성하는 '우수반' 편성으로 왜곡돼 왔다. 한마디로 1등 지상주의다. 그렇지 못한 다른 아이들 모두를 '패배자'로 만드는 '승자독식'의 교육이 이 땅의 학교와 교육을 지배해 왔다.

이제 그런 고리를 끊어야 한다. <중앙일보>가 소개한 인센티브 제도는 앞으로는 '꼴찌'를 격려하는 쪽에 방점을 찍을 수 있다.

▲ 20일자 <중앙일보> 1면.
ⓒ <중앙일보> PDF
좋은 환경의 학교보다는 열악한 환경의 학교 쪽에 우선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우수한 학생들보다는 학업성적이 뒤떨어지는 학생들의 실력을 얼마나 끌어올렸는지를 더 평가해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가 '꼴찌'들에 대해 이렇게 배려할 수 있다면, '잘하는 아이들'에 대한 특별 배려의 여지 또한 지금보다 훨씬 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결코 '못하는 아이들'만을 배려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못하는 아이들'을 잘할 수 있도록 우선 배려하되, '잘 하는 아이들'은 더 잘 할 수 있는 길을 여는 방법을 찾자는 이야기다.

한국 교사들, 스스로 '혁신'할 때

<중앙일보>가 인용한 <뉴욕타임즈>가 기사 제일 마지막에 인용한 팀 폴렌티 미네소타 주지사의 말처럼 이런 과정은 "문화를 바꾸는 매우 복잡한 프로세스"가 될 것이다. 또 무엇보다 "교사(학교현장)들의 지지가 필요할 것"이다.

사실 한국의 교사들 또한 이제는 스스로가 '혁신'할 때가 됐다. 학교가 학원에 그 역할과 자리를 내주고 있는 꼴을 언제까지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무너진 초·중등학교 교육의 잔해 위에서, 수많은 패배자들의 '절망'을 딛고 기득권에 안주해 그 기득권의 성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데 혈안이 돼 있는 '주요 대학'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백병규#미디어워치#서울대#대입시#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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